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편 ‘심장소리’ 공개한 이창동 “보편적 느낌 전달하고 싶어…극장 영화 살아남아야”

오경민 기자
이창동 감독이 30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한 첫 단편영화 <심장소리>는 철이(김건우)의 이야기다. 건우는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자 교실을 뛰쳐나와 집을 향해 달린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이창동 감독이 30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한 첫 단편영화 <심장소리>는 철이(김건우)의 이야기다. 건우는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자 교실을 뛰쳐나와 집을 향해 달린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이창동 감독(68)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단편 연출작 <심장소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2018년 <버닝> 이후 첫 신작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베이징현대예술기금(BCAF)으로부터 ‘우울증’을 다룬 영화 연출을 제안받아 만들었다. 이창동 특별전을 마련한 영화제에서는 이밖에도 그의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부터 <버닝>까지 그간 연출한 6편 장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알랭 마자르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도 최초로 공개된다.

<심장소리>는 타워크레인에서 농성하는 아버지(설경구)와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전도연)를 둔 한 아이의 이야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이(김건우)의 얼굴을 따라간다. 철이는 엄마가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수업시간 중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받지 않는다. 철이는 엄마를 구하러 간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하고 교실을 나서 뛰기 시작한다. 난관도, 유혹도 많다. 마스크가 학교 저 편으로 떨어진다. 주울까 말까 고민하던 철이는 맨 얼굴로 집으로 향한다. 비눗방울이 날아가지만 놀고 싶은 마음을 다잡는다. 교문을 넘고, 베란다 난간에 매달리고, 전화를 빌리고, 내내 달린다. 부모나 가족이 어떻게 되진 않을까하는 터무니 없는 두려움, 내가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껴봤을 모든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다. 노동이나 우울증에 대한 감독의 시선도 읽힌다.

마스크를 잃어버렸을 때도, 비눗방울을 봤을 때도 멈추지 않은 철이(김건우)는 죽은 새를 보고는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낙엽으로 덮어준다.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크를 잃어버렸을 때도, 비눗방울을 봤을 때도 멈추지 않은 철이(김건우)는 죽은 새를 보고는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낙엽으로 덮어준다. 전주국제영화제

이창동 감독은 지난달 29일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이창동 특별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내 작품은 흔히 리얼리즘이라고 평가받지만, 언제나 현실 속에서의 분명하고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분명한 메시지, 쉬운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면 관객이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영화도 끝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현실의 이야기지만 특정 사회적 주제나 계급, 환경을 넘어서 보편적인 질문과 의미로 연결되길 바랐다. 좀더 오래 질문이 남고, 관객의 삶과 연결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심장소리>는 우울증을 가진 엄마를 둔 아들의 불안, 걱정, 엄마를 구해야겠다는 원초적인 욕망과 생명에 대한 갈구를 다루고 있는데, 계급, 현실,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감독은 이날 극장 영화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 연출 제안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고 한다. 응하지 않은 이유는 “당장은 할만한 이야기라는 판단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쉽게 쇼핑하듯 볼 수 있는 OTT의 영화들, 보다가도 지루하면 쉽게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영화 매체가 원래 갖고 있는 본질, 마치 음악처럼 그 영화 세계의 시간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같이 느끼고 경험하는 그런 영화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본다. 엔데믹 시기 극장의 영화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는 “관객들이 아무리 OTT에 길들여진다 하더라도 영화의 본질을 저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여러 장르 중에서도 가장 다른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다른 인간에게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매체”라며 “이해할 수 없던, 지구 반대편 저 멀리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영화 이상으로 그를 가깝게 느끼고 이해하도록 하는 매체는 없기 때문에 인류가 영화 매체의 본질적인 힘이 사라지게 할 리는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이창동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 기자회견에서 이창동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지난달 29일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이창동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 기자회견에서 이창동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올해 이 감독은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그는 국제영화제에서 달라진 한국 영화의 위상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유일하게 아시아 영화를 주목했던 밴쿠버국제영화제조차 중국, 일본, 홍콩 영화에 관심이 있지 한국 영화는 관심 밖이었다”며 “한국 영화는 그간 많은 발전을 이뤄 세계인을 놀라게 했고, 지금은 한국 영화 프로그램을 제대로 짜지 못하면 국제영화제로서 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을 정도가 돼 그 위상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영화의 차별점이 있다면 다양함인 것 같다. 일본 영화, 중국 영화 하면 뭉뚱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지만 한국 영화는 감독마다 색깔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역동성’도 한국 영화의 특성으로 꼽으며 “영화뿐 아니라 K팝, 드라마 등 다른 장르에서도 다른 나라의 콘텐츠가 가지지 못하는 다이나믹한 힘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살아온 역사, 삶의 궤적, 경험들에서 생긴 강렬한 힘일 수도 있다. 심한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뚫고 살아오면서 생긴 나름의 생명력이 아닐까한다”며 “과거에는 ‘한(恨)’이라고도 표현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부정적인 걸 넘어선, 긍정적인 면도 가진 총체적인 힘이 세계 관객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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