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세계를 만든 오스만, 오스만을 만든 셀림”

김종목 기자

술탄 셀림

앨런 미카일 지음·이종인 옮김│ 책과함께│848쪽│3만8000원

오스만 제국 술탄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삽화 책 <휘네르나메(Hunername)>(16세기)에 실린 ‘셀림의 즉위식’. 책과함께 제공

오스만 제국 술탄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삽화 책 <휘네르나메(Hunername)>(16세기)에 실린 ‘셀림의 즉위식’. 책과함께 제공

500년 동안 33개국을 지배한 제국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역로 독점
지중해서 밀려난 스페인은 오스만을 피해 아메리카로 갔다

오스만 제국 전역에서 통용되던 문구 하나는 “왕자들 사이에는 친족 관계가 없다”이다. 출산, 전투, 질병 때문에 죽음이 흔하던 시절 술탄은 후계자를 최대한 많이 낳으려 했다. 다산이 오스만 혈통과 제국의 지속을 보장하는 방안이라 여겼다. 왕자들은 왕좌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우선 제국의 지역 총독으로 일하며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술탄이 되지 못하면 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됐다. 잔혹함의 측면에서 조선의 ‘왕자의 난’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왕자들은 서바이벌 게임에 오디션 게임을 더한 경쟁 과정에서 ‘형제 살해 참극’을 저질렀다.

셀림(1470~1520)의 등극 과정엔 피비린내가 더 진동했다. 셀림은 ‘잠재적인 계승자’일 때 현직 술탄인 아버지 바예지트를 폐위시켰다. 아버지 뜻을 무시하고 배다른 형제 두 명도 죽였다. 산 자와 죽은 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처형된 자의 잘린 머리를 걷어차곤 했다. 후대 역사에서 그는 ‘피비린내 나는 폭군’, ‘전쟁광’이란 말로도 규정됐다. 잔혹한 왕좌의 게임은 후대에 반복됐다. 아버지의 할아버지 폐위가 영향을 끼쳤을까. 셀림 아들 술레이만은 자신의 아들 무스타파를 교살한다.

책은 오스만 제국의 최강 군주 셀림에 관한 이야기면서 수정주의적 논거를 제시하는 역사서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 교수인 앨런 미카일은 셀림 일대기를 중심으로 당대 역사와 정세 분석을 전하며 생소하면서도 파격적이며 논쟁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오스만 제국이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오스만 제국의 세계적 영향력으로 근대가 열렸다는 게 요지다. 저자는 “오스만 제국이야말로 유럽인이 아메리카로 가게 만든 결정적 이유”라고 말한다. 제국은 동양으로 가는 무역로를 독점했다. 군사력도 막강했다. 지중해에서 밀려난 스페인은 서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오스만 제국의 서진이 일으킨 반작용이 유럽인의 서진이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1492년 서쪽으로 향하다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콜럼버스는 동방 정복, 기독교 대 이슬람 사이 아마겟돈(대쟁투)의 승리를 열망했다. 제국에 막힌 동쪽을 우회해 서쪽 바닷길로 인도로 가 제국 동쪽을 공격해 예루살렘을 정복하려 했다.

오스만 제국 술탄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삽화 책 <휘네르나메(Hunername)>(16세기)에 실린 ‘과녁을 맞히는 셀림’. 책과함께 제공

오스만 제국 술탄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삽화 책 <휘네르나메(Hunername)>(16세기)에 실린 ‘과녁을 맞히는 셀림’. 책과함께 제공

“오스만 우위 부정하는 역사 오류”
폭군 군주의 그림자도 살피면서
저자는 논쟁적인 주장을 편다


그 복수욕을 잔인하게 담은 지명이 ‘마타모로스(matamoros)’다. 미국 텍사스와 멕시코 사이 리오그란데강이 멕시코만으로 흘러드는 지점 이름이다. ‘마타’는 ‘죽이다’, ‘모로스’는 ‘무어’를 뜻한다. 스페인 기독교인이 무슬림을 경멸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즉 ‘무어인을 죽이는 사람’이다. 711~1492년 스페인 대부분 지역은 무슬림 통치를 받았다. 피지배의 기억이 증오의 악순환을 불러일으켰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무슬림으로 여겼다. 스페인은 1513년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신의 종이 돼라’는 이슬람의 ‘지하드’(성전) 개념을 빌려 복종 요구와 항복 권고를 담은 ‘필수 요건’을 만들었는데, 이를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죽음의 책임을 당사자로 돌리는 데 활용했다. 무슬림 세상을 폭력으로 진압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메리카 토착민을 무력으로 제압한 역사와 연결된다. 저자는 현재 ‘이슬람은 곧 테러리스트’로 여기는 비합리적 판타지와 차별 같은 문제도 함께 들여다본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제국이 근대를 열어젖힌 근거로 나온다. 오스만과의 전쟁 수행을 위해 신성로마제국이 개신교 군주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루터 파멸 계획을 미루면서 종교개혁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인들이 1453년부터 1800년대까지 33개국을 지배하며 세상의 정치, 경제, 전쟁의 중심지로 군림한, 로마제국 규모에 근접한 오스만 제국을 잘 모른다고 지적한다. 지난 500년 역사를 ‘서양의 부상(浮上)’으로 여기는데, 1500년이나 1600년에도 ‘서양’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18~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오스만 우위 역사를 부정하고, 콜럼버스 시대까지 소급해 유럽 우위를 내세운 역사는 오류라며 자신의 수정주의적 역사를 제시한다.

오늘날 세계를 만든 게 오스만 제국이라면, 그 제국을 만든 게 셀림이라는 게 저자의 규정이다. 석유 다음으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커피의 전파도 근거 중 하나다. 셀림의 군대는 1517년 예멘에서 ‘기이하고 선명한 붉은색의 열매’를 발견했다. 1580년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제국 국경 너머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맛본다. 저자는 커피가 세계로 퍼져간 게 셀림이 구세계에 구축한 상업·정치·문화·제도적 관계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오스만 제국은 1510년대 후반부터 1730년대까지 세계 커피 무역을 지배했다.

폭력과 지배, 군주정 등을 정당화하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셀림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드리운 그림자도 살핀다. 에르도안은 셀림 유산을 홍보하는 데 막대한 돈을 쓴다.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 정치인들은 2016년 개통한 보스포루스 해협 다리에 ‘정복왕 술탄 셀림 다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1514년 셀림에게 4만명이 학살당한 아나톨리아 시아파 교도의 후예인 터키의 알레비가 반발했지만 무시했다. 셀림이 무자비하게 적을 제거한 것처럼 에르도안도 터키의 알레비, 좌파, 지식인, 선출 공직자, 기독교인 등을 상대로 비슷한 패권의 길을 추구한다고 지적한다. 다리 작명을 두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남부 연합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마주했을 때 경험한 것과 비슷한 세대 간 트라우마, 모욕, 폭력을 조장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를 만든 게 오스만 제국’이라는 논쟁적인 주장을 두고 저자는 방대한 역사 지식과 촘촘한 미시사 서술로 서양 우위 역사에 반론을 제기하며 대안의 역사 관점을 제시한다.

[책과 삶] “세계를 만든 오스만, 오스만을 만든 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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