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발견부터 논쟁까지

윤민용 기자

1971년 학계 공식 보고… 울산시-문화재청 보존·관리 미루며 방치

현재 ‘풍화 5단계’ 멸실 직전… 댐 수문 설치 근원책 될 수 없어

반구대 암각화가 학계에 공식 보고된 것은 1971년이다. 그해 12월25일 문명대, 김정배, 이융조 교수 등이 마을 주민의 안내로 사연댐 상류에서 암각화를 발견했다. 높이 3m, 너비 10m의 수직면에 고래를 비롯해 호랑이와 사슴, 사람 등 약 300점의 도상이 새겨져있는데, 이들 도상은 신석기시대 후기에서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각기 다른 외형의 고래를 묘사하고 있으며 인간이 고래를 잡는 포경장면도 묘사한 점이 주목된다. 고래를 새긴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와 스칸디나비아반도 청동기 유적이 보고돼 있을 뿐이어서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발견 이후 10년 넘게 반구대 암각화는 방치됐다. 83년 7월에야 지방문화재로 지정됐으며, 95년 6월 비로소 국보로 지정됐다. 이웃한 천전리 암각화가 발견된 지 3년 뒤인 73년 국보로 지정된 것과 대비된다.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던 암각화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1년 울산시가 암각화와 불과 1.3㎞ 거리에 선사문화전시관을 세우고 산책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학계에서는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이 가속화되고 일대의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경주~언양간 국도변에 자리를 옮겨 짓자고 제안했지만 울산시는 2003년 일대 개발공사를 추진하고, 2006년 암각화전시관(현 울산암각화박물관) 건립을 강행했다.

물을 뿜는 고래를 묘사한 암각화(흰색 원). 왼쪽은 1980년대초, 오른쪽 사진은 2009년 김호석 교수가 촬영한 사진이다, 암각화는 흐릿해졌고 짙은 암회색 표면은 30여년 뒤 황토색으로 변색됐다. 김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자연 풍화뿐 아니라 연구자들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물을 뿜는 고래를 묘사한 암각화(흰색 원). 왼쪽은 1980년대초, 오른쪽 사진은 2009년 김호석 교수가 촬영한 사진이다, 암각화는 흐릿해졌고 짙은 암회색 표면은 30여년 뒤 황토색으로 변색됐다. 김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자연 풍화뿐 아니라 연구자들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암각화 훼손의 가장 큰 원인은 암각화 발견 이전인 65년 세워진 사연댐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매년 7월 장마가 시작되면 물에 잠기기 시작해 이듬해 3~4월까지 잠긴다. 울산시 관계자는 2005년 사연댐 상류에 대곡댐이 완성되면서 물에 잠기는 기간이 5개월로 줄어들었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무조건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위조절안은 이미 2003년 발표된 보존방안이다. 당시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조사를 시행한 서울대 석조문화재연구소는 사연댐 수위 조절, 수로 변경, 암각화 앞 차수벽 설치 등 3개 안을 제시했다. 학계와 문화재청은 수위조절안을 주장했지만 울산시는 이를 반대해왔다.

이 사이 반구대 암각화는 멸실 직전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마련한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마련 공청회’ 발표자료에 따르면, 반구대 암각화의 풍화단계는 현재 6단계 중 5단계인 ‘흙 상태 직전’에 진입했다. 2008년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는 서울대 석조문화연구소가 2000년대초 암각화의 풍화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슈미트 해머로 암각화 표면 189곳을 두드려 이로 인해 심각한 손상이 이뤄졌다고 발표했었다. 충격적인 보고에 놀란 문화재청과 학계는 다시금 반구대 암각화를 수장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움직였다. 사연댐의 수위조절을 해도 현재 물공급량에는 문제가 없다고 지난해 국무총리실이 조정을 중재했지만 울산시는 2025년이면 물이 부족하다며 대체수원 확보를 주장하며 버텼다.

그러던 울산시가 수문설치를 발표한 것은 전향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을 벌여온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대체수원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울산시가 결정을 철회하는 것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조충렬 울산시 행정부시장은 지난 1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부에서 대체수원 확보를 약속했기에 믿고 진행하는 일인데, 약속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일이) 진행되겠느냐”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창준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대구·경북권 광역상수원 확보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 중이며 울산권 물공급대책에 대한 타당성 조사도 다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국토해양부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수문 설치가 확정됐다는 얘기다.

수문 설치 결정으로 침수문제는 해결의 가닥이 잡혔지만 심각하게 훼손이 진행된 부위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앞으로 모니터링과 유지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있다. 울산시는 공주대 산학협력단이 ‘반구대 암각화 암면 보존 방안 학술조사’를 진행 중이라면서, 오는 9월 구체적 보존대책안을 다룬 보고서가 나오면 이에 따라 최선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반구대 암각화에 관한 종합적 차원의 조사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존대책 마련을 위한 조사는 2000~2003년 서울대 석조문화재연구소가, 현재는 공주대 산학협력단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치자. 이에 앞서 선행돼야 할 반구대 암각화 및 일대에 대한 기초적·종합적 차원의 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이러한 지적에 울산시 관계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석조문화재로서는 관리인력이 상주하고 폐쇄회로(CC)TV도 설치했다. 매일 아침 사연댐 수위도 보고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태양열로 발전하는 CCTV는 낮시간 동안만 가동되며 촬영화면은 인근 울산암각화박물관 모니터로 전송되지만 녹화는 불가능하다. 녹화 및 밤시간 동안 CCTV가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묻자 울산시 관계자는 “물을 건너야 하고 밤에 깜깜한데 누가 저기를 건너가서 암각화를 훼손하겠느냐”고 했다.

암각화의 상태를 사진으로나마 주기적으로 기록하고 DB화할 필요성은 없는지 물었다. 울산시 관계자는 “주기적 촬영은 필요없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도 보존대책 조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밀한 도구 없이는 훼손 정도가 안 보입니다. 1년중 절반은 물에 잠겨있거나 물이끼가 끼어있는데 찍어봤자 안 나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같은 기록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사연댐 물을 빼는 문제에 매달려왔기 때문에 울산시가 상세한 관리를 신경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모든 책임을 울산시에 떠넘길 수는 없다. 현재 국가소유 문화재 관리는 해당 지자체 위임사항이지만 문화재 보존·관리 책임은 문화재청장과 시·도지사가 함께 지게 되어 있다. 특히 내년부터 시행되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문화재청장과 시·도지사는 문화재 보존 및 보수·정비·복원, 안전관리 및 기록정보화 관련 사항이 포함된 종합적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현존 문화재 현황과 관리실태를 조사하고 기록해야 한다.

어느 한 쪽만 탓할 일은 아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멸실 직전에 놓이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문화재청과 울산시, 학계는 물론 시선을 돌리지 않은 시민들까지.

<윤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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