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레더블’ 인도를 하나로 묶는 힘, 영화와 크리켓

손우성 기자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제크리켓협회(ICC) 크리켓 월드컵 경기가 열린 인도 아마다바드 나렌드라 모디 경기장에서 인도 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제크리켓협회(ICC) 크리켓 월드컵 경기가 열린 인도 아마다바드 나렌드라 모디 경기장에서 인도 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 정부는 2002년 새로운 국제 관광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인크레더블 인디아(Incredible India)’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인도 관광부는 전 세계에 인도 문화와 역사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겠다는 의미를 담아 이 같은 표어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인도 인기 영화배우이자 한국엔 영화 <세 얼간이> 주연으로 널리 알려진 아미르 칸이 홍보대사를 맡았고, 지금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직접 해당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인도는 캠페인 구호처럼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사회 체계를 지닌 국가다. 14억명이 넘는 인구가 29개주에 걸쳐 살고 있으며, 공식 언어인 힌두어와 영어 외에도 약 8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북부 주민과 남부 주민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종교도 다양하다.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고 있지만, 이슬람교·기독교·불교·시크교·조로아스터교 신자도 적지 않다. 여기에 북인도엔 아리아인이, 남인도엔 드라비다인이 주로 거주하는 등 인종도 혼재돼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도에선 지역·종교 간 갈등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지난 6월 인도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 누푸르 샤르마 대변인은 방송 토론에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모디 총리 또한 인도 구자라트 주정부 수석장관이었던 2002년 힌두 극단주의자들에게 약 1000명의 무슬림이 살해당하는 폭동이 발생했을 때 이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인도 국민배우로 불리는 샤룩 칸. 게티이미지

인도 국민배우로 불리는 샤룩 칸. 게티이미지


하지만 이런 인도를 하나로 묶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바로 영화와 크리켓이다. 특히 인도 경제 수도 뭄바이에서 태동한 일명 ‘발리우드’ 영화는 인도인에겐 큰 자부심이다. 구하원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조교수는 7일 통화에서 “지역마다 다른 문화와 언어, 종교를 가진 인도에서 영화는 모두를 아우르고 통합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인도 영화관에 가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분단된 인도 남북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며 인도 영화 <자완>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완>은 힌디어 영화 산업 중심인 뭄바이 발리우드의 재정 지원과 타밀어를 사용하는 남부 첸나이 이야기의 매력이 결합한 작품”이라며 “이 멋진 연금술은 영화를 보는 대중을 하나로 묶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북부는 여전히 가난할 뿐 아니라 카스트와 종교 갈등으로 가득 차 있고, 남부는 오랫동안 북부 통치자들의 동화 노력에 저항해왔다”며 “그래서 이 영화의 성공은 더욱 눈에 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자완> 주인공인 배우 샤룩 칸은 인도 전역을 관통하는 인물이다. 인도 매체 더힌두는 <자완>에 대해 “하나의 국가, 하나의 감정, 하나의 샤룩 칸”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극찬 속에 지난 9월 7일 인도에서 개봉한 <자완>은 첫 주에만 28억7000만루피(약 450억9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인도 크리켓 대표팀 모하메드 샤미(왼쪽)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잉글랜드와의 국제크리켓협회(ICC) 크리켓 월드컵 경기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인도 크리켓 대표팀 모하메드 샤미(왼쪽)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잉글랜드와의 국제크리켓협회(ICC) 크리켓 월드컵 경기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크리켓도 인도 단합의 일등 공신이다. 국제크리켓협회(ICC)가 주최하는 크리켓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는데, 인도는 올해 대회를 유치했다. 지난달 5일 개막했고, 오는 19일 결승전이 열린다. 총 10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인도는 7일까지 치른 8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선두를 달리며 4강행을 확정했다.

인도 대표팀은 지난달 14일 깊은 갈등 관계인 파키스탄에 승리한 데 이어 29일엔 과거 오랜 기간 인도를 식민통치했던 잉글랜드까지 격파했다. 인도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파키스탄과 잉글랜드를 놀리는 게시물이 쏟아졌고, NDTV 등 주요 매체에서도 대표팀 주장 로히트 샤르마의 일생을 조명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뉴델리 출신 한 인도인은 “크리켓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인도의 정신”이라며 “크리켓 앞에선 종교와 이념이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미 CNN도 “인도인은 크리켓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공유하고 있다”며 “비록 크리켓이 영국 식민통치의 유산이지만, 14억명을 통합하는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인도 총리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뭄바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연단에 오르며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인도 총리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뭄바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연단에 오르며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달 16일 뭄바이에서 회의를 열고 크리켓을 2028 LA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확정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수억 명의 시청자가 보장되는 크리켓의 올림픽 복귀가 인도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인도는 이를 발판삼아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도 나섰다. 모디 총리는 “인도는 2036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모든 준비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14억 인도인의 꿈과 열망”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인도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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