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생추어리, 고기 아닌 돼지로 살아갑니다

글 이하늬 기자 ·사진 권도현 기자
돼지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가 ‘새벽이생추어리’에서 볏짚을 정리하고 위에 누워 있다. / 권도현 기자

돼지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가 ‘새벽이생추어리’에서 볏짚을 정리하고 위에 누워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5월 24일 오후, 경기도 모처에서 새벽이의 생추어리 입주 1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활동가들은 돌아가며 새벽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축하해! 라고 하려다 생각해보니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아. 여기서, 이 사회에서 살아내주어 고마워”라고 말하는 양송씨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새벽이는 돼지다. 몸무게는 200㎏을 훌쩍 넘는다. 생추어리에 들어올 때만 해도 100㎏ 정도였는데 1년 사이 몸집이 많이 커졌다. 입주 1년을 맞아 새벽이는 으깬 감자 위에 쑥과 토마토를 올린 ‘감자전’을 선물받았다. 활동가들이 감자전을 가져가자 멀리 있던 새벽이가 냄새를 맡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새벽이생추어리’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생추어리(sanctuary)다. 생추어리는 공장식 축산 등 동물 착취 산업의 피해 동물들이 살아가는 ‘피난처’이자 ‘안식처’다. 1980년대 후반 미국 뉴욕주,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시작됐다. 도축장과 농장 등에서 소, 돼지, 양 등을 데려와 넓은 곳에서 본래 습성대로 평생 살게 하는 게 목적이다.

들어보셨나요? 생추어리

현재 생추어리에는 새벽이와 잔디가 산다. 새벽이는 2019년 7월 초 돼지농가에서 태어나 동물권단체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코리아’에 의해 구조됐다. 잔디는 한 제약회사 연구소에서 실험용 돼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잔디는 올해 2월 11일에 생추어리에 입주했다.

생추어리 입구에는 ‘새벽이’ 이름이 쓰인 명패와 함께 “여러분은 지금 동물들의 안식처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들이 주인이고 여러분이 방문객임을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생추어리는 앞뜰과 새벽이와 잔디의 집 등으로 나뉘어 있고 진흙목욕탕과 장난감 공이 매달린 나무기둥 등이 있다.

새벽이는 앞뜰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기자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생추어리에서는 새벽이와 다섯발자국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새벽이가 가까이에 있다면 지나가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탓에 함부로 다가가면 다칠 수 있다. ‘귀여운’ 존재가 아니라 돼지로 살아가는 존재가 거기 있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두 번째 입주자 잔디가 생추어리 앞뜰을 거닐고 있다. / 새벽이생추어리 제공

새벽이생추어리의 두 번째 입주자 잔디가 생추어리 앞뜰을 거닐고 있다. / 새벽이생추어리 제공

잔디는 새벽이에 비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덜하다고 했다. 볏짚 위에 누워 있던 잔디에게 손을 내밀자 코를 움직이며 냄새를 맡았다. 잔디의 코가 손에 닿았다. 부드러웠다. 활동가가 옆에 앉아 잔디를 쓰다듬자 몸을 들썩이더니 배를 더 내보였다. 제대로 긁어달라는 의미다. 활동가가 배를 살살 긁어주자 잔디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생추어리 활동가 다희씨는 “처음 만난 돼지가 새벽이어서 모든 돼지는 새벽이 같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잔디는 새벽이와 달랐다”며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모두 고유한 존재라는 걸 이들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 성격이 제각각인 것과 마찬가지다.

입주 1년을 맞아 활동가들이 앞뜰 한켠에 볏짚을 내려놨다. 새벽이가 코로 볏짚을 흐트러뜨렸다. 자신이 누울 수 있게 재정리하는 것이다. 볏짚 정리를 끝낸 새벽이는 돌아다니다가 물이 고여 있는 곳으로 가서 천천히 옆으로 누웠다. 진흙목욕이다. 진흙목욕은 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고 진드기가 붙지 못하게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 그 자체로 놀이다.

꼬리 잘리고 송곳니 뽑히는 새끼돼지들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새벽이 몸 곳곳에는 농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농장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꼬리가 잘리고 송곳니가 뽑힌다. 좁은 곳에 갇힌 돼지들이 스트레스로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새벽이의 꼬리도 짧고 뭉툭하다. 또 새벽이는 태어난 지 3일 만에 거세됐다. 거세되지 않은 수퇘지는 고기가 됐을 때 ‘돼지 냄새’가 난다는 이유다.

