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악취’와 20년, 18가구서 10여명 폐암 사망…장암은 ‘제2 장점마을’

김한솔 기자

평화롭던 마을에 무슨 일이

주민 유성진씨가 마을에 흐르는 개울 바닥을 파내자 아스팔트처럼 새카만 흙이 모습을 드러내며 역한 냄새를 풍겼다. 유씨는 공장이 폐기물을 매립하며 생긴 침출수 때문이라 보고 있다(위 사진). 마을 인근에 자리 잡은 폐기물 처리공장의 전경(가운데). 현재 공장은 폐업했지만, 지금도 부여군과 의회의 현장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주민 유성진씨가 마을에 흐르는 개울 바닥을 파내자 아스팔트처럼 새카만 흙이 모습을 드러내며 역한 냄새를 풍겼다. 유씨는 공장이 폐기물을 매립하며 생긴 침출수 때문이라 보고 있다(위 사진). 마을 인근에 자리 잡은 폐기물 처리공장의 전경(가운데). 현재 공장은 폐업했지만, 지금도 부여군과 의회의 현장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다 끝났는데 허면 뭘 혀. 그때 별짓 다 해도 해결을 못했는데, 지금 와서 뭘.”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초입. 작업복 차림으로 마당에 나온 김정환씨(63·가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20년 전 마을에 폐기물 처리공장이 들어선 이후 악취와 연기, 먼지와 싸우며 살았다. 그가 산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만큼의 세월이었다.

그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공장과 부여군청에 찾아가 항의를 할 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조사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마을 개울에서 가재와 새우가 자취를 감췄다. 논의 벼는 자꾸 죽었다. 20가구도 채 안되는 작은 마을에서 10여년간 10여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내에 가려면 차를 타고 20분은 나가야 하는 시골 마을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공장은 20년간 끄떡없이 돌아가다가 공장 대표가 세상을 떠난 2018년에야 폐업했다. 공장은 가동을 멈췄지만,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 고령인 마을 주민들은 20년 전만큼 강하게 항의하지 않는다. 항의를 통해 상황이 나아졌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3일 이 마을을 찾아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 마을 주민 폐암으로 잇달아 사망

장암면에 ㄱ산업이 자리를 잡은 것은 1998년이었다. ㄱ산업은 폐기물을 재활용해 벽돌을 만드는 업체(종합재활용업)로 부여군청의 영업 허가를 받았다. 2006년에는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도 추가로 허가받았다. 장하리는 장하1리와 장하2리로 나뉘는데, ㄱ산업이 공장을 차린 곳은 마을 주민들이 ‘우대골’이라고 부르는 장하2리의 얕은 산이었다.

‘벽돌 공장’인 줄로만 알았던 공장이 들어선 뒤 김씨의 일상을 뒤덮기 시작한 것은 ‘악취’였다. 마을 초입 대로변에 위치한 그의 집 앞을 폐기물을 가득 실은 20t 트럭이 매일 수십대씩 지나다녔다. 창문을 열어놓지 못할 정도로 심한 악취가 이어졌다. 냄새는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개울에서도 나기 시작했다. 개울물이 닿은 논의 벼가 죽어나갔다.

폐기물 환경오염 피해를 겪고 있는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2리 마을 모습. 18가구가 살고 있다.

폐기물 환경오염 피해를 겪고 있는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2리 마을 모습. 18가구가 살고 있다.

