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마음의 병도 고친다" 나를 표현하고 치유하는 문학상담

이영경 기자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상담과 철학상담을 가르치는 진은영 시인(왼쪽)과 김경희 교수를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만났다. 이들은 문학상담의 이론과 실제를 다룬 책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를 함께 펴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상담과 철학상담을 가르치는 진은영 시인(왼쪽)과 김경희 교수를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만났다. 이들은 문학상담의 이론과 실제를 다룬 책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를 함께 펴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제가 시를 쓰게 된 이유도 상처 때문이었어요. 슬퍼서 썼는데, 쓰니까 좀 덜 슬퍼지게 됐어요. 슬픔을 쓰는데, 쓰는 일이 주는 기쁨 때문에 슬프면서도 기쁜 느낌이 들었어요. 문학적 작업은 슬픔을 잘 견디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고, 슬픔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예술가로서 창작을 통해 했던 치유의 과정을 문학상담 참여자들이 비슷하게 경험해요.”(진은영 시인)

‘문학’과 ‘상담’이란 말은 익숙하지만, ‘문학상담’이란 말은 좀 낯설다. 서구에선 19세기부터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문학작품을 활용하는 비블리오테라피(독서치료)가 시작됐고, 1960년대에 문학치료가 확산됐지만, 한국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다. 최근 문학상담의 이론과 실제를 다룬 책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엑스북스)가 출간됐다.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해온 진은영 시인과 김경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가 함께 펴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진 시인은 2013년부터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상담 전공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 교수는 같은 학교에서 철학상담을 가르친다. 두 사람은 ‘인문상담’이란 큰 틀 안에서 함께 일한다.

진 시인은 그동안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참여해왔다. 진 시인은 “사회문제에 대해 문학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을 다른 작가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문학의 결과물이 아니라 활동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문학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문학상담의 장으로 넘어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상담은 읽기와 쓰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상담이다. 주로 4~6명이 함께하는 소규모 집단상담으로 이뤄지며, 문학작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써보며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진 시인은 “어떻게 느끼는지 말하고 싶어도 가지고 있는 언어가 빈곤하면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이 문학상담의 중요한 문제의식”이라고 말했다. 철학과 문학은 삶에 대한 근본적으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김 교수는 “철학적 질문은 내담자들이 일상의 습관화된 사유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제공한다. 또한 카뮈의 <이방인>이나 카프카의 <심판>은 철학적 주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문학작품이다. 문학상담과 철학상담은 서로 연결되어 한 곳으로 통하는 두 개의 문과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시인들과 협업으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자기성찰 프로그램, 취업준비와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은 20~30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청소년을 상대로 한 인문예술 통합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왔다.

다른 시인의 작품에서 오려낸 구절을 재조합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보는 ‘시 콜라주’ 활동도 문학상담에서 활용하는 방법이다. 문학상담에 참여한 한 참가자가 만든 ‘시 콜라주’. 엑스북스 제공

다른 시인의 작품에서 오려낸 구절을 재조합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보는 ‘시 콜라주’ 활동도 문학상담에서 활용하는 방법이다. 문학상담에 참여한 한 참가자가 만든 ‘시 콜라주’. 엑스북스 제공

문학상담은 아직 병리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상처를 성찰하고 진정한 자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예방적 치료’에 가깝다. 진 시인은 “고통이 꼭 치명적 증상이 아니라 허무함과 허탈함의 기분으로 불쑥불쑥 찾아오기도 한다”며 “문학상담을 비롯한 인문상담은 고통이나 편치 않은 기분을 삶의 변화와 자기 성장을 위해 제대로 살피고 돌보라는 일종의 신호로 보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근본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이나 철학이 삶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문학상담의 장점은 은유나 상징과 같은 문학적 표현으로 안전하게 자기 상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해 문학적으로 쓴다면 직접적 방식으로 말할 때 생기는 심리적·현실적 부담으로부터 내담자를 보호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을 폭로하며 소설 형식의 글을 쓴 것이 떠오른다. 김 교수는 “서 검사도 자기 문제를 이야기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할까 난감해했을 것 같다. 일상적 언어로 고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해놓고도 제대로 된 걸까 고민하기도 한다. 문학상담은 자기를 표현하는 적절한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진 시인은 “문학상담은 말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개인들이 다뤄야할 고통을 충분히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흔히 심리상담이라고 하면, 개인 내면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문학상담이 개인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타자의 고통과 연결되고,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돕는다고 말한다.

“아이 잃은 엄마의 고통에 대해 말하다보면 사람들은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의 고통에 더 절실하게 공감합니다. 사회적 재난으로 자녀를 잃었든 교통사고나 병으로 아이를 잃었든 부모에게 신속한 애도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거든요. 자기 슬픔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배웁니다.”(진은영)

문학상담은 단순히 문학이 상담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고통받는 모든 이들이 쓰고 표현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기쁨으로 이행하는 자가 될 수 있는 ‘만인의 작가-되기’라는 문학적 민주주의를 제안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진 시인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탁월한 결과물에 대한 부담없이 문학적 활동을 자기 삶 속으로 가져온다. 자기표현을 통한 관계 형성이 소수 작가에게 허락된 등단과 출판으로 환원되지 않고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촉진한다. 재능의 위계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문학상담은 청소년들에 대한 예술교육의 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문학상담 참가자들이 상담 과정에서 작성한 시와 작품들을 묶어 자신만의 시집을 만들었다.

문학상담 참가자들이 상담 과정에서 작성한 시와 작품들을 묶어 자신만의 시집을 만들었다.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는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다. 문학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와 풍부한 문학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책을 읽는 것 자체로 일종의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책 3부는 실제 문학상담에서 활용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그중 하나는 문학작품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콕 ‘찌르는’ 단어나 문장을 찾아보고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두 사람을 가장 찔렀던’ 작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둘 다 상담에 참여한 이들이 쓴 시의 한 구절을 꼽았다. 시를 써본 적 없던 이들이 내면에서 길어올린 언어가 싱싱하게 살아있다. 김 교수가 꼽은 학생의 시는 상담을 하는 사람이 갖는 ‘긍정’에 대한 강박을 표현한 것이다.

“엄마/ 아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멍. 눌러도 아프지 않다// 아빠/ 양호 선생님이 발라준 얌전한 마데카솔 닦고 과산화수소를 붓는다/ 상처 위로 부글부글 피어오르는 하얀 거품”(진은영)

“긍정/ 바싹 말리지 않으면/ 자칫 냄새가 날 것 같은,/ 조바심”(김경희)

"문학으로 마음의 병도 고친다" 나를 표현하고 치유하는 문학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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