(3) 민간인 학살 - 미완의 진실규명과 해원

김진우 기자

억울한 죽음, 덮는 정부

진실화해위 이달말 종료… 명예회복 작업 중단 위기

전쟁전후 희생자 100만명 “유족 상처 사회적 치유돼야”

민간인 학살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국전쟁 전후 무고한 많은 민간인들이 군·경이나 인민군 등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지만, 반공주의에 의한 ‘기억상실’ 속에서 누구도 감히 학살의 얘기를 드러낼 수 없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남한에서 민간인 12만8936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가족 단체와 학자들은 한국전쟁 전후 학살된 민간인을 최대 100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전쟁 60년](3) 민간인 학살 - 미완의 진실규명과 해원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집단희생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실규명 작업은 2005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출범으로 첫 삽을 떴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물꼬를 텄던 진실규명과 희생자·유가족에 대한 명예회복 작업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진실화해위가 6월말 사실상 활동을 종료하기 때문이다. 오원록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70)는 “진실 규명 신청을 통해 밝혀진 사건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며 “진실화해위가 못다한 일들이 많은데 정부가 이어갈 뜻이 없는 것 같아 착잡하다”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가 유해 발굴이 시급하다고 선정한 39곳 가운데 2007년 이후 현재까지 발굴한 지역은 13곳, 유해는 1600여구 발굴됐다. 이는 전체 유해 매장 추정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수많은 집단 매장 추정지가 곳곳에 방치돼 있다는 게 진실화해위 측 설명이다. 발굴한 유해들도 현재 충북대 임시유해안치소 등에 보관돼 있을 뿐, 유해 안치시설이나 추모기념관 등 장기적인 유해 안장대책은 아직까지 마련되고 있지 않다.

진실화해위의 성과를 계승하고, 진실규명에 따른 후속조치를 하기 위한 기구 설치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해외의 경우에도 칠레의 ‘국가배상화해재단’, 대만의 ‘2·28사건기념기금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만델라재단’ 등 관련 기구가 있다. 이와 관련,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화해와 기념 사업, 기록·연구 사업, 조사·발굴 지원 사업 등을 담당할 ‘과거사연구재단’을 설립해 그동안 억울하게 고통받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실행해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과거사연구재단,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등 진실화해위와 유가족 단체의 건의사항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원록 상임대표는 “정부의 한국전쟁 60주년 행사들 가운데 민간인학살 유족들을 위한 어떤 행사도 없다. 60년 동안 우리는 국가로부터 어떤 따뜻한 위로의 말이나 화해의 손짓도 받지 못했다”며 “정부가 국민통합을 말하면서 이 문제를 덮고 가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밝혔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해 생긴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사업과 피해구제 노력은 미흡했다. 특히 ‘진실’을 알 수 없고, 고통과 상처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자리잡았다. 진실화해위의 ‘심리적 피해현황 조사보고서’(2007년)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경험자들의 38.9%, 2세대 가족들의 19.5%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PTSD 비율이 높은 경우는 드문 현상”이라며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적절한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함으로써 2차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경험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유대인 대량학살의 경우 국가 차원의 다양한 조치가 이뤄진 뒤 2세들의 PTSD가 현저히 감소한 사례를 들며 “국가 차원의 여러 화해방안이 이뤄졌을 때 피해자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이 감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가족을 잃은 유족의 상처와 고통이 국가적으로 인정되고 사회적으로 치유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국민통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진실규명의 목표가 국가의 배척과 무관심 속에 살아야 했던 피해자 유족들에게 온전한 시민권을 부여하고 그들이 사회로 되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나아가 전쟁이 어떻게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킬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평화만이 인간적 존엄과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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