이상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김씨는 “애들이 목욕만 하면 뾰루지가 난다면서 집에서 나오는 물로는 목욕도 안 하려 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이 생활용수, 농업용수로 쓰던 지하수였다. 참다못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까 고민했지만, 평생 산 고향을 떠나긴 쉽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장이 기준치 이상의 폐기물을 불법으로 땅에 묻고 태운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기가 막 하늘로 올라가매, 밤인데도 별이 하나도 안 뵀어.” 경로당에서 만난 김매화씨(87)는 ㄱ산업이 영업을 할 당시 밤마다 공장 부지 쪽에서 나던 연기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낮에는 안 태우고, 밤에만 태웠지. 연기가 밤새도록 났어… 매캐한 게.” 이정원씨(77·가명) 역시 산을 타고 스멀스멀 흘러오던 연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씨는 “거기서 뭐 태우면, 바람만 솔솔 불면 다 이리로 왔어”라며 “연기가 산을 따라서 왔지. 해가 긴 여름 저녁이면 연기가 보였어. 자욱했어”라고 했다.

마을에서 아이를 낳아 키운 박영은씨(가명)는 “공장이 한창 가동될 때, 애가 어렸는데 냄새 때문에 애가 밖에서 노는 걸 싫어했다”고 했다. 어떤 날에는 차에까지 악취가 뱄다. 박씨는 그 냄새를 ‘소독약 같은 냄새’로 기억하고 있었다.

주민 유성진씨(63·가명)와 함께 마을 개울로 갔다. 날이 춥고 겨울이라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데도, 개울 가까이 가자 알 수 없는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물은 ㄱ산업 부지 쪽에서 마을로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유씨는 “비가 오는 날이면 냄새가 말도 못하게 더 심하다”고 했다. 유씨가 삽으로 개울 쪽 땅을 파자 아스팔트처럼 새카만 흙이 모습을 드러냈다. 흙보다는 ‘슬러지’(오니)에 가까워 보였다. 유씨는 공장 부지에 폐기물을 매립하면서 생긴 ‘침출수’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유씨는 “개울물을 떠 금붕어 4마리가 든 어항에 넣었는데, 4시간 만에 2마리가 죽고 7시간 뒤에는 다 죽었다”고 했다.

마을에서는 지난 10여년간 10여명의 주민이 세상을 떠났다. 장하리 토박이인 임태원씨(82·가명)는 “18가구밖에 안되는 이 조그만 마을에서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12명이 죽었다”면서 암으로 세상을 뜬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대기 시작했다. 그의 남편도 3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씨의 집 역시 ㄱ산업이 들어선 뒤 나기 시작한 악취 때문에 여름에도 창문을 닫고 지내다가, 그도 모자라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아예 집 사방에 창문을 덧댔다. 임씨는 “폐암으로 멀쩡한 양반(남편)이 가셨다.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단단했던 양반이 어떻게 그리 가셨냐고들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폐암으로 진짜 많이 죽어서, 공장이 들어와서 그렇게 됐다고 소문도 많이 났다. 임씨 남편 그렇게 된 걸 두고도 말이 많았다”고 했다.

‘죽음의 악취’와 20년, 18가구서 10여명 폐암 사망…장암은 ‘제2 장점마을’

■ “악취” 항의했지만“위반 없다” 답변만

폐기물 재활용 기업의 악몽
창문 못 열 정도로 악취 이어지고
밤엔 별이 안 보일 정도로 연기
벼는 물론 사람들도 죽거나 신음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김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가만히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김씨는 장하리 인근의 북고리, 상황리, 하황리 이장들과 함께 ㄱ산업과 부여군청을 찾아다니며 항의도 하고 호소도 했다.

ㄱ산업 입주 후 제기된 환경오염 문제는 부여군의회 회의록에도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1999년 2월24일 본회의에서 이정규 군의원은 “(공장이) 허가 날 적엔 재활용품으로 기와, 벽돌을 찍어내는 공장으로 돼 있는데, (장암면뿐 아니라) 북고리·장하리·현북리까지 악취가 무척 난다는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온다”고 했다.

3년 뒤인 2002년 12월11일 행정사무감사특위에서는 장암면 침출수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부여군의 수질검사 결과가 도마에 올랐다. 강용일 군의원은 “오래 있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상당히 심하다는 걸 여러 의원님들도 다 느꼈다. 그런데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당시 부여군 환경위생과장은 “허용 기준치 이내로 나왔다는 얘기이지 냄새가 안 난다 그런 얘기는 아니다”라고 했다.

