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놀림은 테크닉일 뿐, 연주할 땐 음악에 집중”

문학수 선임기자

내달 첫 한국 공연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 유자왕

중국 태생인 피아니스트 유자왕(26·사진)의 이름 앞에는 ‘초절정 테크닉’이라는 수식어가 놓여 있다. 2008년 스위스의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연주했던 ‘왕벌의 비행’은 믿기 어려울 만큼 ‘현란한 손놀림’을 보여줬다. 이 쇼킹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3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세계적으로 회자됐다. 믿기 어려운 동영상은 또 있다. 러시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볼로도스가 편곡한 ‘터키 행진곡’을 “연습삼아 연주했다”는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유자왕은 이 놀라울 만치 빠른 연주로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손가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가 단지 속주만으로 세계 무대에서 성공하기란 어렵다. 음악성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묘기’에 머문다. 최근 그에게 쏟아지고 있는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오로지 빠른 손놀림으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다시 시계바늘을 돌려본다. 2007년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샤를 뒤투아가 지휘하는 보스턴심포니의 협연. 이 연주회는 아르헤리치의 컨디션 난조로 불발됐고, 대타의 행운을 거머쥐었던 신예가 바로 유자왕이었다. 당시 연주했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에는 “힘과 테크닉, 음악적 아름다움을 겸비했다”는 여러 매체의 호평이 쏟아졌고 유자왕은 단숨에 신데렐라로 등극했다. 그는 2년 뒤에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내놓은 데뷔앨범으로 상승세를 이어갔고, 세계적 지휘자들의 러브콜을 잇따라 받았다. 그가 지금까지 함께 연주한 지휘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발레리 게르기예프, 유리 테미르카노프, 로린 마젤, 쿠르트 마주어를 비롯해 안토니오 파파노, 다니엘 가티, 마이클 틸슨 토마스, 구스타보 두다멜 등과도 연주했다.

다음달 29일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첫 연주회를 통해 샤를 뒤투아가 지휘하는 영국의 로열필하모닉과 협연하는 유자왕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이 젊은 피아니스트의 답변은 당돌하고 거침이 없었다. 빠른 손놀림에 대한 질문부터 던지자 그는 “저절로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단순히 테크니션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하면서 “사실 나는 그런 평가에 별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손놀림은 테크닉일 뿐, 연주할 땐 음악에 집중”

▲ “샤를 뒤투아·로열필 협연, 이번 연주 내겐 최고의 기회
한국 음식도 즐기고 싶다”

- 당신의 뛰어난 테크닉이 사람들한테 회자되고 있다. 엄청난 속주와 초절기교의 비결은? 외형적인 테크닉이 음악성을 가리는 측면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많은 분들이 나의 테크닉을 언급한다. 사실 나는 테크닉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것에 더 신경을 쓴 적도 없다. 연주할 때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려고 한다. 테크닉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일종의 스포츠 이벤트처럼 생각한다. 누가 더 빠르고 더 크게 연주하는지, 특이한 손과 몸의 동작을 만드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테크닉적인 평가에 전혀 관심이 없다.”

- 당신은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는데, 피아노를 언제부터 쳤나? 부모는 무슨 일을 하는가?

“6살 때부터 쳤다. 내 아버지는 재즈 퍼커션(타악기) 연주자다. 엄마는 댄서다.”

- 요즘 국제 무대에서 중국 피아니스트들의 돌풍이 거세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랑랑이다. 당신도 고국으로부터 어떤 국가적 지원을 받는가?

“중국은 거대한 대륙이다. 랑랑은 성공한 피아니스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로 인한 후광이 내 피아노 인생에 영향을 끼친 적은 없다. 나는 중국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도, 그것을 요청한 적도 없다. 그냥 연주자로서 피아노를 즐기고 최선을 다한다.”

- 한국에서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이 곡을 고른 까닭은?

“쇼팽은 모든 피아니스트에게 특별한 작곡가다. 그는 피아노의 울림과 피아노의 음색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작곡가다. 그것이 내가 쇼팽의 곡을 선택한 이유다. 마에스트로 뒤투아도 그 곡을 협연해줄 것을 요청했다.”

- 당신은 그동안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는데, 이번에 함께 연주하는 로열필하모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활기차고 에너지가 충만하다. 유연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다.”

- 다음 음반 계획은?

“올해 10월에 새로운 피아노협주곡 음반을 내놓을 계획이다. 아직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어서 좀 조심스럽다. 다만, 내가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꿈을 실현하는 레코딩이라는 점만은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많은 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해왔고 현대음악도 연주해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의 대가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내가 연주하는’ 작곡가다.”

- 한국을 처음 방문한다. 소감이 어떤가? 한국에서 뭘 하고 싶나?

“몇 년 동안 한국 연주를 고대해왔다. 첫 내한이 샤를 뒤투아가 지휘하는 로열필하모닉과의 협연이라는 것이 나한테는 최상의 기회다. 한국의 여러 곳을 다녀보고 싶지만 일정상 관광할 시간은 별로 없다. 하지만 연주가 끝난 다음에 한국의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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