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백남준의 ‘공든 탑’…미디어아트 보존에 관한 난제를 던지다

김종목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그 다사다난한 7색 이야기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2003년 노후 브라운관TV 모니터가 전면 교체됐다. 2016년에도 부품 교체 등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수리 후 정상 작동하는 2016년 ‘다다익선’(왼쪽 사진). 지난 2월 누전에 따른 화재·폭발 위험이 제기된 뒤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의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2003년 노후 브라운관TV 모니터가 전면 교체됐다. 2016년에도 부품 교체 등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수리 후 정상 작동하는 2016년 ‘다다익선’(왼쪽 사진). 지난 2월 누전에 따른 화재·폭발 위험이 제기된 뒤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의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국립현대미술관이 백남준의 ‘다다익선’ 보존 방안을 내년 상반기에 내기로 했다. 미술관은 ‘계속 가동할 경우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누전상태’라는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정기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지난 2월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1988년 과천관에 설치된 ‘다다익선’은 작품 주소재인 브라운관TV 모니터 노후화로 2003년 전면 교체 이후 지속적으로 기기를 수리하거나 교체해왔다. ‘다다익선’ 보존 방안은 현대미술 중 ‘미디어아트’의 보존에 관한 기준을 정립하는 복잡 다단한 문제다. 미술관은 2012년 11월 토론회를 열고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저작권, 원본성, 안전성 문제 등이 얽히고설켰다. ‘다다익선’ 역사와 가동 중단 및 보존 방안을 둘러싼 7가지 이야기를 정리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의 설치 과정과 보존 전략’ 자료 등을 참조했다. 2003년 ‘다다익선’ 모니터 교체 때 학예실장으로 일한 정준모 미술평론가, 국립현대미술관 류지연 큐레이터, 백남준아트센터 이채영 학예팀장에게 도움말을 들었다.

과천관의 램프코어 공간이 구겐하임 미술관과 닮았다는 지적에
“백남준의 번쩍번쩍한 작품으로 그것을 가리자” 생각으로 설치

① 구겐하임과 닮은 구조 덕분에 탄생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신축 공사가 시작된다. 이듬해 상량식에서 ‘램프코어’ 공간이 문제가 됐다. ‘사선으로 돌아 올라가는’ 형태의 램프코어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것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구겐하임 공간과 다르게 보이려고 나온 아이디어가 백남준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건축가 김원은 “(건립추진위는) 백남준의 작품이면 번쩍번쩍하니까 그것을 바라보느라 (램프코어) 공간을 볼 시간도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한다. 건축물 표절 의혹(?)을 피하려는 아이디어였던 셈이다. 건립추진위는 1986년 상반기 백남준에게 작품 설치를 제안한다. 과천관은 1986년 8월 문을 연다. 그해 10월 작품 구상을 위해 방한한 백남준은 램프코어 공간을 보며 “이 공간은 나를 위한 공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램프코어 나선식 계단 어느 곳에서든 작품 감상이 가능한 점을 높이 산 듯하다.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인 ‘다다익선’은 1988년 9월10일 밤 12시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한 백남준의 생방송 위성이벤트 ‘Lapping around the world’에서 먼저 공개된다. 나흘 뒤인 15일 공식 제막식이 열렸다.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만년을 대표하고, 과천관을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브라운관 모니터 1003대는 개천절을 상징한다.

② ‘다다익선’ 탑은 시설물이다?

‘다다익선’에서 백남준의 작품은 영상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이 ‘작품’으로 인식하는 ‘탑’ 형태 구조물은 건축가 김원이 설계해 만든 것이다. 이 구조물 자체는 미술관에 ‘시설물’로 등록됐다. 백남준의 작품은 영상 이미지를 담은 소프트웨어다. 미술관은 LD·유메틱에 저장한 총 8개의 소프트웨어를 소장작품에 올렸다. 예를 들어 ‘다다익선 Ⅰ’은 경복궁, 부채춤, 경회루, 고려청자, 한복 등 전통문화 소재와 개선문, 파르테논 신전 등 서양문화 소재를 빠른 템포로 어우러지게 해 보여준다. 샬럿 무어맨의 연주 모습도 삽입했다. 이 영상이 백남준의 작품인 것이다. 관람객들은 물론 여러 전문가들은 브라운관과 철재 구조물을 ‘다다익선’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한다. 여기서 난제가 발생한다. 영상설치나 미디어아트의 ‘원본성’이 무엇인지 현대미술의 논쟁도 여기서 비롯된다.

