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건과 풍경, 렌즈를 통해 하나가 되다

김종목 기자

‘매그넘 작가’ 구보타 히로지 서울 학고재에서 회고전

‘불교성지 황금바위’(1978)는 흑백에서 컬러로, 사건에서 풍경으로 전환하는 분수령이 된 작품이다. 학고재 제공

‘불교성지 황금바위’(1978)는 흑백에서 컬러로, 사건에서 풍경으로 전환하는 분수령이 된 작품이다. 학고재 제공

매그넘포토 홈페이지의 구보타 히로지(79) 소개를 보면 이런 말이 굵은 글씨로 처음 떠오른다.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사람들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사진을 찍고 싶다.” 2016년 캐논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를 포토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나는 그저 사진가일 뿐이다.”

서울 학고재에서 열리는 ‘구보타 히로지, 아시아를 사랑한 매그넘 작가’전은 구보타의 자기 규정과 목표를 확인하는 자리다. 작품 활동 50년간 남북한과 중국, 베트남, 미얀마와 미국을 아우르며 촬영한 109점을 내놓았다.

한국 첫 대규모 회고전이 대표 작품으로 뽑은 것은 1978년 미얀마 동남부의 유명 관광지이자 불교 성지인 짜익티요의 ‘황금바위’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한 장씩 붙인 금박으로 뒤덮인 거대한 황금바위 아래 승려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먼 거리에서 촬영한 이 작품에 대해 그는 “마치 색채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고 말한다. 흑백에서 컬러로, 사건에서 풍경으로 전환하는 분수령이 된 작품이다. “천천히 욕심 없이 사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 좋아서 말년에는 미얀마로 가 수도승으로 살고 싶다”는 작가의 애정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구보타 히로지는 남북한의 명승지를 여러 차례 촬영했다. 사진은 ‘압록강 상류’(1987). 학고재 제공

구보타 히로지는 남북한의 명승지를 여러 차례 촬영했다. 사진은 ‘압록강 상류’(1987). 학고재 제공

전시엔 남북한과 아시아 여러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을 라이카와 컬러 필름에 담은 사진 수십점이 나왔다. 남한의 서울(항공사진)과 설악산, 내장산, 북한의 금강산, 압록강을 두툼한 질감으로 촬영한 작품들은 수준 높은 풍경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자연스러운 색을 표현하려고 통상 3색이 아닌 8색의 ‘다이-트랜스퍼’ 기법으로 프린트한다.

북한 아이들의 무용 모습이나 매스게임 같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 북한 체제와 사람들을 찍은 작품도 여럿 출품했다. 중국을 1000일 동안 여행하며 20만장 이상을 촬영했는데, 전시에서는 그 결과물도 볼 수 있다.

사진계가 구보타의 작품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는 것은 1975년 베트남 사이공 함락 때다. 그는 베트남 전쟁의 처참함을 카메라에 담으며 갈등했다. 어린 시절 태평양전쟁의 마지막 나날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촬영비를 받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이후 갈등·분쟁 현장을 다시는 찍지 않았다. 베트남전 체험은 나중 ‘풍경’으로 옮겨간 계기가 된다.

인물과 사건과 풍경, 렌즈를 통해 하나가 되다

그럼에도 구보타의 작품 세계에서 ‘흑백 사진’과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60년대 초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을 처음 들춰 보면서 충격을 받곤 사진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매그넘 작가인 르네 뷔리가 찍은 가우초(남아메리카 초원 지대의 목동) 작품을 보며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시가를 입에 문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사진으로 유명한 르네 뷔리는 구보타를 매그넘으로 이끈 작가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찍은 ‘히피’(1971).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찍은 ‘히피’(1971).

‘초기 작업’ 섹션에선 ‘결정적 순간’ ‘흑백’ ‘사건’을 담던 구보타를 들여다볼 수 있다. 1963년 흑인 민권운동가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은 초기 대표작이다. ‘운디드 니’는 미국 제7기병대가 원주민 라코타족을 학살한 지 100년 되던 1990년 촬영한 작품이다. 학살 장소인 ‘운디드 니’에 모인 원주민 추모 행렬을 찍은 사진은 역사와 사건, 인물과 풍경에 관한 구보타의 사진 철학과 기법을 집약해 보여주는 명작 중 하나다. 구보타 히로지는 “자신의 작업이 35㎜ 렌즈로 바라보는 제한된 프레임 안에 ‘인물’과 그 인물의 ‘사회적 풍경’을 함께 담아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진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그는 방한 기간 내내 사진기 가방을 메고 다녔다. 전시는 4월22일까지. 5000원.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