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5주기 - 릴레이 기고

‘안전책임 외주화’ 면죄부 준 1·2심…대법, 모든 작업자 보호할 판결을

권영국 변호사

① 권영국 변호사(전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 간사)

[김용균 5주기 - 릴레이 기고] ‘안전책임 외주화’ 면죄부 준 1·2심…대법, 모든 작업자 보호할 판결을

여전히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보장되지 않는 사회


2018년 12월10일 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당시 24세)가 석탄 이송용 컨베이어벨트 상태를 점검하다 벨트와 롤러 사이에 끼여 숨졌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면서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오는 10일은 김용균씨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그가 숨진 뒤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부 개정됐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지난해에도 사고 또는 질병으로 숨진 노동자가 하루에 6명꼴로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2년간 유예한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또다시 유예하려 한다. 노동계에서는 김용균씨 사망 이후 더디게라도 진행돼 온 변화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경향신문은 ‘김용균 5주기’를 맞아 2019년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권영국 변호사, ‘또 다른 김용균’인 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영훈씨,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의 글을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옛 산안법, ‘실질적 고용관계’ 초점
원청에 책임 묻는 것조차 불가능

법, 모든 노무제공자 보호할 의무
직접 근로계약 맺었는지 여부 아닌
사업주의 위험 관리 의무 평가해야

오는 10일은 24세의 김용균 하청노동자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이송용 벨트컨베이어 밀폐함 점검구를 통해 컨베이어 설비를 점검하다 벨트와 롤러 사이에 협착돼 사망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공교롭게도 대법원은 오는 7일 고인의 죽음과 관련해 기소된 한국서부발전(원청)과 한국발전기술(하청) 그리고 임직원들에 대해 상고심 판결 선고를 한다.

2018년 12월11일 김용균 노동자가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한국서부발전은 “기계 안쪽으로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곳에 들어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고인은 사내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직원으로 한국서부발전 직원이 아니라고 했다. 이 두 가지 언급은 사고가 개인의 부주의한 행동 때문이고,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엔 책임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5개월에 걸친 진상조사 결과, 벨트컨베이어 점검구와 점검대상인 롤러의 위치가 일치하지 않아 점검구 안으로 몸을 들이밀지 않으면 점검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석탄의 공급부터 발전·후처리까지 모두 연속공정시스템으로, 공정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도 확인됐다. 독립적 분리가 불가능한 공정을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인위적으로 떼어 용역을 줬다. 필요한 설비나 시설은 모두 한국서부발전의 소유인 반면 고인이 속한 한국발전기술은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인력만을 공급할 뿐이었다.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은 설비 운전 및 점검 의무만을 질 뿐 시설 변경·개선에 대한 권한은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발전소의 연속공정 특성상 한 부분이 중단되면 연결된 선후의 공정도 바로 영향을 받아 중단되거나 다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러한 연속공정시스템에선 전체 공정을 관장하는 한국서부발전이 하청업체가 담당하는 연료환경설비 운전공정도 지휘·감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시업·종업시간, 연장·야간근로, 교대제 운영 여부, 작업속도도 서로 연동된 구조이기 때문에 원청이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연속공정 중 일부분에 대해 도급을 준다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며 구조적으로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김용균 사망 당시의 옛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 안전조치 의무 주체는 사업주이고 대상은 노동자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산안법상 안전조치 의무 위반 책임을 묻기 위해선 사업주와 재해를 당한 노동자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다 보니 사업주가 ‘용역’이나 ‘도급’이라는 명목으로 업무를 외주화해 원청업체와 하청노동자 간 실질적 고용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설비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업무 결정권을 행사하는 원청업체와 그 경영자 및 관리자들에 대해 시설위험에 따른 산안법상 책임조차 묻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원청업체가 업무 외주화를 통해 안전책임의 외주화까지 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 결과 김용균 사망사건의 형사재판 1, 2심도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그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직원들에게 산안법 위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결론이 과연 산업안전 영역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산안법은 사업주의 사업에서 유래하는 위험에 노출된 모든 작업자를 보호하는 것을 기본철학으로 하는 법이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 해도 사업에 따른 위험에 노출된 노무제공자들을 모두 동일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를 제공하는 계약의 형식이 결코 안전조치 의무의 존재 여부나 내용을 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산업안전 영역에서 실질적 고용관계란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과 유사한 관계이냐’가 아니라 ‘작업자 보호를 위해 위험을 발생시킨 사업주에게 그 위험을 관리할 법적 의무를 부여할 관계가 성립하느냐’를 평가하는 법리가 돼야 한다. 산안법 전면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계기를 만든 김용균 사망사건에서 산안법 기본철학에 부합하는,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