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 도시 관통하는 아름다운 강, 그 적막함에 이방인들은 놀란다”

손아람 작가
그림 | 성덕환 기자

그림 | 성덕환 기자

탈북자의 대부분은 삼엄한 경비에 둘러싸인 강을 건넌다. 국경을 벗어나기 위해 망망대해 위로 배를 띄우는 방법이 있지만, 바다는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다. 인간의 본능은 확실한 위험보다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탈북 새터민들의 증언에는 강을 건너는 순간의 긴장과 공포가 자주 나타난다. 배꼽 위까지 차오르는 강물의 섬뜩한 깊이와 얼음 같은 냉기,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유물을 어둠 속에서 흘려보내는 음산한 흐름, 수십m 건너편 이국땅까지의 불가능해보이는 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에 발을 들여야만 했다. 다리를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강 이남과 이북의 물가에서 바라보는 강 건너편은 압록강 건너 중국보다 멀고, 두만강 건너 러시아보다 멀다. 고대로부터 국경이 되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거대한 강이지만 그 물리적 의미는 수면 위로 발끝을 담글 일조차 없는 시민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 사람들은 이제 강이 가른 남과 북의 사회경제적 지표 차이에 더 익숙하다. 강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100여년에 걸쳐 건설된 30여개의 다리 위로 하루 수천대의 열차와 수백만대의 자동차가 드나들게 된 덕분이다. 위성 지도로 내려다보면 한강 이남의 땅을 바느질 자국처럼 촘촘하게 대륙에 꿰매놓은 이 거대한 다리들은 한강 그 자체보다 더 명확하게 서울의 지정학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대도시를 가로지르는 하천과 해협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렇게 많은 다리들이 물을 지우고 생활권을 긴밀하게 융합하는 경우는 드물다.

파리의 센강과 런던의 템스강에는 한강보다 약간 많은 숫자의 다리가 놓여 있지만, 강폭이 한강의 4분의 1인 개울에 다름없어 비교대상이 되기 어렵다. 한강과 폭이 엇비슷한 해협이 흐르는 대도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홍콩의 도심으로 이어지는 다리는 각각 두 개뿐이다. 디젤 엔진을 장착한 소형 페리가 100년 넘게 두 도시의 실질적 교통수단으로 운항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전야의 홍콩에서 파티의 흥에 취한 나머지 마지막 배편을 놓쳤던 때를 나는 기억한다. 뭍으로 이어진 두 개뿐인 다리를 건너는 택시 요금은 이미 홍콩의 악명 높은 숙박비에 육박했다. 그때 주룽반도의 전설적인 야경을 머금은 얕은 해협은 섬의 의미를 분명하게 일러주었다. 그것은 물이 갈라놓은 땅이 아니라, 다리로 연결되지 않는 땅이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개발 과정에서 한강의 강둑에는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수십㎞ 길이의 콘크리트 제방이 들어섰다. 그 위로 직관적이고 경제적인 동서 방향의 간선도로가 깔렸다. 미래를 염두에 두고 지하차도나 고가도로를 도시계획에 포함할 여력이 없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교량 건설은 한결 수월해졌지만, 앞은 콘크리트 제방에 막히고 뒤는 자동차도로에 잘려나간 강가의 땅은 생태적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사람들도 더 이상 강에 일상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강가는 어느 대도시에서나 사랑을 듬뿍 받는 낭만적인 장소가 되기 마련이지만, 시민공원이라 이름 붙은 한강의 인공 녹지는 역설적으로 시민의 생활에서 물리적으로 단절된 공간이다. 서울 시민들은 익숙해져서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배낭 하나를 어깨에 걸머지고 이 행성의 수많은 도시들을 유랑한 끝에 서울까지 흘러들어온 이방인들은 인구 천만의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아름다운 강의 적막함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기이하고 풍부한 냄새가 떠도는 시끌벅적한 야시장이나, 촛불과 와인잔이 놓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연인들을 기대하면서 강을 찾지만, 어둠이 깔리면 서늘한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자전거도로 위에서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 몇 명이 땀범벅이 된 채로 뛰고 있을 뿐이다. 마치 잠든 도시를 지키는 외로운 파수꾼처럼.

■ 한강 위에 처음 세워졌고 처음으로 무너진 이 다리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화창한 날씨를 보인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상공에서 드론을 이용해 찍은 한강대교(맨 앞)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1917년 한강에 인도교로는 처음으로 건설된 한강대교는 1950년 한국전쟁 때 폭파됐다. 한강에 있는 다리 중 최초로 건설되고 동시에 최초로 무너진 다리이기도 하다. 다리 가운데 섬(노들섬)이 있기 때문에 섬 남쪽과 북쪽을 모두 합하면 총길이는 1036m가 된다.