198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다다익선’ 앞에서 백남준이 웃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다다익선’ 앞에서 백남준이 웃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모니터 노후화로 화재 발생…단종으로 대체할 재고도 줄어들어
그러다가 ‘계속 가동 땐 폭발 위험’ 안전진단에 전면 가동 중단

③ 노후화로 인한 화재 그리고 리모델링

‘다다익선’은 2002년 모니터 노후화로 화재가 발생했다. 조기에 발견해 진화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화재 이후 작품 운영을 중지했다. 이듬해 3~5월 미술관은 모니터 전량 교체에 들어간다. 15년 이상 지난 브라운관 모니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미술관은 고장이 날 때마다 모니터를 교체해왔으나 단종 때문에 대체할 재고가 줄어들었다. 1988년 모니터를 전량 지원했던 삼성전자가 2003년에도 470대를 지원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일했다. 정 전 실장은 “당시 14인치가 없다고 하길래, 삼성 바르셀로나 공장에 있지 않으냐고 했다. 거기서 모니터를 가져왔다. 삼성이 생산 못하는 건 마산에 있는 동양전자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④ 이베이 검색하고, 황학동 돌아다니고

백남준 작품에 쓰인 모니터는 대부분 단종됐다.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다. ‘원본성’ 때문에 백남준 작품을 소장한 여러 미술관은 모니터 확보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모니터 구입을 위해 청계천 황학시장 등지를 돌아다니며 조사한다. 이채영 팀장은 “백남준 작품 중엔 구소련제 모니터도 있다. 이베이도 정기적으로 훑어 제품이 뜰 때마다 산다”고 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류지연 큐레이터는 “아프리카에서 부품을 구한 적도 있다”고 전한다. 이런 식의 구입은 한계에 이르렀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 작품은 작동을 멈춘 상태다. ‘미디어아트’를 소장한 세계 여러 미술관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⑤ 백남준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2003년 미술관이 모니터를 은색으로 교체한 것은 검은색 모니터가 단종됐기 때문이다. 백남준이 살아 있을 때는 문제없었다. 백남준 양해 아래 교체했다. 백남준은 각서도 썼다. ‘(테크니션) 이정성에게 다다익선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전권을 일임한다’는 내용이다. “ ‘사진 찍어서 보내드릴까요?’ 했더니 ‘됐어요’ 그러시더라고요. 껍데기는 은색이든 검은색이든 상관없고, 화면만 잘 나오면 된다고 하셨어요.” 정 전 실장은 2003년 리모델링 당시 여러 차례 백남준과 통화했다. 그는 “백남준 선생이 LCD 모니터 얇은 거를 (TV 케이스) 안에 넣어서 고정만 하면 된다고도 하셨다. 어디에다 켜도 괜찮다고 하셨다”고 말한다. 정 전 실장은 이 방법을 당시 삼성전자 가전부문 한용외 사장과도 논의했다. “백 선생한테 중요한 건 작품 개념이다. (작품 영상을 담는) 매체는 어느 방식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스마트폰으로 보든, 빔 프로젝트로 보든 백 선생의 화면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준은 2003년 검은색 브라운관이 은색 브라운관으로 대체된 것을 두고도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미술관 자료를 보면, “백남준의 작품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작품을 일종의 음악이라 보고 우연적 요소나 상황적 요소에 의해 작품의 변용이 허용되는 플럭서스 시대 이래의 믿음이었다”고 적혀 있다. 백남준은 디지털 매체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브라운관 구할 수 없자 LED 등으로 대체하자는 의견까지 나와
영상설치·미디어아트 ‘원본성’ 둘러싼 현대미술의 논쟁 중심에

