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한완상…KBS 또 ‘블랙리스트’ 의혹

‘문 대통령 옹호’ 이유, 한 전 부총리 출연 당일 돌연 취소

KBS, 담당 국장 직위해제…한 “개인 아닌 구조적 문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주최로 열린 ‘고대영의 KBS에는 아직도 블랙리스트가 있다’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블랙리스트 의혹 정황을 폭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KBS가 “문재인 대통령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교육부 장관을 지낸 한완상 전 부총리의 라디오 출연을 갑작스레 취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다시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10일 언론노조 KBS본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부적격 출연자(블랙리스트) 분류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에 따르면 한 전 부총리는 지난 5일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을 녹음할 예정이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인 한 전 부총리는 김영삼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통일원 장관, 교육부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사회 원로이다. 그는 최근 펴낸 자서전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다>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기로 했으나, 녹음 당일 갑자기 출연이 취소됐다.

라디오프로덕션 이제원 국장이 “현 대통령을 옹호하는 회고록을 써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한 전 부총리 출연을 취소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한 전 부총리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 이야기는) 에필로그 끝부분에만 약간 나오는 데다가, 오히려 ‘촛불민심을 잘 받들라’며 권고하는 내용”이라며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평생의 삶을 담은 회고록을 정치적 홍보물로 폄하하는 데 분개했다”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담당 국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KBS의 구조적·문화적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같은 프로그램에 이정렬 전 판사가 출연했는데, 이 국장은 방송 직후 담당 PD에게 “이 전 판사는 쓰레기”라는 막말을 하는 한편 “심각한 방송사고”라며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이 국장은 이후로도 제작진에게 출연진 리스트를 사전 요구하는 등 ‘불편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KBS는 이 국장을 직위해제하는 한편, “KBS에는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해명했다. KBS에서는 앞서 박근혜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선대인 경제연구소 소장과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한 황교익 칼럼니스트 등이 <아침마당> 중도하차 통보를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