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선거판 ‘마타도어’ 이젠 그만

엄민용 기자

4·10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소문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쳐들기 시작할 때다. 선거철이면 근거 없는 사실로 상대를 헐뜯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마타도어(matador)’다. 이 말은 투우(鬪牛)에서 소를 유인해 정수리나 심장을 칼로 찔러 죽이는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마타도르(matador)’에서 유래했다.

투우에서 투우사는 붉은 천을 흔들어 소를 자극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소가 붉은색에 흥분하는 줄 안다. 하지만 소는 색맹이다. 소는 그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 거슬려 이를 치워 없애려 돌진하는 것뿐이고, 정작 붉은 천을 보고 흥분하는 것은 투우장의 관객들이다.

선거판이 딱 이렇다. 한 후보가 상대 후보에 대한 ‘카더라식 정보’를 흘리면 그 당사자는 즉각 반응하게 되고, 유권자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흥분한다. 이어 정보는 또 다른 정보를 만들어내면서 서로를 헐뜯는 표현들이 난무한다.

대중을 선동하는 데는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사실을 밝히려면 수백 장 분량의 글과 숱한 자료가 필요하다. 게다가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이미 대중의 뇌리에는 거짓이 사실로 문신처럼 새겨진다. 참 못된 정치다.

선거전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마타도어’의 바른 외래어 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국립국어원은 우리말샘에서 마타도어를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하기 위한 정치가들의 흑색선전”이라고 뜻풀이하면서 규범 표기는 ‘미확정’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마타도어’를 ‘흑색선전’이나 ‘중상모략’으로 순화해 쓰도록 권한다.

흑색선전에 이용되는 ‘찌라시’도 틀린 말이다.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쪽지”를 뜻하는 ‘chirashi’의 바른 외래어 표기는 ‘지라시’다. 이와 관련해 국립국어원은 지라시를 ‘선전지’ ‘낱장 광고’ 등으로 순화해 쓰도록 정한 적 있다. 하지만 이는 30여년 전의 결정으로, 최근의 쓰임과는 동떨어져 있다. 요즘엔 지라시가 ‘미확인 정보’나 ‘떠도는 소문’의 의미로 더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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