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족이 조선 왕자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을까···‘이왕가의 혼담’

김민정 재일 작가

하야시 마리코

<이왕가의 혼담>

[김민정의 도쿄 책갈피]일본 왕족이 조선 왕자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을까···‘이왕가의 혼담’

얼마 전 일본 왕실의 마코 공주가 대학 시절에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했다. 시어머니가 사귀던 사람에게서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받고 갚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어 여론이 악화되었고, 결국 마코 공주는 왕실을 떠날 때 받을 수 있는 15억원의 일시 정착금을 포기하고 결혼식조차 치르지 못한 채 평민이 되었다.

일본 왕실은 이제 상징적으로만 남아 있지만,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에 일본인들은 관심을 기울인다. 현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가 며칠 전 스무 살이 되었는데 얼마짜리 왕관을 쓰고 어떤 옷을 입었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까지 보도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왕가의 결혼은 온 국민의 관심사다. 대한제국과 일본 왕실의 결혼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일본은 한국병합 이후 대한제국 왕실의 자손들을 귀족으로 대접했지만, 일본의 공주를 처음부터 대한제국 자손에게 시집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 물꼬를 튼 사람이 바로, 이방자 여사의 어머니 나시모토 이쓰코다. 왕태자 이은, 덕혜옹주 등의 혼인을 성사시킨 사람이다. 이쓰코비는 주이탈리아 공사 나베시마 나오히로의 딸이다. 이탈리아의 수도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이쓰코(伊都子)라 이름 붙였다. 막강한 부를 자랑하는 무사의 집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배운 아버지 나베시마 나오히로는 딸 이쓰코의 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이쓰코는 간호학을 배웠으며, 왕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과 결혼해, 왕비가 되었다.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가부키를 보러 가는 것이 취미인 이쓰코비에게 고민이란 두 딸의 혼사다. 일본 왕족과의 결혼을 꿈꾸기도 했지만, 왕세자는 다른 왕족을 책봉했고, 귀족 가문과의 결혼도 고려해 보지만 일본 내에서 왕족이나 귀족과 결혼한다는 것은 당쟁에 뛰어들고 재산을 쏟아붓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결혼을 통해 배운 바 있다.

그리하여 이쓰코비는 일본 왕족과 같은 대우를 받는 조선의 왕태자와 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를 결혼시키려고 한다. 왕실과 총독부는 아무리 한일합병을 했다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대했지만 결국 찬성하기에 이르렀고, 나중에는 총독부가 이 결혼을 주도한다. 이 세기의 결혼은 이제 대한제국과 일본이 더 굳건해지는 계기를 마련하는 발판이 되고, 이방자 여사를 가엽게 여기던 사람들은 곧 그를 대단한 여성이라고 치켜세우게 된다. 한편, 일본 왕족이 조선인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하자, 이방자 여사 집 벽에는 ‘매국노’라는 낙서가 적히고, 협박 전화와 편지도 끊이질 않는다.

소설 <이왕조의 혼담>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 ‘하야시 마리코’의 최신작이다. 1982년 <막차 시간에 늦지 않으면>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했고, 이미 원로작가 대열에 든 인물이다. 여성의 외모와 내면에 집착을 보여온 작가는 최근 들어 왕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책에는 우리가 몰랐던 대한제국의 왕실 자손들의 결혼에 일본 왕족이 크게 관여하고, 결국 총독부까지 끼어들어 조선 통치를 다지고자 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조선에 대한 일본 왕족의 양가적 감정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엔 일왕이 알현하러 가던 고귀한 나라인 조선이 합병이란 이름하에 식민지가 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토 히로부미가 매년 조선에 들이는 돈이 얼마인데 조선인은 왜 그를 죽였느냐며 한탄한다.

이쓰코비의 일기 등을 참조했지만 소설이다. 다만 영친왕, 이방자 여사, 그 아들 이구, 덕혜옹주와 이강 왕자,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일본적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그려낸 독특한 소설인 것은 틀림없다.


Today`s HOT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