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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뮤지션 아미두 디아바테.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뮤지션 아미두 디아바테.

“얄라 얄라 얄라~~코레아 얄라~~(둥둥 두두둥)~~아프리카 얄라~~얄라 얄라 얄라~~”

대지를 달구던 여름 해가 질 무렵, 부천시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 몸짓나래 강의실에서 구슬프지만 흥겨운 음악이 들려온다.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아미두 디아바테(37.이하 아미두)가 방과후수업 강의를 마친 후 동생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조롱박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칼라바시(Calabash)의 리듬에 맞춰 나무건반을 연주하는 발라폰(Balafon) 특유의 경쾌하고 맑은 소리에 서아프리카 현악기 은고니(Ngoni)의 은은한 화음이 더해진다. 듈라어(Dyula.부르키나파소 토속어중 하나)로 부르는 노랫말이 읊조리듯 연주를 타고 흐른다. 이 곡의 제목은 ‘얄라’, 우리말로 ‘여행’이다. 2012년에 한국에 들어 온 아미두가 자신의 굴곡진 한국생활을 생각하며 직접 만든 곡이다.

아미두(오른쪽)가 부천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 몸짓나래 강의실에서 동생들과 함께 연주 연습을 하고 있다.

아미두(오른쪽)가 부천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 몸짓나래 강의실에서 동생들과 함께 연주 연습을 하고 있다.

2014년 2월,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서 공연단원으로 일하던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임금체불과 인종차별 등을 겪으며 ‘노예노동’에 시달려온 사실이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알려졌다. 아프리카 공연노동자들은 2년 동안 최저임금(당시 최저임금은 시간당 5,210원, 월 기준 108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시설의 기숙사 생활을 해야만 했다. 여권도 압수당한 채 이동의 자유를 제한 받았다. 심지어 이사장이 당시 집권여당(새누리당)의 사무총장이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아미두는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서 노예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아미두가 젬베 연주를 하고 있다.

아미두가 젬베 연주를 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오디션을 통과한 뒤 월급 600달러, 1일 식비 2,500원이 나쁘지 않은 계약조건이라 생각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어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또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도 몰랐어요. 심지어 제가 타고온 비행기 티켓 비용을 차감한 월급을 받았어요.” 아미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쪽방에서 함께 지내며 고생한 동료 대부분은 체불임금과 여권을 돌려받고 아프리카로 떠났지만 그는 한 달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5년 2월, 쿨레칸 시절의 아미두(오른쪽)가 에스꼴라 알레그리아에서 발라폰 연주를 하고 있다.

2015년 2월, 쿨레칸 시절의 아미두(오른쪽)가 에스꼴라 알레그리아에서 발라폰 연주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차별과 상처를 받았지만 나를 도와준 사람들도 한국사람이었어요. 한국을 더 알고 싶었고 다른 음악도 하고 싶어서 다시 왔어요. 아프리카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돈도 벌어야 해서….” 돌아온 아미두는 2014년 4월부터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의 동료인 에마누엘 사누(39)와 함께 문화예술단체 ‘에스꼴라 알레그리아’에서 ‘쿨레칸(뿌리의 외침)’이라는 아프리카 전통공연 팀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사건’의 피해자 중 한국에 다시 돌아온 ‘유이’한 사람이다. 아미두는 악기를 연주하고 에마누엘은 춤을 추며 한국인들을 만났다. 하지만 자유로운 일상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차별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는 지하철을 타면 자리에 앉지 않는다. 빈자리가 나서 앉으면 옆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아미두가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미두가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걸까? 내가 무서워 보이는 걸까? 피부색이 다를 뿐인데 이해가 안돼요. 택시도 똑같아요. 낮에는 탈 수 있는데, 밤에는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가 날 태우지 않아요. 심지어 (한국어가 서툰 나를 대신해) 다른 사람이 콜택시를 불러도 내가 서 있는 주변을 빙빙 돌다 그냥 가버려요.”

아미두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지하철에서 절대 자리에 앉지 않는다.

아미두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지하철에서 절대 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는 현재 쿨레칸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인 아내 이영수씨(44)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부터다. 자신을 닮은 아들 루민(2)도 태어났다. 들쭉날쭉한 수입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어 2015년부터 띄엄띄엄 프리랜서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경기도 부천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에서 정기적인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 5개의 수업을 진행하며 송내동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아프리카 음악을 가르친다. 주말에는 가끔 각종 행사장에서 아프리카 전통공연을 하며 돈을 번다.

아미두가 자신의 집에서 아들 루민과 함께 젬베를 만들고 있다.

아미두가 자신의 집에서 아들 루민과 함께 젬베를 만들고 있다.

