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산 증인"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남긴 것은 영원하다

이영경 기자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국문학 연구 대가이자 1세대 문학평론가인 고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지난 25일 숙환으로 별세한 고인은 평생 한국문학 역사를 연구하고, 작품을 비평했다. 학술서, 비평서, 산문집, 번역서 등 그의 저서는 200여 권에 달한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국문학 연구 대가이자 1세대 문학평론가인 고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지난 25일 숙환으로 별세한 고인은 평생 한국문학 역사를 연구하고, 작품을 비평했다. 학술서, 비평서, 산문집, 번역서 등 그의 저서는 200여 권에 달한다. 연합뉴스

“한때 그토록 휘황했던 빛이/영영 내 눈에서 사라졌을지라도/들판의 빛남, 꽃의 영화로움의 한때를/송두리째 되돌릴 수 없다 해도/우리는 슬퍼 말지니라. 그 뒤에 남아 있는/ 힘을 찾을 수 있기에”(워즈워드, ‘어린시절을 회상하고 영생불멸을 깨닫는 노래’)

고(故)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2001년 퇴임을 기념하는 고별강연에서 워즈워드의 시 한 구절을 인용했다. 그는 “감추어진 힘은 무엇일까. 연구자로, 비평가로 제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성실했다면 그것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남아서 힘이 되어 시방 저녁놀 빛, 몽매함에 놓인 제게 되돌아오고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향년 82세의 일기로 김윤식 교수의 육신은 영원히 잠들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것들은 영원히 남았다. 일생을 문학 연구에 바치고, 눈을 감기 직전까지 현장 비평에 힘을 쏟았던 그의 발자취는 200권이 넘는 저서와 함께 한국문학에 그 빛을 비추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그의 빈소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후학과 작가들의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2015년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5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2015년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5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서 김윤식 선생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문학 연구자들 사이에 나오는 말이다. 김 교수는 국문학계에서 독보적 존재로 그의 연구범위는 광범위했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 초석을 놓았고 그 기틀 아래서 한국 근대문학 연구가 꽃을 피웠다. 제자인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고인의 근대문학 연구는 일제강점기 이후 나라 잃음 설움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근대국가로 성장하는 정신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좌익 문인 단체인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연구를 시작으로 임화, 이광수, 염상섭, 이상 등에 대한 연구를 폭넓게 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염상섭 연구> <임화 연구> 등의 작가론과 <한국현대문학비평사론> <일제말기 한국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 등의 숱한 학술서를 내놓았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2015년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도중 기념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5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2015년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도중 기념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5

“한국 현대문학의 산 증인” “작가들에게 등대 같은 존재”.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장비평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오는 소설을 읽고 ‘월평(매달 하는 평)’을 썼다. 그는 유명 작가건, 신진 작가건 가리지 않고 오로지 작품을 읽고 평하고 공감했다. SF작가 배명훈은 “젊은 평론가들이 아니라 오히려 원로인 선생님이 제 소설을 읽고 평을 해주셨다. SF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한국 소설’로 똑같이 다뤄줬던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고인이 쓴 마지막 비평은 계간지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렸다. 원고지에 쓴 고인의 원고를 정리하는 일을 도왔던 서경석 한양대 교수는 “몸이 엄청나게 불편해도 계간지와 월간지를 다 읽고 정성껏 평을 하셨다”며 “읽고 쓰는 것이 선생님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공부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삶.” 김 교수의 존재는 후학들에게 귀감과 영감이 되었다. 그의 강의는 ‘서울대 명강의’로 꼽혔으며 비전공 학생도 앞다퉈 들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선생님에 대한 전설이 하나 있다. 선생님 입꼬리 한 쪽이 올라가 있는데, 이부자리에서 편히 자는 게 아니라 공부하다 책상에서 고개만 한 쪽으로 돌리고 잠을 자서 그렇다는 말이었다”며 “공부와 자기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 공부에 나를 던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인생의 에너지를 학문과 글쓰기에 바친 분”이라며 “선생님의 흔적과 자취를 좇는 동시에 고인이 남긴 것이 거대한 울타리였기에 어떻게 나만의 개성적 글쓰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인을 꿈꿨던 고인은 학문으로 방향을 튼 후 연구와 비평에선 소설을 다루는 동시에 예술 기행집을 여러 권 펴내면서 에세이스트로의 면모도 보였다. <환각을 찾아서> <설렘과 황홀의 순간> 등에서 그는 깊은 지성과 감성이 결합된 에세이를 선보였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다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2001년 고별 강의에서 고인은 말했다. 일생을 문학과 글쓰기에 바친 고인을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제자와 작가들이 참여하는 추모식은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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