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혐오는 숨 쉬는 공기속에…직면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다면 위험”

이영경 기자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소설가 한강이 강연을 갖고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소설가 한강이 강연을 갖고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서울국제도서전에서 4년 만에 대중 앞에 나선 소설가 한강
인간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에 서로 연결
막연한 낙관 대신 실낱같은 희망을…살아있는 한 빛을 향해가며 싸워야
글 쓰는 것이 나의 할일…다음 작품 집필 중

“혐오는 아주 가까이 있어요. 숨쉬는 공기 속에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요즘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절망할 때도 많아요. 하지만 공기 속에 흐르고 있는 혐오를 직면하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면 혐오와 절멸은 이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오랜만에 독자들 앞에 섰다. 4일 서울국제도서전이 진행중인 서울 코엑스에서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 만남’을 주제로 강연했다.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구절에서 주인공 경하가 제주 4·3 당시 젖먹이 아기도 죽였냐고 질문하자 인선이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라고 대답하는 구절을 인용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강이 대중 앞에 선 것은 2019년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이후 처음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에 이어 펴낸 장편소설로 제주 4·3사건을 다루며 국가 폭력의 잔학성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어린 시절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사진첩을 보면서 인간에 대해서 많은 수수께끼를 가졌어요. 인간은 어떤 존재이길래 이런 폭력을 저지르고, 동시에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자를 돕기 위해) 헌혈을 할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한강은 “어린 시절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를 읽으면서 (백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신대륙에서 학살하고 절멸시키려는 시도를 했는지 알게 됐다. 그땐 인간이 무섭다, 그런데 나는 인간에 속해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근원적 공포와 의문으로 남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열린 강연에서 소설가 한강(왼쪽)이 문학평론가 허희의 질문을 듣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열린 강연에서 소설가 한강(왼쪽)이 문학평론가 허희의 질문을 듣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같은 의문에 대한 답인 셈이다. 한강은 그 답을 ‘사랑’에서 찾았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책”이라며 “어떤 고통은 지극한 사랑을 증거한다. 또는 지극한 사랑에서 고통이 스며나온다. 사랑과 고통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를 쓴 후 후유증을 겪었던 한강은 “독자들도 책을 읽고나서 내가 느낀 고통을 느꼈다고 했다. 왜 우리는 이런 고통을 겪을까. 결국 사랑 때문이 아닐까. 인간을 믿고 사랑하니까 무너져내리고 찢기는 아픔을 느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다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기 때문에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를 통해서 아주 깊이 내려가서 뭔가를 말하면, 읽는 사람이 같이 깊이 내려와서 읽어준다고 믿어요. 그 믿음이 없다면 쓸 수가 없고 문학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연결될 수도 없고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은 해외로 번역돼 세계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오는 가을 노르웨이 출간을 시작으로 해외 각국에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소년이 온다>의 영문판 제목은 <Human Acts>이며,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강은 “처음엔 영문 제목이 ‘I do not be farewelled’가 될거라 생각했는데 번역가가 ‘We do not part’를 제안했다. 작별하다는 말은 한국에선 정말로 헤어진다는 뜻도 있고, 작별을 내 의지로 짓는다는 뜻도 있다. 영어엔 두 의미가 동시에 들어간 단어가 없다고 한다”며 “‘We do not part’라고 하면 우리가 정말 헤어지지 않는다는 강렬한 상태는 남는 것이어서 그 제목으로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은 “국내외 독자들의 차이점도 있긴 한데 공통된 반응이 있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저는 저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간 것인데, 소설이 (독자들과) 연결해주어서 언어나 국가·문화·민족 등 모든 것을 건너가서 만나게 된다는게 신비하다”고 말했다.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강연을 가진 소설가 한강이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강연을 가진 소설가 한강이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한강의 소설엔 기울여쓴 ‘이탤릭체’가 자주 등장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강은 “정자체로 담을 수 없는 다른 의미가 담긴다고 생각한다. 글자를 기울여 놓으면, 속력도 좀 느려진다. 그걸 쓸 때도 제 마음을 좀더 눌러서 썼다. 독자가 읽을 때도 그 문장에 좀더 머무르면서 감정의 밀도를 조금 더 높여서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강은 2022 서울국제도서전 주제인 ‘반걸음’에 대해서도 말했다. 한강은 “우리가 한 걸음을 이야기하기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아무것도 낙관할 수 없는 지금을 살고 있는데 무책임하게 한 걸음 이야기하는게 아니고, 애써서 차마 한 걸음이 되지 못하는 반걸음을 내딛어보자고 하는 것 같아서 정직하고도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강은 현재 다음 소설을 집필 중이다. “세상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힘들 땐 어떻게 힘을 내서 글을 쓰냐”는 독자의 질문에 한강은 답했다.

“답이 없다 생각할 때도 있고 우울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막연한 낙관은 갖고 있지 않은데 실낱같은 희망은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한은, 생명은 언제나 빛을 원하니까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싸우면서 기어가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하겠어요. 저는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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