⑥ 삼성 모니터를 LG 모니터로 바꾼다면

‘다다익선’은 백남준만의 것이 아닌 것이 됐다. 둥근 모양의 브라운관과 탑 구조물은 대중에게 너무 익숙하다.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의 김겸 소장은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에서 국내 모 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 작품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LCD 패널로 바뀐 것을 확인했다. 그는 “묵직한 LP판 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가 공존하던 당시의 새로움보다 더한 낯선 체험의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불룩하게 배를 내민 초기 브라운관 화면이 주는 인상은 백남준이 선별한 오브제로서의 오리지널리티뿐만 아니라 젊은 백남준의 기억과 맞바꿀 만큼의 시간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원본성’을 두고도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원본’이 무엇인지는 복잡하다. 예를 들어 2003년 리모델링 때 원래 검은색 모니터가 은색으로 바뀌었다. 현재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대안 중 하나인 ‘브라운관’ 모니터를 LCD나 LED 모니터로 바꾸는 것이다. 이 매체로 교체하면 ‘다다익선’ 특유의 브라운관의 볼록한 볼륨감이 사라진다. ‘원본성’이 저해되는 것이다. ‘원본’ 기준도 복잡해진다. ‘다다익선’의 현재 모니터는 대부분 삼성전자 제품이다. 비슷한 볼륨의 LG전자 제품으로 교환한다면, 원본성 문제는 어떻게 될까?

불 꺼진 백남준의 ‘공든 탑’…미디어아트 보존에 관한 난제를 던지다

⑦ 해외 사례와 대안…해체도?

여러 가지가 나와 있다.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서울아트가이드’ 최근호에 쓴 ‘백남준의 다다익선에 관하여’에서 3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독일의 ZKM 미술관 방식이다. 수명이 다하는 미디어 작품의 TV를 대체할 TV를 지속해서 사들인다. 이 미술관은 구시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다시 복원, 제작한다. 둘째, 일본의 ICC 미술관 방식이다. 창작자의 동의를 받아 작품의 시각적 원본성을 변형시킨다. 신매체를 소장 미디어 작품에 적용시키고, 다시 제작할 수 있는 권한을 작가에게 위임받는 것이다. 브라운관 TV를 LCD TV 등으로 바꿀 수 있다. 서 관장은 “미디어 작품의 시각적 원본성보다는 내면의 개념을 더 중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셋째, 영국의 FACT 미술관 방식이다. 원본성이 어느 정도 그럴듯해 보이면 TV 케이스는 그대로 두고 내부 브라운관을 평면 모니터로 바꿔 대중들이 작품의 원본성을 의심치 않게 하는 방식이다. 서 관장은 ‘다다익선’을 두고 4가지 방안을 냈다. ①똑같은 브라운관 모니터를 다시 사들여 전면 보수 복원하는 방법 ②LED 모니터로 전면 교체하는 방법 ③TV케이스는 그대로 사용하고 내부 튜브 브라운관만 LED 모니터로 바꾸는 방법 ④OLED(필름) TV 같은 신매체가 상용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다. 브라운관 앞에 필름 TV를 접착하면 보수를 간단하게 할 수가 있다.

이 방안을 두고 전문가 의견이 갈린다. 서진석 관장은 ①번 방식을 내세웠다. 정준모 전 실장은 백남준이 생전 밝힌 뜻과 작품 개념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LCD 등 신매체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OLED가 나오면 난제가 쉽게 풀릴 테니 기다리자는 의견도 있다. 또 OLED로 붙이는 건 기만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마지막 방법은 ‘해체’다. ‘다다익선’ 구조물은 시설물이다. 원래 과천관 개관을 기념해 한시적으로 설치하려 한 작품이다. 규정상 미술관이 해체한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미술관은 수리나 모니터 교체는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점 외에도 건축을 이유로 2012년 한때 해체를 검토한 적이 있다. 원래 ‘다다익선’이 있는 램프코어는 전시공간이 아니다. 미술관 건축 핵심으로 설계되어 여러 전시 공간을 연결하는 중심 공간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계획했다고 한다. ‘다다익선’이 원래 설계가 의도한 조망을 간섭하고 방해한다. 하지만 ‘다다익선’의 상징성 때문에 해체 가능성은 낮다. 류지연 큐레이터는 “철거는 최악의 상황이다.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고 했다.

미술관이 보존 방안을 마련할 때 백남준 작품 저작권자인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백남준의 조카 하쿠다 겐 백과 협의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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