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뿌리'다...20년 성매매 터널을 빠져나온 여성의 증언

이영경 기자
20여년 간 성매매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매매 산업과 그 안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착취와 폭력을 증언한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펴낸 봄날 작가가 지난 4일 서울 중구 정동길을 건너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여년 간 성매매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매매 산업과 그 안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착취와 폭력을 증언한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펴낸 봄날 작가가 지난 4일 서울 중구 정동길을 건너고 있다. 이준헌 기자

어린 시절 아버지는 폭력을 휘둘렀다. 여덟 살 고사리손에 걸레와 밥솥이 쥐어졌다. 옆집 삼촌은 다락방에서 ‘나’를 성추행했다. 100원 짜리 동전 두 개를 쥐어주며 입을 막았다. 중학교 2학년, 아버지의 강요로 학교를 중퇴했다. 열여섯에 취직한 봉제공장에서 통근버스 기사에게 강간당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열일곱, 처음 사랑했던 남자는 임신한 사실을 알자 임신중절을 하게 한 후 연락을 끊었다. 열여덟,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를 따라 가라오케에 갔다. 앉아서 주는 술을 받아 마셨더니 9만원을 받았다. 그 뒤로 인생이 바뀌었다. 가정폭력, 성추행, 학업중단, 강간, 임신중절…그 모든 폭력의 끝에 성매매가 있었다.

“내가 겪은 성폭력, 성추행, 데이트 폭력은 성매매로 이어지는 과정에 큰 작용을 했다. 아니, 그 폭력들은 사실 같은 것들이었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반비)의 작가 ‘봄날’은 말한다. 봄날은 20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성매매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털어놓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의문이 든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나 희생을 강요당하고 온갖 폭력에 노출된 그에게 선택의 여지란 게 있었는가. 처음부터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게 아니었나. 지난 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봄날은 “내 경험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겪는 폭력과 관련돼 있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드러내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 20년 성매매 당사자가 써내려간 현장 보고서

책은 성매매 경험자가 써내려간 충실한 현장 보고서다. 가난하고 취약한 미성년 여성이 어떻게 성매매로 유입돼 빠져나올 수 없는 빚의 고리 안에서 착취당하는지, 업주와 알선자, 구매자는 어떻게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는지, 성매매 산업이 얼마나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촘촘하게 매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업소에서 왜 못나오냐고 쉽게 말하는데, 복잡하게 얽혀있어요. 홀복·화장품·미용실 값 등을 지출하게 하고, 이게 고스란히 선불금이란 빚이 돼요. 선불금을 갚는 것도 어렵지만, 갚아나가는 동안 나도 나이가 들어요. 스물 두세살에도 여성을 바꿔 달라고 할 정도로 업계에서는 나이에 따라 업종이 바뀌어요. 대한민국에 업소가 얼마나 많은지, 모든 지역의 업소가 통해요. 룸살롱에서 성매매 집결지, 티켓다방까지...빚을 따라 팔려가는 거죠.”

충청남도 D시, 전라북도 J시, 경상북도 K시, 제주도…. 봄날이 빚을 옮겨가며 ‘팔려간’ 곳은 책에 언급된 곳만 열다섯 지역이 넘는다. 인구가 적은 지방 소도시에도 티켓 다방이 밀집해있다.

업소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철저히 폭력과 착취에 길들여진다. 업주와 알선업자는 자신을 ‘엄마, 아빠, 삼촌’으로 부르라고 하지만, 이들은 여성들을 착취할 뿐이다. 구매자가 콘돔을 거부해 임신을 해도 ‘여성 탓’이라며 중절 수술비에 ‘2차’를 못 나가는 비용까지 빚으로 물린다. 집결지에선 ‘생리’라는 걸 인정조차 않는다.

구매자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아버지, 남편, 직장인, 대학생, 고등학생, 경찰 등이다. 이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물건 취급한다. 신고식이라며 팬티까지 벗고 인사를 하게 하고, 술을 몰래 버렸다는 이유로 쓰레기통에서 거른 술을 억지로 마시도록 하고, 비위를 못 맞춘다며 구타한다. 하지만 업주들은 ‘장사’에 지장이 갈까봐 오히려 여성들에게 술값을 물게 한다. 그렇게 몸은 상하고, 빚은 늘어간다.

