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들 “‘최저임금 7530원’, 우리에겐 그나마도 먼나라 얘기...”

김향미 기자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방송작가유니온 준비모임 제공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방송작가유니온 준비모임 제공

“카톡, 카톡….”

“내년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우리와는 동떨어진 얘기네요.”

“이럴 때 우리들의 목소리도 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과연 우리의 임금도 오를까요?”

내년도 법정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방송작가들의 단체 카톡방에선 몇 번의 알람이 울렸다. 메시지의 정서는 ‘씁쓸함’. 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지난 18일 전화통화로 방송작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20대 후반의 방송작가 ㄱ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는 게 청년들에게 엄청 반가운 소식인데, 나와는 연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뉴스를 보고 ‘언제쯤 방송업계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될까’, ‘방송작가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일은 과연 일어날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년차인 ㄱ씨는 업계 피라미드에서 가장 아래에 있다는 소위 ‘막내작가’다.

“막내작가는 상근직을 의미해요. 하루 8시간 근무는 기본이고, 어쩔 땐 밤 10시~11시까지 야근을 합니다. 프로그램 방영일이 가까워지면 편집이나 보도자료 작성 등의 업무가 늘어나 야근하는 날이 많아지죠. 하루 이틀은 밤새 일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야근이나 철야 노동에 대한 수당 개념은 아예 없어요.”

올해 법정 최저임금(6470원)을 월급(주 40시간·월 209시간)으로 환산하면 135만원 가량이다. 한 교양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일했을 때 ㄱ씨는 세전 16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오전 10시 출근, 오후 10~11시 퇴근이었다. 주말도 쉬지 않았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녹화를 앞두고 새벽 3~4시까지 일했다. ㄱ씨가 계산해보니 한 달 노동시간은 368시간으로, 시급 기준으로는 4347원을 받은 셈이었다.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인데도, 방송작가들의 임금 체계는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방송작가들은 법적으로 개인 사업자와 같다. 게다가 업계 관행상 계약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를 받아도, 임금체불이 발생해도 피해를 구제받기가 어렵다. 방송작가유니온 준비모임과 전국언론노조가 지난해 발표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막내작가의 급여는 시간당 평균 3880원으로 조사됐고, 임금체불 경험자는 전체 응답자(647명)의 46%였다.

“노동하는 만큼 대가를 받아야 하니까 최저임금이 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세사업자들도 힘들겠지만 인건비보다는 임대료나 가맹 수수료 등의 원인도 클 거예요. 그런데 최저임금을 논하는 자리에, 우리는 없더라고요. 시사·다큐 방송 분야에서 일하다보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해 많이 다루거든요. 정작 우리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요. 최저임금의 반도 못 받고 있는데요. 노동을 하고 있는데도 노동이 지워진 느낌을 많이 받아요.” ㄱ씨의 말이다.

20대 초반의 막내작가인 ㄴ씨는 “최저임금 뉴스를 보고 ‘나랑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세금 떼고 월급 100만원 가량을 받았다는 ㄴ씨의 최근 일터의 환경은 이렇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야근을 하고 새벽 1시에 퇴근을 한다. 방송 스케줄이 빡빡할 때는 퇴근해서도 일이 남아서 새벽 4시에 잠이 든다. 2시간 자고 또 출근 준비를 한다. ㄴ씨는 “그렇게 일하다가 이틀간 밤을 샜는데, 과로 탓에 몸이 아팠다. 병가는 꿈도 못 꾸는데, 제작비가 모자라다면서 구두계약한 월급을 못주겠다고 하더라. 나중에 결국 그 급여는 받지 못했다”면서 “병까지 나면서 일했는데 돌아오는 게 없어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막내작가들은 만만하니까 잡다한 일을 다 시키거든요. 어리니까 회사에서 성희롱이 있기도 하고요. 이런 저런 모욕을 감수하면서 왜 이러고 있나 회의감을 많이 느껴요. 전공이 이 분야이기도 하지만 취업난 속에 다른 걸 하겠다고 쉽게 떠날 용기도 나지 않아요. 최저임금 올리자는 서명운동에 저도 서명해요. 근데 그건 제 이야기가 아닌 거잖아요.”

ㄴ씨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의 사망 사건으로 방송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최저임금 논의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노동과 노동의 대가에 쏠릴 때조차 방송작가들의 이야기는 빠지거나, 이한빛 PD 관련한 뉴스들이 흘러간 것처럼 정작 방송작가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업계의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감이 자꾸 든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지난 5월1일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플래시몹을 벌이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방송 콘텐츠 제작 업계는 원래 그래”라는 말에 대항해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지난 5월1일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플래시몹을 벌이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방송 콘텐츠 제작 업계는 원래 그래”라는 말에 대항해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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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을 보면 방송작가는 여성 비율이 높은 직군이다. 20대 후반의 남성 작가인 ㄷ씨는 “오랜 꿈이었기에 방송작가의 열악한 처우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들어왔지만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1년차인 ㄷ씨는 “막내작가들의 급여는 최저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ㄷ씨는 “최저임금이 당연히 인상이 돼야 하고, 이번에 인상폭이 큰 것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그런데 방송작가는 10년째 급여가 오르지 않고 있으니 동떨어진 이야기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ㄷ씨도 막내작가의 급여가 시간당 2500~3000원 가량이라고 계산했다. 그는 “방송사마다, 프로그램마다 급여가 다 다른데 평균적으로 막내작가의 월급은 100만원으로 책정돼 있고, 정말 열악한 곳은 80만원 받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ㄷ씨는 이런 말도 했다. “방송업계에는 막내작가말고도 인턴들도 있는데, 그들은 급여를 방송사 협찬으로 들어온 상품권을 받기도 해요. 채용할 땐 그걸 알려주지 않죠. 막내작가들끼리 만나면 우리가 커피숍·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보다 급여가 적다는 말을 하는데, 사실 우리보다 더 처우가 안 좋은 친구들도 있는 셈이죠.”

방송작가들이 내년도 최저임금 7530원을 바라보면서 느낀 씁쓸함은 ‘우리는 이것밖에 못 받는데…’가 아니라 ‘우리도 그 만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열정페이’를 없애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방송작가유니온 준비모임의 이향림 작가는 “법망 밖에 있는 직종이라 최저임금이 인상되어도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얘기라 생각된다”면서 “최저임금 논의를 보면서 방송작가들이 한 생각은 어차피 시간 카운트와는 상관이 없다면, 생활을 위한 절대적 시간과 최저생활임금이라도 보장받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영화계에선 표준근로계약서를 쓰는 게 의무화돼서 막내 스태프도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면서 “방송작가들도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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