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껏 발을 구르면 북한이 보인다···슈퍼플렉스의 ‘하나 둘 셋 스윙!’

홍진수 기자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야콥 펭거 수퍼플렉스 작가, 조경진 리얼디엠지대표(왼쪽부터)가 지난 21일 경기도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설치작품 ‘하나 둘 셋 스윙!’을 타고 있다. 홍진수 기자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야콥 펭거 수퍼플렉스 작가, 조경진 리얼디엠지대표(왼쪽부터)가 지난 21일 경기도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설치작품 ‘하나 둘 셋 스윙!’을 타고 있다. 홍진수 기자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전망대 앞에 난데없이 ‘그네’가 생겼다. 3명이 힘을 합쳐 발을 구르면 저 멀리 북한 땅이 조금 더 다가온다. 순서를 기다리면 전망대 방문객 누구라도 탈 수 있다. 유치하게 무슨 그네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알 수 있을까. 언젠가 마주 보는 북한 땅에도 그네가 생겨 함께 발을 구르는 날이 올지.

지난 20일부터 경기 파주시 도라전망대 앞에서 운영되고 있는 그네는 덴마크의 3인조 작가그룹 ‘슈퍼플렉스(SUPERPLEX)’의 작품 ‘하나 둘 셋 스윙!’이다. 슈퍼플렉스는 2017년 영국 런던에 있는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 터바인홀에 처음 이 작품을 설치했고,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본, 스위스 바젤을 거쳐 5번째 장소로 파주를 골랐다. ‘하나 둘 셋 스윙!’은 앞으로 2년간 도라전망대 앞을 지킨다.

슈퍼플렉스는 1993년 덴마크왕립예술학교를 다니던 야코브 펭거(Jakob Fenger), 비에른스티에르네 크리스티안센(BjФrnstjerne Christiansen), 라스무스 닐센(Rasmus Nielsen)이 결성했다. 대체에너지, 도시화, 이주, 글로벌 자본 등 우리 시대 다양한 현안에 질문하면서 사회 변화를 끌어내는 작업을 선보여 명성을 얻었다. 3명이 ‘슈퍼플렉스’란 하나의 작가로 활동하며, 개인 작업은 하지 않는다. 2013년에는 재미 큐레이터 주은지씨와 함께 북한을 방문해 ‘바이오가스 시스템’을 북한 농가에 설치하기도 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3인용 그네 두 쌍이지만, 한 번 더 살펴보면 그네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 더 재미있다. 지난 21일 도라전망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슈퍼플렉스 멤버 야코브 펭거는 “그네는 주황색 튜브(기둥)들로 연결되어 있다”며 “이 튜브는 (직전 설치 장소인) 바젤에서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한국에서 다시 솟아났다”며 작가적 상상을 말했다. 이어 “앞으로 (전망대) 창밖으로 보이는 곳(북한)에서도 이런 작업을 하고 싶다”며 “허황된 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허황된 꿈을 꿔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 둘 셋 스윙!’은 2년 가까운 준비 끝에 한국에 설치됐다. 슈퍼플렉스가 2017 덴마크를 방문한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에게 남북한 경계에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한국·덴마크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올해 성사됐다. 김 대표는 아트선재 관장으로 있던 2012년부터 강원도 일대에서 매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를 열고 있을 정도로 비무장지대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현재 서울역 구역사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고 있는 ‘DMZ전’의 기획자 역시 김 대표다. 김 대표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남북한 군인들이 담배를 교환해 피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자리에 북한군 담배자판기를 만들어 설치하는 계획을 세웠었다”며 “그게 불가능해 다른 기획을 준비하던 차에 슈퍼플렉스의 제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나 둘 셋 스윙!’은 북한을 정확하게 마주하지는 못한다. 기존의 관람객 휴게공간과 봉수대 등을 고려해 설치하다 보니 북한을 사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네를 타고 오를 때마다 북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지는 경험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펭거는 “작품과 물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예술은, 단순히 우리가 바라보는 오브제가 아니라 삶과 사회, 시대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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