화창한 날씨를 보인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상공에서 드론을 이용해 찍은 한강대교(맨 앞)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1917년 한강에 인도교로는 처음으로 건설된 한강대교는 1950년 한국전쟁 때 폭파됐다. 한강에 있는 다리 중 최초로 건설되고 동시에 최초로 무너진 다리이기도 하다. 다리 가운데 섬(노들섬)이 있기 때문에 섬 남쪽과 북쪽을 모두 합하면 총길이는 1036m가 된다.

강을 건너기가 까다롭던 시절
인도교로 처음 건설된 한강대교
예나 지금이나 각각의 사연을 담아
강을 건너던 사람들, 그중의 나

강을 걸어서 횡단하는 문제에 나는 어려서부터 강렬하게 사로잡혔다. 그 매혹적인 가능성을 처음으로 실현했을 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원효대교 위에서, 암울하게 길어보이는 교량 구간은 줄어들 기색이 없었다. 머릿속은 다리의 끝과 이어진 경사로 아래서 나를 기다리는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명, 음향기기, 컴퓨터 부품을 판매하는 상가구역을 나는 차례대로 지날 것이고, 팔뚝을 거칠게 잡아채는 복제비디오테이프 행상인을 무사히 뿌리쳐야 했다. 그러면 목적지인 비디오게임 상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닌텐도의 비디오게임을 사려고 저금통에 모았던 용돈이 목표액까지 도달하는 날을 며칠 더 앞당기려면, 버스를 포기하고 다리를 걸어서 건너야만 했던 것이다. 거기서 제 가격을 주고 물건을 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본 대중문화 접촉이 금지된 시대의 암거래 물품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다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지만.

소니보다 삼성을, 슈퍼마리오보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전자상거래 시대까지 열리면서 이곳의 소매점들은 최저가 검색에 통달한 소비자를 향하는 길에 거치는 물류 거점으로 전락했다. 주차장 구석에는 금이 가고 먼지가 쌓인 폐가전제품이 쌓여 있고, 숭숭 구멍 뚫린 차양 아래서는 배송기사들이 모여 지친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나도 더 이상 원효대교를 즐겨 걷지 않는다.

비디오게임을 향한 열정도, 총길이가 1.5㎞에 달하는 다리를 두 발로 걸어서 건넌 무모함도 이해할 수 없어서 나의 부모님은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내가 저지른 잘못이 한 영화감독의 반세기 전 회고담보다 멀리 나아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주도 남쪽 끝 모슬포항에서 바다를 장막 삼아 열린 서커스단의 순회공연을 공짜로 훔쳐보기 위해, 세 시간 동안 어둡고 쌀쌀한 근해에 둥둥 떠있다가 저체온증에 걸린 어린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같은 세기에 속한 우리의 과거는 오히려 한 묶음으로 취급하는 편이 적당하지 않을까? 아이패드로 앱스토어에 접속해서 어머니 신용카드에 적힌 열여섯 자리 숫자를 몰래 입력한 뒤 마인 크래프트를 다운로드 받는다는 여덟 살짜리 아이들의 세계 경험은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편리한 것은 더 단순하고, 단순한 것은 더 희미하다. 부둣가의 부산한 풍경과 뱃삯이 적힌 통행권을 구입하는 번거로움을 강 위의 다리들이 말끔하게 지운 뒤로 물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간선 버스와 전철에 몸을 싣고 퇴근하는 서울시민들은, 이제 강을 건너는 1분 동안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파묻거나 피로를 못 이겨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렇게 붉은 노을에 잠식당해 도시의 하루가 종말하는 광경을 놓치고 만다. 수평선에 잠긴 태양을 관찰하도록 서울에 허용된 유일한 때와 장소를. 강을 건너기가 훨씬 까다롭던 시절에는 그 풍광의 특별함을 누구나 쉽게 알아보았다. 1921년에 쓰인 한 신문기사는 인도교로서는 처음으로 건설된 한강대교의 모습을 꽤나 감상적인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경성과 용산 사이에 전차삯이 통일되어 그전에 십전씩 내던 차삯을 오전만 내면 가게 되었으므로 저녁을 먹고 한강철교로 향하는 사람은 더욱 늘게 되었다. 신용산 종점에 가서 내려 한참 가면, 양양히 흐르는 한강물이 중천에 떠 있는 교교한 달빛과 가늘게 부는 저녁 바람을 받아 금빛을 뿌린 듯이 아름다운 물결 위로 멀리 젖은 안개 속에 고기 잡는 불 반짝이는 작은 어선들이 수없이 떠 있다. 인도교 좌우편에 있는 난간에는 양복 입은 신사와 사랑하는 아내가 어깨를 같이하여 나온 젊은 부부도 있고, 눈처럼 빛나는 모시 여름옷을 입은 젊은 부인도 있고, 테 넓은 여름 모자를 쓴 노동자도 있고, 검정 치마를 입고 양쭉진 여학생까지 실로 형형색색인데, 간간이 황금을 뿌리는 야유랑들이 자동차에 기생을 싣고 달리기도 한다.”(동아일보 1921년 8월22일자 기사)

