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년차 변호사가 로펌 그만두고 인문학서점 차린 까닭

이진주 기자
변호사에서 책방 주인에 도전한 김소리씨는 “책방이 단순히 책만 사는 공간이 아닌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자 법과 인권에 관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소리씨 제공

변호사에서 책방 주인에 도전한 김소리씨는 “책방이 단순히 책만 사는 공간이 아닌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자 법과 인권에 관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소리씨 제공

김소리 변호사 “소송은 늘 갈등의 한복판…중압감과 스트레스 컸다”
법·인권 서적 특화한 책방에 문화공간 함께…문턱 낮춘 법률상담도

법과 인권에 관한 책으로 특화된 인문학 서점이 지난해 12월9일 문을 열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밝은책방’이다. 책방 주인은 올해 8년차 변호사인 김소리씨(33)다.

책방 주인에 도전한 김씨는 지난 3일 전화 인터뷰에서 “계속되는 야근과 스트레스로 삶이 갉아먹히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책방을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공익사건에 관심이 많아 변호사를 목표로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졸업 후 공익사건을 많이 다루는 로펌에서 일했다. 2015년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경찰의 부당한 제지로 ‘고 신효순·심미선 양 13주기 추모행사’가 무산됐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여해 승소했다.

2017년에는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 등이 ‘구글은 제3자에게 제공한 가입자의 개인정보와 서비스 이용내역 현황을 가입자에게 공개해야 한다’며 구글 인코퍼레이티드와 구글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의 청구소송에 참여해 판결을 받아냈다. 일에 대한 보람은 컸지만 계속되는 소송 업무에 지쳐갔다.

“소송이라는 업무 자체가 남을 대신해서 싸우는 거잖아요. 갈등의 한복판에 있고 남의 일을 대신한다는 중압감이 컸어요. 다른 직종에 비해 연봉은 높지만 스트레스가 커져서 5년차 무렵부터 퇴사를 고민했어요.”

그만두겠다는 결심이 서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고 한다. 김씨는 평소 막연하게 생각했던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떠올랐다. 변호사라는 정체성과 전문성을 살리면서 문화적인 콘텐츠를 다룰 수 있는 아이템을 찾던 중 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특색있는 책방들이 몰려있는 홍대, 상수, 성수 등을 돌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해보니 책방을 채우는 게 책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김씨는 “책방은 하나의 형태고 그 안에는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와 모임이 다채롭게 이뤄졌다”며 “변호사라는 특성을 가미하면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책방을 차리겠다는 결심이 서자 김씨는 지난해 5월 다니던 로펌을 그만뒀다. 그리고 로스쿨을 다니며 4년간 생활했던 봉천동 일대를 물색해 지금의 책방을 계약했다.

82㎡ 규모의 책방은 법 관련 서적과 인권 관련 책들이 많은 게 특징이다. 책 배치도 노동권, 여성인권, 소수자인권 등 기본권을 중심으로 분류했다. 그밖에 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인문학 서적 400여권이 책방에 채워졌다.

김씨는 “법과 인권 관련 책방이라고 해서 어려운 전문 서적만을 취급하는 건 아니다”라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적당한 무게의 책들로 선정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씨는 향후 책방에서 북토크·강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첫 공식 행사로 정의당과 함께 페미니즘의 미래와 여성정치에 관한 토크쇼를 이달 중 열기로 하고 현재 협의 중이다. 이달 말에는 에세이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을 출간한 변호사이자 소설가 정소연씨의 북토크가 진행된다.

노동, 여성, 소수자, 동물, 환경 등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판결문을 시민들과 함께 읽어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모임도 계획하고 있다. 이밖에 지역 예술가들의 초청 공연 추진을 염두해두고 책방 한 켠에 피아노와 기타도 준비해놨다.

김씨는 책방 운영과 더불어 변호사로서의 새출발도 이곳에서 할 예정이다. 마음맞는 동료 변호사와 법률사무소 ‘물결’을 책방 한 켠에 개소한 것이다. 그는 “당분간 책방 운영에 집중하느라 소송일은 하지 않겠지만 향후 상담센터나 각종 위원회에서 요청해오는 공익활동이나 자문일은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책방이 책만 사는 곳이 아닌 지역분들을 위한 문화공간도 되고, 법률사무소도 되는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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