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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산사태 때 구민 아닌 피해자도 서초구·경찰 책임”

이혜리 기자

차량 매몰 손배소 항소심서 “구청, 관내 모든 이에 경고했어야”…경찰이 도로 전체 통제 안 한 것도 위법 판단

2011년 폭우로 인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때 차를 타고 지나가다 매몰된 피해자에 대해 서초구와 경찰이 안전보호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손해를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초구 측은 서초구 거주자만 보호하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방위 규정에 따라 재난이 발생하면 지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경보를 발령해 위험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도로가 침수된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차량 통제를 하지 않은 경찰도 위법하다고 봤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기관의 즉각적인 대처가 적절했는지를 엄격하게 따진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고법 민사29부(재판장 민유숙 부장판사)는 ㄱ씨가 서초구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ㄱ씨의 항소를 받아들여 서초구와 국가가 ㄱ씨에게 4억7767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ㄱ씨의 패소를 판결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ㄱ씨는 2011년 7월27일 오전 8시20분쯤 회사에 출근하려고 차량을 운전해 남부순환도로를 지나던 중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해 매몰되는 사고를 당했다. ㄱ씨는 우면산을 관리하는 서초구와 남부순환도로 담당인 방배경찰서가 안전보호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서초구는 ㄱ씨가 서초구 안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긴 하지만 거주자가 아니므로 대피 조치나 경보발령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서초구가 관내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재난경보를 발령해 위험을 알리고 대피를 명해야 했다고 봤다.

소방방재청 훈령인 민방위경보발령·전달규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에 재난경보를 발령하는 등 조치를 취하게 돼 있다. 재판부는 “서초구는 사이렌과 방송 등으로 산사태 주의보·경보를 발령해 산사태 발생 위험이 있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험 발생을 경고하고 대피를 명할 뿐만 아니라 산사태 발생 위험 지역으로 출입하려는 사람들을 통제해 인명피해 및 재산피해를 최소화했어야 함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그러한 과실과 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했다.

우면산이 이미 2006년부터 산사태위험 1급지로 분류됐고, 2010년 한 차례 산사태가 발생한 뒤 정비사업을 하고 있었는데도 서초구가 부주의했다는 점도 인정됐다. 심지어 산림청은 산사태 발생 전날인 2011년 7월26일 서초구 소속 담당 공무원으로 등록된 4명에게 경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1명은 퇴직한 상태였고 2명은 전화번호가 변경돼 문자메시지를 못 받았다.

도로 전체를 통제하지 않은 경찰의 조치도 위법하다고 재판부는 봤다. 당시 방배경찰서는 남부순환도로 진입 차량에 대한 교통 통제에 경찰관을 단 1명만 배치했다. 도로 일부가 침수됐지만 해당 경찰관은 혼자 형광봉을 들고 편도 4차로 중 2개 차로에 대해서만 통행을 제한했다. ㄱ씨는 이 차로를 이용해 남부순환도로에 진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면산 토사와 물, 나무더미 등이 도로로 쏟아져내려와 사고를 당했다. 방배경찰서는 산사태가 발생한 뒤에야 전면 교통 통제를 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은 적어도 당일 오전 7시40분쯤에는 산사태 발생의 현실적·구체적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도로 통행을 전면 금지하지 않고 2개 차로에 대해서만 제한했다”며 “재난 상황에서 요구되는 경찰관의 주의의무의 정도, 산사태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 등에 비추어 현저하게 불합리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했다.

ㄱ씨를 대리한 김영희 변호사는 “법원이 그동안 폭우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에 대한 지자체와 국가의 배상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판결에선 책임을 엄격히 판단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처해야 한다고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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