“특이사항 없다”는 부여군의 대답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2015년 7월28일 열린 본회의에서 조세연 군의원은 “거기 사시는 분들이 지하수를 먹다가 피부병 같은 거 생겨서 상수도로 교체한 거 알죠?”라며 “주민들이 핵폐기물 외에 (온갖) 쓰레기는 다 들어온다는데, (공장 부지 내) 행정사무감사 시찰이 다 불허됐다. 부여군의회도 방문을 못하면 누가 방문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부여군 측은 “사업주가 (방문을) 거부하면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단속권을 가지고 있어 사후영장을 발부받아서 들어갈 수 있지만, 그게 굉장히 부담이 되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위반 없다” 군의 앵무새 답변
공장과 부여군청에 따졌지만
문제 해결 안되고 공장 폐업에
주민들 어느 순간부터 항의 포기

마을에선 여전히 악취가 나지만, 마을 주민들은 어느 순간부터 항의를 포기했다. 항의해도 문제가 해결됐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ㄱ산업 문제에 총대를 메고 나섰던 김씨도 그렇다. 그는 “어차피 공장도 폐업했는데, 지금 와서 뭘 어떻게 하겠냐”고 했다.

유성진씨가 다시 문제를 제기할 용기를 얻게 된 것은 전북 익산의 장점마을 때문이었다. 유씨는 최근 비료공장으로 인한 환경오염 피해로 주민 99명 중 22명이 암에 걸린 사실이 인정된 장점마을 보도를 본 뒤 “우리 마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정의당 대전시당의 문을 두드렸다.

유씨는 지난달 대전지방검찰청에 ㄱ산업을 고발했다. 그는 고발장에 “공장 운영 당시 각종 폐기물을 불법 매립하고, 야간에 몰래 소각한 의혹이 있다”며 “인근 부락 주민들 중 많은 인원이 공교롭게도 폐암으로 사망하거나 투병 중이고, 지금도 침출수가 흐르고 냄새가 심하게 나 주민들의 고통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썼다.

20년 전 김씨가 했었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던 일을 이제 유씨가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김씨는 “그때도 부여군청에 서류도 올리고 다 했다. 말로만 항의했던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똑같이 또 유씨 혼자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게, 나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 부여군 “조사 착수…검찰 고발할 것”

장점마을에 용기 얻어 다시 시작
“우리 마을에도 비슷한 일 있었다”
정치권 호소 등 또 외로운 싸움
부여군수 “검찰 고발…꼭 규명”

공장은 문을 닫았지만 부여군은 여전히 해당 부지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부여군은 일단 충청남도보건환경연구원에 지난달 29일 다시 수질 분석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폐기물 불법매립과 침출수 문제 규명을 위해 (공장 부지) 현장조사를 하려 했지만 기업 측으로부터 거부당해 사실 확인을 하지 못했다”며 “군 차원에서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군수는 마을 주민이 잇따라 폐암으로 사망한 것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건강영향에 대해 역학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며 “행정당국이 그동안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 폐기물 매립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 환경권이 침해됐다. 이 사례를 제대로 밝혀 법적, 행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꼭 밝히겠다”고 말했다.

ㄱ산업은 2014년 ㄴ기업사로 이름을 한 차례 바꾼 후 2018년 4월 대표가 세상을 떠나면서 폐업 신고를 했다. 현재 ㄱ산업 부지에는 ㄷ산업이라는 벽돌 생산 공장과 부지 정문 앞을 지키는 경비원만 남아있다. 부여군 측은 ㄷ산업이 ㄱ산업과 연관된 회사로 보고 있지만, 전화로 연결된 ㄷ산업 측 직원은 “ㄱ산업, ㄴ기업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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