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건설현장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대구 죽곡산에서 무슨 일이?

백경열 기자
바위구멍(성혈)이 새겨진 너럭바위 일부분이 깨져 있다. 문화재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공사 초기 벌목 과정에서 굴착기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추정한다. 백경열 기자

바위구멍(성혈)이 새겨진 너럭바위 일부분이 깨져 있다. 문화재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공사 초기 벌목 과정에서 굴착기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추정한다. 백경열 기자

문화재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강행된 도로공사 현장에서 선사시대 유물 등이 확인돼 공사 절차상의 문제제기와 함께 유물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단체와 학자들은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 훼손이 불가피했다”며 제대로 된 후속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31일 대구 달성군에 따르면 다사 죽곡강정마을과 죽곡2지구를 잇는 도로 개설공사 현장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벌인 결과 죽곡리 고분군에 암각 2기가 새롭게 발견됐다. 지난 8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된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앞서 달성군은 지난해 11월부터 사업비 50억5000만원을 들여 해당 도로공사를 추진하다 최근 중단했다. 군은 당초 죽곡산 경사면을 따라 면적 1만5700㎡에 길이 488m인 2차로 도로 및 인도(폭 12m)를 건설키로 했다. 10여년 전부터 차량 정체 등에 따른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문화재 존재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문화재 지표조사는 공사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달성군은 행정 실수로 이를 생략했다. 공사 초기 업체 측은 굴착기를 동원해 수백그루의 나무를 베어 내고, 도로 진입구를 파헤쳐 배수관 작업 등을 했다.

공사가 시작되고 한달여 뒤 지표조사가 누락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달성군은 지난달 15일 공사를 중지하고 긴급 지표조사를 벌여 삼국시대 고분 등의 유적을 확인했다. 이후 조사에서 바위구멍(성혈)이 새겨진 암각들이 추가 발견된 것이다. 또 문헌조사를 통해 공사 부지 주변 500m 이내에 고분군·산성·성황목 등 8곳의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오른쪽)과 김종원 전 교수가 지난 23일 대구 달성군 죽곡산 정상 부근에서 바위구멍(성혈)이 새겨진 유적을 살펴보고 있다. 백경열 기자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오른쪽)과 김종원 전 교수가 지난 23일 대구 달성군 죽곡산 정상 부근에서 바위구멍(성혈)이 새겨진 유적을 살펴보고 있다. 백경열 기자

달성군 관계자는 “사업 전 도시계획시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화재 지표조사 대상지라는 담당 부서의 의견이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이후 사업이 수년간 지연되면서 담당자가 계속 바뀌었고, 인수인계 과정에서 (지표조사를 벌여야 한다는 내용을) 누락시킨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문화재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공사 초기 벌목 과정에서 굴착기에 의해 너락바위가 깨져 윷판형 암각화 등이 손상됐다고 판단했다. 실제 지난 23일 공사현장인 다사읍 죽곡산 기슭에는 여러 개의 둥근 홈이 파진 너럭바위들이 부서지거나 날카로운 물체에 긁힌 채 방치돼 있었다.

바위 표면에는 깊이 약 1㎝인 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었다. 이를 살피던 생태학자 김종원씨(전 계명대 교수)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별자리를 추상화 한 중요한 유물인데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능선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탐방로 곳곳에서 손가락 마디 크기의 토기 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빗살과 동심원 무늬 등이 그려져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는 둥근 ‘윷판형 암각화’가 뚜렷하게 새겨진 너락바위와 큰 돌을 쌓은 산성 흔적이 발견되는 등 곳곳에서 갖가지 유물과 유적이 확인됐다.

김씨는 “사전 조사없이 공사가 진행돼 보존가치가 큰 문화재들이 대거 훼손됐다”면서 “하늘과 비, 구름 등을 상징하는 삼국시대 토기 조각과 윳판 유적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 산 전체에 대한 발굴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생태학자인 김종원 전 교수가 지난 23일 대구 달성군 죽곡산 정상 부근에서 둥근 윷판형 암각화가 뚜렷하게 새겨진 퇴적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경열 기자

생태학자인 김종원 전 교수가 지난 23일 대구 달성군 죽곡산 정상 부근에서 둥근 윷판형 암각화가 뚜렷하게 새겨진 퇴적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경열 기자

문화재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공사 초기 벌목 과정에서 굴착기에 의해 너락바위가 깨져 윷판형 암각화 등이 손상됐다고 판단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윷판형 암각화가 새겨진 너럭바위가 깨진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현장확인 조차 없이 유물과 유적이 즐비한 곳에 공사를 벌인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등은 죽곡산의 경우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솟은 지형적 특성 때문에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며 기우제를 지내온 곳으로 추정한다.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고유 문화자산인 윷판형 암각화와 삼국시대 토기, 산성과 진영의 흔적 등으로 미뤄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산이라고 평가한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앞으로 죽곡산 전체에 대한 문화재 조사는 물론 지형지질 조사까지 벌여 이 산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조명해야 한다”면서 “죽곡산 인근에 널려 있는 선사인들의 흔적을 모아서 이를 탐방하거나 교육할 수 있는 장으로 가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달성군과 문화재청은 조만간 1만3237㎡의 면적에 대해 문화재 시굴조사를 추가로 벌일 방침이다. 장비를 동원해 땅을 파는 추가 조사에서도 문화재가 확인될 경우 이미 유적이 발견된 곳(1415㎡)과 함께 정식 발굴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달성군 관계자는 “공사 초기에 중단됐기 때문에 문화재가 대거 훼손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추가 문화재 조사 결과에 따라 사업을 계속할지 아니면 죽곡산 일대를 복구할 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