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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법’ 국회 앞 최장기 농성…김영곤·김동애씨 부부

김영곤·김동애씨 부부가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10년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회 앞 최장기 농성이다. 부부는 2009년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본부장 김동애)와 2011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대표 김영곤)을 결성해 투쟁을 이끌어오고 있다.

김영곤·김동애씨 부부가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10년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회 앞 최장기 농성이다. 부부는 2009년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본부장 김동애)와 2011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대표 김영곤)을 결성해 투쟁을 이끌어오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를 흔히 ‘보따리 장사’라고 부른다. 강의는 하는데 학교에 책상 하나 없이 책 보따리 달랑 들고 이 학교 저 학교 떠돌아다닌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이처럼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시간강사들이 전체 대학 강의의 30%가량을 맡고 있다. 이들은 평균 6개월도 안돼 학교를 옮겨 다닌다. 그나마 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다.

지난 2010년 조선대학교 서정민 강사가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의 대학 내 차별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강사의 법적 교원 지위 보장과 처우 개선에 관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것이 2011년 국회를 통과한 소위 ‘시간강사법’이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법은 강사에 대한 실질적 처우 개선은 없고, 강사들의 대량해고만을 초래한다는 반발 속에 몇 년째 시행이 늦춰지고 있다.

부부는 주말에는 충남 당진 집에 내려가 이틀을 보낸다. 논 3000평을 임차해 우렁이 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텃밭을 일군다. 농성장에서 가져온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일요일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부부는 주말에는 충남 당진 집에 내려가 이틀을 보낸다. 논 3000평을 임차해 우렁이 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텃밭을 일군다. 농성장에서 가져온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일요일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100m가량 떨어진 건물 담장 앞에 오래된 텐트가 하나 세워져 있다. 텐트 옆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강사 교원 신분 회복한 강사법 즉각 인정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작고 낡은 텐트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친다.

이곳은 대학 시간강사 출신인 김영곤(67)·김동애(69)씨 부부의 농성장이다. 부부는 이곳에서 숙식하며 시간강사 교원 신분 회복을 촉구하는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2007년 9월7일 농성을 시작한 이후 벌써 10년째다. 국회 앞 최장기 농성장이다. 그동안 구청과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당한 경우가 세 번이고 비바람에 찢기고 닳아서 새로 바꾼 텐트만 5개가 넘는다. 농성 시작 초기에는 함께하는 강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장기농성의 어려움과 의견 차이로 2009년 모두 떠나고 지금은 부부 두 사람만 텐트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26일 아침, 텐트농성장에서 칠순 생일을 맞은 김동애씨가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지난달 26일 아침, 텐트농성장에서 칠순 생일을 맞은 김동애씨가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1.5평 남짓한 좁은 천막 안에는 부부의 살림살이로 가득 차 있다. 작은 냉장고와 정수기가 왼쪽에 놓여 있고, 중앙에 작은 밥상이 있다. 밥상 오른쪽이 부부가 몸을 누이는 공간이다.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가 없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아침밥을 짓는 것으로 부부는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점심때는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다. 오후에는 해고 강사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학을 찾아 연대시위에 참가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고 서정민 강사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인 광주고법을 찾아 1인 시위를 한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충남 당진 시골집에 내려간다. 주말 동안 논과 텃밭에서 농사일을 하며 밀린 빨래와 농성장에서 먹을 밑반찬을 준비한다. 텃밭 규모는 작아도 봄부터 가을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일요일에는 다시 국회 앞 농성장으로 돌아온다.

지난달 26일 아침, 부부는 천막농성장 작은 밥상에 마주 앉았다. 밥상 위에는 조그만 케이크가 하나 놓였다. 남편 김씨가 초에 불을 붙이며 부인의 ‘칠순’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길바닥에서 생일을 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칠순까지 맞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부부는 촛불을 끄며 서로를 위로했다.

“장기농성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10년을 했느냐고 하는데, 하루하루 끊임없이 싸워야 할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10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외로운 시간, 하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천막농성에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처음 농성을 같이했던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지금은 대학생들과 학부모 시민단체 등 새로운 사람들이 천막농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맵고 쓰고 달고 시고 떫은 노숙투쟁은 이제 부부에게 일상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시간강사 교원 지위가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여전히 대낮에도 등불을 켜고 길 위에서 길을 찾을 것입니다.” 이들 부부의 기나긴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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