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대중문화에 투영된 민중의 욕망과 이념투쟁

문학수 선임기자

강헌의 대중문화사 1·2

강헌 지음 |이봄 | 336쪽·316쪽 | 각권 1만5000원

1970년대 독재권력이 대중문화를 억압하던 시절에도 ‘록의 전설’로 불리는 신중현 등 대중예술가들의 자유주의를 향한 분출은 끊이지 않았다.<br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0년대 독재권력이 대중문화를 억압하던 시절에도 ‘록의 전설’로 불리는 신중현 등 대중예술가들의 자유주의를 향한 분출은 끊이지 않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축구의 종주국은 영국이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나라는 브라질이다. 이 책의 저자가 거기에 빗대 트로트를 설명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흔히 ‘뽕짝’이라고도 불리는 트로트는 “일본이 만들어낸 음악(엔카)이지만 우리나라 대중의 감수성에 훨씬 잘 맞는 장르”다. “미니멀리즘을 숭상하는 일본의 미학적 감수성에 맞지 않는 음악”이며 “음을 살짝 떠는 정도로는 호소력을 가질 수 없고, 뭔가 격렬한 감정이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192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일본 엔카의 천황으로 불렸던 고가 마사오는 한국의 트로트에 평생토록 열등감을 가졌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한국의 나훈아·이미자는 물론이고, 미소라 히바리(1937~1989)를 비롯해 일본 엔카의 슈퍼스타들 상당수가 조선계였기 때문이다.

[책과 삶]대중문화에 투영된 민중의 욕망과 이념투쟁

문화 전반을 휘저으며 왕성한 필력을 보여주는 평론가 강헌이 또 하나의 저작을 세상에 내놨다. 이번에는 본인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대중문화’로 돌아왔다. 그는 2015년 여름에 동서양 문화사를 넘나드는 음악 이야기를 <전복과 반전의 역사>에 담아내더니, 같은 해 겨울에는 독학으로 공부한 <명리>를 출간한 바 있다. 직업적 정체성으로 따지자면 약간 ‘불명’으로 보이지만 왕성한 탐구열과 집필력은 같은 분야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방면을 향해 무수히 뻗은 그의 촉수는 단순히 읽고 쓰기에만 멈추지도 않는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는 음악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에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의 영화를 제작하고 뮤지컬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와인, 축구, 음식 등 이른바 ‘잡식’에 대한 몰입을 여러 지면에서 이미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헌은 주로 대중음악평론가로 불려왔다. 사실 그는 ‘일제강점기 및 미군정기 음악비평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 성공회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균관대 등에서 실제로 ‘대중음악사’를 강의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번 책은 그의 진면목이다. 게다가 이 책은 그간 강헌이 오래도록 곰삭여온 ‘회심의 일격’처럼 보인다. 일단 다루고 있는 시대가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2016년까지로 방대하다. 강헌은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300명의 양민들이 일으켰던 봉기를 근대의 입구로 바라본다. 봉건의 시대에서 ‘대중의 시대’로 전이되는 첫 순간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출발해 오늘까지의 대중문화사를 모두 네 권의 책에 담는다는 것이 저자의 계획이다. 그는 대중문화에 대해 “다양한 층위의 억압으로부터 대중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최전선”이라고 정의한다.

먼저 출간된 두 권 가운데 1권은 갑오년 혁명부터 1945년까지를 담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제목을 달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초연된 신파극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한 많은 여자의 비참한 인생’이라는, 당대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이 신파극은 해방 이전 한국연극사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었다. 주제가인 ‘홍도야 우지 마라’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애창곡이다. 저자는 “동학농민혁명에서 만민공동회로 이어지는 500년 조선왕조의 황혼에서 대중의 등장과 대중문화의 출현을 추출하고자 했다”며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뒤에 어른거리는 ‘서구’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동경했으며, (중략) 어쩌면 이 혼란스러운 착종이야말로 한국 대중문화사의 근원적 동력일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해방 이후부터 1975년까지를 다루는 2권에는 ‘자유만세’라는 제목이 붙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애초에는 영화 제목이었다.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는 해방 이후 만들어진 최초의 한국영화로 기록된다. 지금의 시선에서 보자면 독립군과 그를 돕는 조선 여인의 이야기가 손발을 오글거리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36년 강점기’를 견뎌냈던 대중을 감동시켰고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을 잇는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저자는 특히 1970년대에 벌어졌던 청년문화의 등장에 주목하면서 “박정희주의가 기획한 파시즘 동원 문화와 자발적인 대학가 청년문화의 충돌이야말로 한국 대중문화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백미”라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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