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입막음과 대선개입 혐의 등으로 네 건의 재판이 예정돼 있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엔 사기 대출 의혹으로 법정에 섰다. 부동산 자산 가치를 부풀려 사기 대출을 받은 혐의로, 재판 결과에 따라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뉴욕시 맨해튼 지방법원에서 열린 사기 대출 의혹 관련 민사 재판에 출석하면서 “역사상 가장 큰 마녀사냥이 이어지고 있다”며 “불량 판사가 자산의 실제 가치 중 일부만 인정한 채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9월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은 트럼프 측이 은행 대출과 보험 조건 등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맨해튼 트럼프타워를 비롯한 빌딩과 아파트, 골프장 등 다수의 자산 가치를 22억 달러(3조원)가량 부풀려 보고했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을 맡은 아서 엔고론 맨해튼 지방법원 판사는 지난달 26일 열린 약식재판에서 이같은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미국 사법절차에서 약식재판이란 재판 전 절차가 끝난 뒤 중요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고 법률적 판단만 남은 사안에 대해 법원이 정식 재판을 개시하기 전 내리는 결정을 말한다.
정식 재판 역시 배심원단 없이 엔고론 판사가 사실관계 판단과 사법적 판단을 모두 내리게 된다. 사실상 트럼프의 패소가 유력한 상황이다. 혐의가 인정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주에서의 사업권을 비롯해 상당수의 재산을 잃을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범죄는 나를 향해 저질러지고 있다”며 지지층을 향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자신의 회사인 ‘트럼프’의 브랜드 가치를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에 빗대며 “나는 내 최고의 자산인 브랜드를 장부에 반영하지도 않았다”며 자산 부풀리기 의혹을 반박하기도 했다.
반면 제임스 총장은 이날 회견을 통해 트럼프의 사기 행각이 법원에서 이미 인정됐다며 “아무리 권력이 강하고 돈이 많아도 법 위에 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총장은 최소 2억5000만달러(약 3400억원)의 벌금과 트럼프 및 두 아들의 뉴욕에서의 사업 운영 영구 금지 등을 법원에 요청한 상태다.
이날 트럼프는 재판에 출석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막대한 재산과 주요 사업체가 집중되어 있는 뉴욕주에서의 사업권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인만큼 적극적으로 혐의 부인에 나선것으로 보인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번 재판 결과가 형사 재판보다 오히려 트럼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동시에 트럼프는 정치적 탄압을 받는 이미지를 부각해 지지층을 결집을 노리고 있다. 트럼프는 이번 소송 외에도 4건의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상태인데,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대선을 겨냥해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는 각종 논란과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시작된 정식재판은 약식재판에서 다루지 않은 쟁점이 다뤄지며 오는 12월까지 열릴 예정이다. 미 언론들은 엔고론 판사가 핵심 쟁점인 사기 여부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린 만큼 재판이 그 전에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으며 트럼프가 물어야 할 배상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