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사면(특사)을 단행했다. 윤 대통령이 14일 재가한 사면·복권 대상자에는 이중근 부영그룹 창업주·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장한 종근당 회장 등 기업인이 대거 들어갔다. 또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 등의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도 포함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특사 명단을 발표하면서 “서민 경제가 어려운 점을 고려해 경제 살리기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특사 때마다 들고 나오는 명분이 얄팍하다. 사익을 위해 횡령·배임 등을 저지른 기업인들을 사면하는 것이 경제살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특히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사익편취 및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고발된 상태이지만 검찰 수사가 미뤄지다 이번에 사면대상에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특사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회장 등을 사면한 바 있다. 광복절이 비리·부패 기업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날이기라도 한 것인가. 이것이 윤 대통령이 부르짖어온 공정과 상식인가.
역대 정부가 화합을 명분으로 여야 인사의 구색을 맞춰온 반면 윤 대통령은 사면권을 철저히 ‘자기 편’들에게만 쓰고 있다. 사면·복권 대상에 포함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은 대법원 최종 확정 판결이 난 지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사법부 판결을 존중한다면 있을 수 없는 처사다. 김 전 청장에 대한 실형 확정으로 오는 10월에 구청장 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이 선거에 귀책사유가 있는 김 전 청장이 사면이 확정되자마자 출마 의지를 표명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된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이 복권 대상자가 된 점도 의아할 뿐이다.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 각각 3, 5회였던 대통령 특사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1년3개월 만에 3차례나 이뤄졌다. 정부는 ‘국민통합’ 명분으로 정치인, 공직자 등 1373명에게 신년 특사를 단행했으나 서민 수형자는 거의 없고 여권 중심의 ‘적폐 세력’들을 대거 풀어줬다. 이번 광복절 특사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특사는 헌법에 보장된 ‘통치행위’이지만, 남용하지 않고 최대한 절제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한동훈 장관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정치·사회적 갈등을 해소해 국가적 화합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비리 기업인과 여권 인사를 중심으로 사면권을 남발하는 것은 갈등해소와 화합에 역행할 뿐이다. 윤 대통령의 사면권 남발이 법치를 무너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