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잡습니다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의 비정규직 노동자 조다산씨가 근무복 대신 투쟁조끼를 입고 서울 영등포역 매표창구 앞에 서 있다. 여객매표 업무를 하는 그의 임금은 같은 업무를 하는 코레일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강윤중 기자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의 비정규직 노동자 조다산씨가 근무복 대신 투쟁조끼를 입고 서울 영등포역 매표창구 앞에 서 있다. 여객매표 업무를 하는 그의 임금은 같은 업무를 하는 코레일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강윤중 기자

“같은 업무인데 임금은 절반에 못 미치고 고용도 불안합니다.”

조다산씨(30)는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의 비정규직(무기계약직) 노동자다. 조씨는 기차역에서 여객매표 업무를 한다. 지방대 철도과를 졸업하고 2011년 입사했다. “8년 넘게 일했는데 이제 들어온 1연차 직원과 급여가 같습니다.” 그마저도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회사가 ‘원청’인 코레일과 매년 위탁사업을 계약해 연차나 퇴직금 반영도 없다. 고용도 안정적이지 못하다. 2년 전, 군산역에서 근무하던 그는 위탁계약 종료로 희망퇴직을 권고받기도 했다. 이후 근무지를 옮겨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의 4분의 1이 집값으로 잘려나간다. “결혼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집이라도 장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조다산씨가 영등포역 매표창구에서 열차 승차권을 판매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조다산씨가 영등포역 매표창구에서 열차 승차권을 판매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야간근무를 앞둔 그를 영등포역에서 만났다. 근무복이 아닌 사복에 투쟁조끼 차림이었다. 조씨가 소속된 노조는 지금 ‘사복투쟁’ 중이다. 코레일 정규직 임금의 80%, 원하청협의체 구성 등 ‘진짜 사용자’ 코레일이 합의사항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20대를 보내고 30대에 이른 그는 “청년이 미래라면서 늘 일회용 취급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일회용컵이 아닌 머그컵이 되고 싶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중소 재활병원에서 일하는 김지윤씨(작업치료사·왼쪽)와 심희선씨(물리치료사)가 지하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치료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섰다. 이들은 부당한 처우와 노동환경에 맞서 4년 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병원의 노조탄압 속에서도 크고 작은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중소 재활병원에서 일하는 김지윤씨(작업치료사·왼쪽)와 심희선씨(물리치료사)가 지하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치료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섰다. 이들은 부당한 처우와 노동환경에 맞서 4년 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병원의 노조탄압 속에서도 크고 작은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김지윤씨(33)는 서울 시내 중소재활병원의 10년차 작업치료사다. “부모님 짐을 덜어드리려” 빨리 취업이 된다는 학과를 선택했고, 국가고시를 치른 뒤 치료사가 됐다. 고용과 임금이 안정적일 거라는 기대 속에 들어온 병원은 “전쟁터”였다. “낮은 인건비로 최대한 치료사를 굴려 수익을 냅니다. 5년차 이상 숙련된 치료사를 돈 많이 드는 고연차라며 퇴물 취급을 했어요.” 입원실 침상을 늘리려 지하주차장을 개조해 치료실을 만들었고, 노동자들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 또 김씨는 선배들을 보며 결혼과 임신·출산은 곧 퇴사라 생각했다.

김지윤씨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촛불혁명 3주년 학술토론회’에 참석해 청년노동의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김지윤씨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촛불혁명 3주년 학술토론회’에 참석해 청년노동의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김씨와 함께 일하는 물리치료사 심희선씨(33)는 “더이상 아프지 않고 오래 일하고 싶어 2015년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했다. 심씨는 노조 초대지부장을 지냈다. 노조설립 이후 병원의 감시와 괴롭힘, 징계와 고소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지난 4년 노조탄압에 맞서면서 임금인상, 토요근무 수당, 출근시간 회복 등 이뤄낸 성과가 적지 않다. 심씨는 “누가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에 대해 청년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직장으로 만들어 병원과 같이 성장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일용직 건설노동자인 이호씨가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그는 청년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일용직 건설노동자인 이호씨가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그는 청년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경기 남양주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만난 이호씨(34)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다. 이씨는 건물 뼈대인 형틀(거푸집)을 올리는 기술자다. 인테리어사업에 실패한 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건설현장에 뛰어들었다. “한때 힘들고 부끄러웠다”는 이씨는 “이제 당당한 직업군으로 인식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힘을 보태고 싶고, 그래서 용기내고 있습니다.”

이호씨가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결의대회에서 청년노동자 대표로 발언한 뒤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호씨가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결의대회에서 청년노동자 대표로 발언한 뒤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 달 29일 이씨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회에서 청년노동자 대표로 무대에 올라 “노동자가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청년노동단체 ‘청년전태일’의 김종민 대표(왼쪽 다섯번째)와 청년들은 지난 9월11일 조국 법무부장관과 만나 2030청년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청년전태일 제공

청년노동단체 ‘청년전태일’의 김종민 대표(왼쪽 다섯번째)와 청년들은 지난 9월11일 조국 법무부장관과 만나 2030청년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청년전태일 제공

청년단체와 노조를 중심으로 ‘청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청년노동단체 ‘청년전태일’의 김종민 대표는 “IMF 이후 20년, 비정규직·고용불안·저임금 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청년들은 부당한 처우에 개인 탓이 내면화됐다”면서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 가려졌던 가치가 드러나고 자기 삶에 대한 권리의식과 공정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다”고 풀이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취재하며 만난 청년노동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반세기 전 몸을 불사른 청년 전태일의 외침과 다르지 않다. 다가오는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49주기다.

[정정보도][포토다큐]2019년 청년 전태일들의 외침 “사람답게 살고 싶다” 관련

본지는 작년 11월8일자 [포토다큐]2019년 청년 전태일들의 외침 “사람답게 살고 싶다” 제하의 기사에서 금천수요양병원에 근무하는 김지윤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해당 병원이 입원실 침상을 늘리려 지하주차장을 개조해 치료실을 만들었고, 노동자들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병원은 지하주차장을 개조해 치료실을 만든 사실이 없고, 본래부터 지하에 치료실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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