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9일까지 ‘난죽전’ 열려
매화와 난, 국화와 대나무를 일컫는 사군자에 대한 선호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이 매죽(梅竹)을 즐겨 그렸다면 근대에 이르러서는 난죽(蘭竹)이 선호되었다.
한말 난죽의 대가를 꼽는다면 소호(小湖) 김응원(1855∼1921)과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을 들 수 있다. 소호는 대원군의 석파란을 계승해 ‘소호란’으로 일컫는 묵란의 새 경지를 연 작가이다. 해강은 조선시대 묵죽의 전통에 청대 묵죽화풍을 수용한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2월19일까지 열리는 ‘소호와 해강의 난죽(蘭竹)’전은 전통과 현대의 가교 역할을 한 두 작가의 난과 대나무 그림으로 한국 근대기 서화의 가치와 의미를 살펴보는 자리이다. 학고재가 2009년 시작한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 전시의 후속전으로 소호 작품 20점, 해강 작품 13점, 두 사람의 합작품 1점이 선보인다.
소호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석파란을 계승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게 변형시킨 새로운 구도법을 사용했다. 대원군이 추사처럼 대상의 형태보다 의미에 치중한 사의란(寫意蘭)을 주로 다루었던 데 반해 소호는 사의란과 사생란(寫生蘭)의 난법을 겸하는 중간 입장을 취했다.
소호는 석란도 형식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난엽의 필치는 가늘고 단아했고 동세는 활달했다. 그는 종종 뿌리가 드러난 노근란을 그렸다. 일제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표시였다. 난초화의 원조로 여겨지는 송말원초의 정사초가 몽골에 대한 저항의식을 뿌리 없는 난 그림을 통해 표현했던 것과 같다.
해강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그린 풍죽, 이슬을 먹고 잎을 내려뜨린 노죽, 바위와 함께 그려진 죽석도 등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를 잘 그렸다.
특히 굵은 대나무 그림인 통죽에 일가견이 있었다. “가을소리 귀에 가득한데 사람은 오지 않고 거문고 타고 긴 휘파람 불 때 달이 떠올라 오네”라는 제시가 붙은 ‘월하죽림도’는 10폭 병풍의 대작이다. 한쪽으로 날리는 짧은 댓잎으로 세찬 바람의 느낌을 표현하는 그의 기법은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소호와 해강은 전통의 현대화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인물들”이라면서 “이번 전시로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 근대 서화의 양식과 시대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