새벽이는 다리에 비해 몸집이 비대해지도록 개량된 종이다. 고기가 되는 돼지의 평균수명은 6개월, 좁은 케이지에서 다리를 쓸 일이 별로 없고 또 튼튼한 다리보다 몸집을 불리는 게 우선된다. 돼지는 보통 115㎏이 되면 도축장으로 간다. 새벽이의 몸무게는 200㎏이 넘는다. 활동가들이 늘 새벽이의 체중을 살피는 이유다.

새벽이는 2019년 7월 9일 경기도의 한 양돈장에서 태어났다. 어미 돼지들은 ‘스톨’이라는 케이지에 갇혀 산다. “폭 70㎝, 높이 1m20㎝, 길이 1m90㎝의 스톨 안에서 모돈은 눕거나 일어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폭이 기껏해야 어른 팔 길이 정도였기 때문에 돼지들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것도 불가능했다.”(한승태 <고기로 태어나서>)

동물권단체 DxE 코리아가 2019년 7월 경기도 화성시의 한 돼지농가에서 돼지 ‘새벽이’를 구출하고 있다. /DxE 코리아 제공

동물권단체 DxE 코리아가 2019년 7월 경기도 화성시의 한 돼지농가에서 돼지 ‘새벽이’를 구출하고 있다. /DxE 코리아 제공

새벽이를 공개구조한 DxE 활동가 향기씨는 “호기심이 많아서 계속 사람을 쳐다보는 새끼 돼지들과 달리 엄마 돼지들은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탈진해 있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며 “어떤 방에는 죽은 돼지들과 살아 있는 엄마 돼지, 그리고 갓 태어난 돼지들이 섞여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DxE는 이날 구조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SNS와 유튜브 등에 공개했다. 농장의 열악한 환경과 이런 곳에서 사육되는 동물을 구조할 권리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현행법상 불법으로 규정될지라도 구조 활동이 정당하고 당당한 일이라는 차원에서 활동가의 얼굴이나 신상도 모두 공개한다. DxE 활동가 은영씨는 “이런 맥락에서 ‘동물을 구조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 정의다’라는 슬로건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해외 동물권 단체들도 이런 방식으로 동물을 공개구조한다.

잔디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약회사 연구소에서 실험용 동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잔디는 외부의 충격으로 머리를 다친 상태였다. 회사는 동물병원에 안락사를 요청했지만, 동물병원에서 새벽이를 임시보호했던 활동가에게 연락해 목숨을 건지게 됐다.

생추어리 활동가 양송씨는 “당시의 후유증 때문인지 잔디는 밥을 먹기 전에 머리를 좌우로 휘젓는 행동을 보인다”고 말했다. 새벽이에 비해 잔디의 몸집이 작고 피부가 하얀 것은 실험동물로 쓰기 위해 개량된 종이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잔디가 1960년대에 개량된 ‘괴팅겐 미니어처 피그’종일 것으로 추정한다.

돼지는 인간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실험에 자주 이용된다. 심장, 이빨, 소화계와 위, 피부가 인간과 비슷하다. 화상을 입은 환자나 심장판막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고 콩팥, 간, 폐, 각막의 이식 또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DxE 코리아 활동가 향기씨가 돼지농가에서 새벽이를 데리고 나오고 있다. 이들은 공개구조가 정당하고 당당한 일이라는 차원에서 활동가의 얼굴이나 신상도 공개한다./  DxE 코리아 제공

DxE 코리아 활동가 향기씨가 돼지농가에서 새벽이를 데리고 나오고 있다. 이들은 공개구조가 정당하고 당당한 일이라는 차원에서 활동가의 얼굴이나 신상도 공개한다./ DxE 코리아 제공

생추어리는 파라다이스가 아냐

그래서 생추어리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다희씨는 “새벽이와 잔디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상상해볼 수 있다. 세상에 나 혼자 남고 다른 인간들은 다 죽임을 당했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이가 들어가는 인간이 나밖에 없다면? 이게 새벽이와 잔디의 삶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생추어리에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가령 생추어리 인근에서 구제역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할 경우, 새벽이와 잔디의 생명은 위협받게 된다. 질병이 발생한 농가 반경 몇킬로미터 내에 있는 모든 소와 돼지는 살처분하기 때문이다. 생추어리가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양송씨는 “척박하고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생추어리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추어리 동물은 아니지만, 짐바브웨 국립공원에서 ‘야생의 삶을 보호’받던 사자로 유명했던 세실은 국립공원 바깥으로 유인당해 트로피 헌터(오락과 과시 등을 목적으로 사냥을 하는 사냥꾼)에게 목숨을 잃었다. 보호구역과 그 바깥을 가르는 ‘경계’를 넘는 순간 사냥된 것이다.(송다금 <난민, 난민화되는 삶>)