엄밀히 말해 한강대교가 한강에 세워진 첫 번째 보행교는 아니다. 조선 초기부터 배를 연결한 다리인 주교(舟橋)가 왕의 도강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지곤 했다. 특히 정조의 화성행차를 위해 현재의 한강대교 위치에 가설된 노량주교에 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다리는 닻을 내려 고정시킨 수백 척의 민간 상선에 소나무를 베어 만든 널빤지를 놓은 뒤, 그 위에 흙을 덮고 잔디를 깔아 만든 부교였다. 6000명의 행렬이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 가려고 물위를 걸어 수원으로 향했고, 다리를 다시 밟아 궁으로 돌아왔다. 다리는 8일 만에 역할을 끝내고 해체되었다. 이 위대하고 터무니없는 규모의 공사는 강의 크기를 확인하고 그보다 더 큰 왕의 권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1950년, 전쟁에 폭파된 순간만큼
강의 크기 분명히 드러난 적 없어
동틀 녘 어스름에 북단에 도착한
피란민들은 목격했을 것이다
강물의 핏빛 흐름과 사체를

하지만 반대로 물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가 소실되었던 순간만큼 강의 크기가 분명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1950년 6월28일 새벽,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까지 내려온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육군은 공포에 질려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들로 가득 찬 한강대교를 폭파했다. 적군의 전진과 함께 시민들의 후진까지 저지시킨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이승만 정권의 치부로 회자된다. 하지만 정치사 논쟁의 추상성은 오히려 이날 피란민의 눈에 비친 절망적인 풍경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생명을 걸었든 한때의 취미든
우린 그 의미에서 출발한다
바로, 강을 건넌다는 것

반세기 만에 전기가 끊긴 밤을 맞은 칠흑의 도시, 남산 너머로 피어오르는 연기에 투사되어 명멸하는 섬광, 전황을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는 라디오 앵커의 어조에서 불길함을 감지하고 등짐을 싼 가족 단위 피란민들, 교량 출입을 막아선 군인과 피란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실랑이, 성난 군중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맥없이 돌파된 통제선, 본부에서 내려온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작전 실행 명령, 이미 수천의 인파가 막무가내로 올라선 생명줄에 이어진 버튼 위에서 망설이는 손가락, 그리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듣게 된 포격의 굉음…. 동틀 녘의 어스름에 한강 북단에 도착한 피란민들은 목격했을 것이다. 검게 그을린 교각 사이로 퍼져나가는 강물의 핏빛 흐름과 폐사한 물고기떼처럼 떠다니는 사체를. 그 새벽, 살기 위해 붉은 강에 뛰어들 용기를 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물 건너 강둑까지의 거리가 측량이 개시된 이래 가장 멀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한강 위에 처음으로 세워졌고 또 처음으로 무너졌던 이 유서 깊은 다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 필자 손아람

2008년 과거 자신이 활동한 힙합 그룹의 이름을 딴 동명의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발표했다. 2010년에는 장편소설 <소수의견>의 원작자이자 공동 각본가로 제24회 부일영화상 각본상과 제36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등을 수상했다. 그 외 <디 마이너스> <세계를 만드는 방법> 등을 집필했다.


■ 시리즈 순서

1. 한강대교(상)
2. 한강대교(하)
3. 양화대교
4. 마포대교
5. 부산 영도대교
6. 영동대교
7. 반포대교
8. 영주 무섬외나무다리
9. 서강대교
10. 한남대교
11. 팔당대교
12. 성수대교
13. 동작대교
14. 춘천 소양2교
15. 청계천의 다리들
16. 제주 북촌포구 구름다리
17. 광양 태인대교


손아람 작가의 ‘다리를 걷다 떠오르는 생각’은 동영상으로도 선보입니다.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작가의 이야기와 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밀도 있게 영상 속에 그려집니다. 경향신문의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www.youtube.com/thekyunghyangtv)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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