봄날 작가가 탈성매매 경험을 기록한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들고 서울 중구 정동길을 걷고 있다. 이준헌 기자

봄날 작가가 탈성매매 경험을 기록한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들고 서울 중구 정동길을 걷고 있다. 이준헌 기자

■ 탈성매매를 넘어 반성매매 활동가로

책의 다른 한 축은 탈성매매의 과정이다. 고통스럽게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고 경험을 재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탈성매매를 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폭력과 착취 속에 살았던 봄날이 자신을 되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동안은 ‘업소에서 잘 나갔던 언니’로 자신을 정체화했어요. 삶의 밑바닥까지 갔다온 내 모습을 드러내기 힘들었어요. 학력을 내세우겠어요, 가족을 내세우겠어요. 하지만 창원에서 성매매 여성이 구매자에게 목졸려 살해당한 사건 이후 성매매 당사자 자조모임 ‘뭉치’를 만나게 됐어요. 비로소 ‘내 경험’이 아닌 ‘친구들의 경험’이 들리기 시작했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폭력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거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을 긍정하는 데서 나아가 반성매매 활동가로 한발짝 나아간다. 지난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운동’이 일었을 때,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이어말하기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당한 성폭력에 대해 발언했다.

“나한테 성매매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성추행·성폭력 다 있었어요.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사회적 낙인이 심한 성매매 여성들이 발언하면 미투 운동이 꺾이게 될까 우려가 됐어요. 하지만 백화점에서 열일곱의 나를 강간했던 가해자를 마주친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렸어요. 오래 전 일이고 증거도 없어 법적인 조치를 취할 방법은 없었어요. 발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을 모아 대독했습니다. 여성들이 당한 폭력은 성매매 여성들에겐 일상이고 게중에도 약한 폭력이에요.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의 끝판왕은 성매매입니다.”

봄날은 현재 성매매 피해여성을 지원하는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담하면서 매번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한다. 때론 악몽과 같은 심리적 증상으로, 때론 구매자들에게 구타당했던 것 같은 신체적 고통으로 나타났다. 그는 “성매매 당사자가 점점 어려져 연령이 초등학교까지 내려간다. 10대들이 교복을 입고 와서 상담하고 가는 뒷 모습을 보는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봄날은 성매매라는 폭력과 상처를 이겨낸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가운데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악몽은 지금도 꿔요. 아마 평생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20년의 시간을 되돌릴 순 없어요. 그 시간이 내 삶의 용기가 되고 원동력이 되고 경험으로 남았다는 것으로 다행입니다. 어느 한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나쁘기는 했지만 힘이 되는 경험이었어요. 성매매 방지법이 정비되고 정책이 시행되려면 많은 사례들이 필요해요. 다시 제도가 정비될 때 제 경험이 힘이 될거라 생각하면 그렇게 슬프지 않아요.”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2002년 ‘군산 윤락가 화재참사 책임자 처벌과 성매매 방지법 제정’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2002년 ‘군산 윤락가 화재참사 책임자 처벌과 성매매 방지법 제정’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 성구매자와 알선자에 대한 엄벌 필요…이 사회가 ‘성매매의 방관자’

“이 사회 모두가 방관자다. 성매매 경험을 성찰하는 것은 경험 당사자만의 몫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을 구매하는 행위에 대해 ‘필요악’이라는 궤변으로 포장하는 문화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뿌리 깊은 성매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이 사회가 비로소 안전해지지 않을까.”

봄날은 성매매를 없애기 위해서 구매자와 알선자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매매 여성까지 처벌하는 현행법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의 신고나 탈성매매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를 보면 아일랜드의 반성매매 활동가 레이첼 모랜이 떠오른다. 그 역시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열다섯에 성매매에 유입돼 탈성매매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 <페이드 포>를 펴냈다. 그는 아일랜드 정부를 상대로 성착취 경험을 증언하고 반성매매 운동을 벌였다. 이후 아일랜드는 성구매자만을 처벌하고 판매자는 처벌하지 않는 노르딕 모델을 도입했다.

봄날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언니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탈성매매 여성에 대한 지원금이 성매매 방지법이 처음 만들어진 2004년과 똑같다”며 “그동안 가난했지만 나누고 사는 삶을 동경했다. 후원도 많이 하고 장학재단을 만들어 탈성매매 여성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책을 넘기다 보면 어린 봄날이 아버지의 매를 피해 숨던 순간, 학교를 자퇴하던 순간, 유흥업소에 처음 가던 순간, 빚을 갚고 속칭 ‘유리방’으로 불리던 집결지를 빠져나오고서도 돈이 없어 다시 업소로 돌아가는 순간 등 몇 번이나 되돌려 세워 붙잡고 싶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봄날은 이미 스스로 과거 모든 순간의 자신을 불러세워 안아줬다. 혹독한 성매매의 시간을 딛고 스스로 봄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뿌리'다...20년 성매매 터널을 빠져나온 여성의 증언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