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마지막 만남’
2011년 11월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사무실. 이정배 파이시티 대표가 최 위원장을 찾아갔다. 이 대표는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파이시티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기 한 달 전이었다.
이 대표는 파이시티 채권단이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사업권을 빼앗으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파이시티 채권단 대표인 우리은행이 경영권 회수를 주도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 대표는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회장을 직접 만나 마지막으로 ‘구명’을 호소하려 했다. 이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청탁하러 최 위원장을 방문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 회장에게 면담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 터였다.
그러나 최 위원장은 이 대표의 청을 거절했다. 최 위원장은 “요즘 이팔성 회장이 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했다. 또 “파이시티 건은 정책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대신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위원장은 받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다시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됐다.
최 위원장은 권 원장에게 “이정배라는 사업자가 억울함이 있어 진정을 냈는데 내용을 살펴서 억울함이 없도록 해 달라”며 “조만간 저녁자리나 한번 하자”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등 5개 기관에 진정을 낸 상태였다.
권 원장과 통화를 마친 뒤 최 위원장은 이 대표에게 “권 원장을 따로 만날 기회가 있을 때 잘 말하겠다”고 했다.
최 위원장과의 대화를 마친 이 대표가 사무실을 나서려 했다. 그때 최 위원장이 혼잣말하듯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최 위원장은 “(이 대표는) ‘왓투(what to)’는 아는데 ‘하우투(how to)’는 몰라”라고 했다. 이 대표는 당시 돈이 달려 더 이상 최 위원장에게 돈을 줄 수 없을 때였다. 이 대표는 그 말을 듣고는 엄청나게 실망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제가 경륜이 부족한 탓이니 앞으로 잘 가르쳐달라”고 인사한 뒤 사무실을 나섰다.
이 대표는 이튿날 오후 4시쯤 금감원 민원 담당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대표는 “민원 문제로 설명할 기회를 갖고 싶으니 시간을 좀 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담당 국장은 “민원 내용을 대충 알고는 있는데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금감원이 직접 개입할 일도 아니다”라며 청을 거절했다.
2004년 말 로비스트 이동율씨 소개로 처음 만난 이래 이 대표와 최 위원장은 매년 3~4차례 만났다. 이 대표는 이동율씨를 통해 최 위원장에게 한 번에 5000만~1억원씩 20차례 넘게 돈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최 위원장을 방통위 집무실에서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