DxE 활동가 섬나리씨는 생추어리를 ‘난민캠프’로 표현했다. 매년 1700만 돼지가 죽임을 당하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구조돼 보호받고 있는 난민돼지가 새벽이라는 것이다. DxE는 “한국에서는 생추어리 개념이 아직 정립이 안 됐는데 생추어리는 피난처, 안식처이자 투쟁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새벽이와 잔디는 ‘가장 강력한 동물권 활동가’다. 살아감으로써 죽어가는 돼지들을 ‘증언’하고 다른 삶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 새벽이생추어리 후원자는 “새벽이와 잔디를 보면서 다른 돼지를 보게 됐다. 구체적인 돼지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사회에 드러난 돼지의 모습은 농장에 사는 돼지, 전염병이 퍼지면 생매장 당하는 돼지, 가정집에서 살 수 있도록 개량된 미니 돼지, 도축돼 진열된 돼지고기가 전부였다. 거기에 새벽이와 잔디의 모습이 더해진 것이다.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가 새벽이생추어리에서 활동가가 손을 내밀자 다가와 냄새를 맡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가 새벽이생추어리에서 활동가가 손을 내밀자 다가와 냄새를 맡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새벽이와 잔디를 본 사람들은 경탄을 담은 질문을 던진다. 돼지가 저렇게 빨리 뛸 수 있어요? 돼지는 시속 40㎞도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빠른 동물이다. 돼지 이빨이 저렇게 날카로워요? 새벽이가 수박을 통째로 부숴먹는 모습은 놀라웠다. 왜 코로 땅을 파죠? 코로 땅을 파는 ‘루팅’은 돼지의 본능이다.

동시에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데 쟤네는 저기서 뭐하는 거지?” 고기가 되거나 임신·출산을 하거나 실험 등의 목적이 아닌 동물을 보지 못해서다. 양송씨는 “그런 질문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용 당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걸 새벽이와 잔디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가장 강력한 동물권 활동가

생추어리 활동가 유나씨는 친구의 소개로 새벽이생추어리를 알게 됐다. 그는 “생추어리 활동을 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경계만 지우면 새벽이가 약자의 조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태어나자마자 장애가 만들어졌고 갈 곳이 없으며 사회에서 계속 지워지는 존재, 보이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존재”라고 말했다.

유나씨의 말은 동물은 전쟁 발발이나 재난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에 의해 서식지를 뺏기고 개체수를 조절당하며 일상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점에서 태생부터 ‘난민성’이 있다는 설명(송다금 <난민, 난민화되는 삶>)과 맥락을 같이한다.

활동가들은 생추어리를 포함한 동물권 운동을 유행 혹은 덜 중요한 운동으로 보는 시각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학대받는 동물이야말로 장애, 난민, 여성 등이 마주하는 모든 문제를 종합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동물해방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라는 주장이다.

양송씨는 “사람들은 권리가 ‘한정된 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운동은 파이를 뺏는 게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포함되지 않았던 존재를 계속 포함시키는 것”이라며 “이전에는 백인 남성만 권리의 주체였다면 흑인, 여성, 장애인, 동물도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이 잔디의 명패를 새벽이 명패 옆에 걸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이 잔디의 명패를 새벽이 명패 옆에 걸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이제 1년이 된 새벽이생추어리가 갈 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구조되는 동물이 많아지고 생추어리에 대한 논의가 다양해질수록 반발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종돈장에서 새벽이를 안고 나온 향기 활동가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만은 않는다.

그는 “생추어리와 활동가들은 단순히 동물을 귀여워하는 공간과 사람들이 아니라 부당한 일이 발생한다면 언제든지 생추어리 울타리에 몸을 묶을 준비가 된 ‘같은 동물’로서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고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입주 1년 행사의 마지막은 순서는 생추어리 문에 잔디의 명패를 다는 것이었다. 새벽이 명패 옆에 잔디 명패가 달렸다. 활동가들이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었다. “언제나 생추어리의 주인이 새벽이와 잔디일 수 있기를 바라며, 새벽이답게 잔디답게, 착취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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