아내 이씨는 결혼 전에 아미두와 함께 부르키나파소를 다녀왔다. “고향이라고 갔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가난한 시골마을이었어요. 형제와 가족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죠.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지만 일자리는… 제 남편이지만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아미두가 가끔은 측은해져요.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할까 해요.” 아미두는 한국의 가족뿐 아니라 부르키나파소에 남아있는 형제와 가족들의 생계도 책임지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1인당 국민소득이 1천불 미만인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다. 지난해부터 친동생 야쿠바 디아바테(24)와 사촌동생 하루나 디아바테(34)가 부천에 머물며 아미두의 강의와 공연을 돕고 있다.

아미두가 어린이들에게 젬베를 가르치며 음악수업을 하고 있다.

아미두가 어린이들에게 젬베를 가르치며 음악수업을 하고 있다.

아미두가 부천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아미두가 부천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그를 강사로 초빙한 송내동청소년문화의집 조윤령(47) 관장은 아미두에게서 뮤지션 이상의 자질을 발견했다. “아미두는 부르키나파소에서 ‘그리오(Griot.음악가 계급)’에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와 음악으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마을공동체 회복운동에 꼭 필요한 존재에요. 아이들이 처음에는 약간의 경계를 하지만 아미두와 음악수업을 하다보면 금새 친구가 돼요.” 조 관장은 ‘그리오’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청소년들과 함께 부르키나파소를 다녀온 후 아미두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졌다고 말한다. 아미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러워한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그리오’여서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며 자랐지만 가난 탓에 부르키나파소에서 정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미두의 꿈은 학교를 세워 음악으로 행복을 나누는 것이다.

“한국사람 좋은 사람 많아요. 하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음악을 즐기면 행복해 질 수 있는데… 한국사람은 술을 마셔야 행복한 것 같아요.”

아미두가 서울 합정동의 합주실에서 트레봉봉 멤버들과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아미두가 서울 합정동의 합주실에서 트레봉봉 멤버들과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아미두는 ‘앗싸(AASAA)’에서 ‘트레봉봉(TRESBONBON)’으로 최근 팀명을 바꾼 인디밴드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트레봉봉은 기타와 드럼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악 사운드에 아프리카 전통악기를 접목시킨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다. 그는 밴드에서 젬베와 발라폰 등을 연주하며 아프리카 특유의 목소리를 보태기도 한다. 아미두가 밴드 활동을 하는 이유는 음악 강사와 전통공연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때문이다.

아미두가 소속된 밴드 ‘트레봉봉’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신촌 파랑고래 야외무대에서 싱글앨범 <간지족들 삐졌나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고 있다.

아미두가 소속된 밴드 ‘트레봉봉’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신촌 파랑고래 야외무대에서 싱글앨범 <간지족들 삐졌나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고 있다.

‘3호선 버터플라이’ 출신의 음악인이자 트레봉봉 리더인 성기완씨(51)는 아미두가 아프리카 ‘토속 음악인’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아프리카 음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아미두를 알게 돼서 함께 밴드를 하자고 제안을 했죠. 이 친구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 같아요. 한 번 들은 음은 아프리카 악기로 바로 연주를 해요. 악보를 볼 줄도 모르는데, 못 다루는 악기가 없어요. 우리 밴드의 보물이죠.” 아프로-아시안 뮤직을 표방하는 트레봉봉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음악축제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한다. 음악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공평할 것 같지만, 아미두는 여기서도 뿌리 깊은 차별을 실감한다. 나라이름도 생소한 부르키나파소 출신이어서 초청국가의 입국을 거절당해 한국인 멤버들만 무대에 오른 적도 있다. 밴드 멤버들은 공연무대라도 자주 만들어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지만 생업으로 바쁜 아미두의 일정 탓에 합주 시간을 잡기도 힘들다고 아쉬워한다. 한국에서 인디밴드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그 공간에서조차 ‘이방인’이자 ‘마이너’인 아미두는 버텨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인디밴드’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아미두가 악기를 둘러메고 지하철을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다.

아미두가 악기를 둘러메고 지하철을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다.

늦은 밤, 서울 합정동의 합주실에서 공연 연습을 마친 아미두는 자신의 악기를 둘러메고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긴다. 언제나처럼 지하철 안에서 자신을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다. 이젠 익숙하다. 지하철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과일가게 주인과 안부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어느덧 이웃이 생긴 것이다. 가로등의 조명만이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골목에 들어서면 그는 혼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아미두가 아내 이영수씨, 아들 루민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미두가 아내 이영수씨, 아들 루민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얄라 얄라 얄라~~ 얄라 얄라 얄라~~”

한국생활 8년 째, 아미두의 행복을 향한 여행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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