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버그'와 대벌레가 원래 살던 곳은···'벌레 박사'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양다영 PD
'러브버그'와 대벌레가 원래 살던 곳은···'벌레 박사'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올해는 ‘러브버그’ 재작년엔 ‘대벌레’가 도심에 떼로 나타났다. 이들이 원래 살던 곳에선 어떤 모습일까? 지난 9일 인적이 드문 숲 언저리에서 대벌레를 목격했다. 길쭉한 막대기 같은 대벌레 한 마리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있었다. 주변 풀 색깔과 거의 비슷한 연둣빛을 띠고 있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곤충 채집 길에 동행한 정부희 박사(60)가 나뭇잎을 들춰 대벌레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이에요. 지금 우리가 한두 시간 걷는 동안 단 한 마리 봤잖아요. 제가 생각할 때 오늘 얘(대벌레) 이외에는 안 보일 것 같아요.”

곤충학자 정부희 박사는 경기 양평군에 곤충을 위한 밥상을 차렸다. 정 박사가 직접 운영하는 우리곤충연구소에는 약 200종의 식물이 자란다. 곤충들은 이곳에 와 나뭇잎을 갉아 먹고, 꽃의 꿀을 마시다 간다. 정 박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연구소에 배를 채우러 들르는 곤충 수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혼자 벌레를 공부한 기간까지 합쳐 24~25년 경력이 된다는 정 박사는 주말마다 연구소를 찾는다. 짬을 내 전국 곳곳을 돌며 연구를 위한 곤충 채집에 나서기도 한다.

곤충 관찰에 적합한 시간은 새벽이다. 정부희 박사는 아침이 되면 벌레가 주변에서 자취를 감출 테니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오전 7시부터 호반새가 울던 연구소 앞마당을 먼저 살폈다.

지난 9일 정부희 박사가 우리곤충연구소 대문 앞 유리병에 있던 알락하늘소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양다영PD

지난 9일 정부희 박사가 우리곤충연구소 대문 앞 유리병에 있던 알락하늘소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양다영PD

연구소에서 가장 먼저 만난 곤충은 ‘알락하늘소’다. 대문 앞에 놓여 있던 유리병 안에서 발견했다. 연구소 이웃 주민이 정 박사를 위해 대문 앞에 두고 갔다. 정 박사는 하늘소를 꺼내 보여주며 이름의 뜻을 설명했다. 등 무늬가 알록달록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손에 올라탄 알락하늘소를 보던 정 박사는 “굉장히 크죠? 이 정도면 곤충할 맛 나죠”이라며 웃었다. 정부희 박사는 거저릿과(딱정벌레목)를 비롯해 버섯살이 곤충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정 박사가 전공하는 곤충은 크기가 2~3㎜ 정도로 성충의 길이가 30~35㎜인 하늘소과의 알락하늘소와 비교해 무척 작다.

야외 연구소에는 곤충의 각기 다른 입맛을 충족시켜줄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남쪽에서 얻어다 심은 팽나무는 곤충에 인기가 많다. 팽나무를 좋아하는 곤충은 6~7종이 있다. 작년에는 홍점알락나비가, 올해는 왕오색나비가 왔다. 비단벌레도 최근 단골 손님이라고 했지만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다양한 곤충이 찾기 때문에 봄부터 11월까지 쭉 관찰 대상이다. 꽃도 곳곳에 피었다. 꿀벌과 꽃등에가 꿀을 빨고 있는 털부처꽃, 왕자팔랑나비와 실잠자리가 앉아 쉬어간 백리향이 있었다. 큰 엉겅퀴 잎에는 대만수염진딧물이 검은 점처럼 콕콕 박혀있었고 꼬마남생이무당벌레가 그 주변을 맴돌았다.

경기 양평군의 우리곤충연구소에는 외래종인 갈색날개매미충이 산다. 갈색날개매미충의 약충은 식물의 잎과 줄기에 붙어 수액을 먹는다. 손을 대면 팝콘처럼 툭툭 튀는 특징이 있다. 양다영 PD

경기 양평군의 우리곤충연구소에는 외래종인 갈색날개매미충이 산다. 갈색날개매미충의 약충은 식물의 잎과 줄기에 붙어 수액을 먹는다. 손을 대면 팝콘처럼 툭툭 튀는 특징이 있다. 양다영 PD

한 단풍나무에는 줄기와 잎을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정 박사가 줄기를 툭툭 치자 팝콘이 튀겨지는 듯한 모양새로 벌레가 튕겨 나갔다. 정 박사는 “왁스 같은 밀랍 물질을 내서 위장하는 게 얘들이 사는 방법”이라며 독특한 생존법을 가진 갈색날개매미충을 소개했다. 갈색날개매미충은 식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식물의 수액을 먹어 나무가 약해지고 잎이 검어지는 그을음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도심에 개체 수가 많아서 살충제를 뿌리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 곤충은 ‘해충’으로 분류됐는데 정 박사는 이런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말했다. “저는 익충, 해충이라는 말을 안 써요. (연구소 나무는 약해지더라도)어쩔 수 없죠. 같이 살아야죠.”

연구소 입구에서 안으로 한참 들어가면 작은 인공 연못이 두 개 나온다. 땅을 파고 고무통을 묻어 만든 인공 연못에선 물방개, 송장헤엄치게 같은 곤충을 볼 수 있다. 수서곤충을 보려고 조성한 환경이지만 뜻밖의 손님도 왔다. 얼마 전 새끼 도롱뇽이 인공 연못 한 군데서 발견됐다. 플라스틱 그릇을 연못에 넣어 직접 살펴봤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작은 크기지만 정 박사는 “꽤 많이 컸네요”라며 감탄했다. “여기(이 동네)에 무당개구리가 한두 마리는 꼭 있어요. 도롱뇽이 있으니까 천적이 알고 찾아오는 거죠. 작은 공간이지만 이 생물들에게는 소우주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곤충을 찾기 위해 연구소에서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려 인근 숲으로 향했다. 정 박사는 사람의 흔적이 없어 길이 좋지 않은 이곳에서 반가운 곤충을 만났다. 그는 강원 화천군 해산령에서 본 이후로 두 번째 본다며 기뻐했다. 그란 무늬가 눈에 띄는 나방 애벌레 두 마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정 박사는 “올해는 나방 애벌레 보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이렇게 반갑게 있어 줬어요. 오늘 아주 성과가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여러 차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경기 양평군의 인적이 드문 숲 언저리에서 대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양다영PD

경기 양평군의 인적이 드문 숲 언저리에서 대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양다영PD

수풀을 헤치다 마지막으로 만난 곤충은 지난 2020년 서울 은평구 일대 공원에 대규모로 나타난 ‘대벌레’다. 정 박사는 많은 날은 대여섯 마리, 그렇지 않은 날은 아예 못 보는 날이 있다며 대벌레를 살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한 마리씩 나오는 게 정상이에요. 떼로 몇천 마리가 나오는 게 정상이 아니거든요”라며 걱정했다. “도심에서 대벌레가 대발생한 경우가 있죠. 나타났을 때 우리가 살충제를 살포해서 즉사시키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한 번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정 박사는 또다시 도심에 곤충이 떼로 등장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 곤충들의 포식자들이 살충제나 어떤 다른 원인 때문에 사라진다면 (또 곤충들이)대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거든요.”

벌레를 사랑하는 정부희 박사의 곤충 관찰기는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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