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ㅋ’과 ‘ㅋㅋㅋㅋㅋ’은 왜 다를까? 미묘한 말맛 살려낸 ‘인터넷 언어 혁신’

김지혜 기자

인터넷 때문에

그레천 매컬러 지음·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 448쪽 | 1만9000원

[책과 삶]‘ㅋ’과 ‘ㅋㅋㅋㅋㅋ’은 왜 다를까? 미묘한 말맛 살려낸 ‘인터넷 언어 혁신’

‘넵병(病)’이란 신조어가 화제가 된 적 있다. 메신저에서 상사의 지시에 하나같이 ‘넵’이라고 답장하는 직장인들의 상황을 빗댄 말이다. 건조한 뉘앙스의 ‘네’ 대신, 짧게 끊는 발음인 ‘넵’에서는 의욕이 읽히기 때문에 선호된다는 분석이 공감을 샀다. 반면 ‘네...’라고 말줄임표를 붙이는 경우 은근히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읽힌다거나, 땀을 뜻하는 세미콜론을 더한 ‘네;’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한글 맞춤법을 따르는 책에서라면 다 같은 ‘네.’로 쓰일 테지만, 메신저와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는 문자를 쓰는 사람의 어조와 표정을 실시간으로 짐작하게 하는 다양한 표현의 변주가 가능하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의 언어학적 관습과 변화에 주목해온 캐나다 언어학자 그레천 매컬러는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언어의 여러 형태가 중요한 것은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언어가 글자로 적힌 적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에도 “넵” 혹은 “넹”이라고 말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들은 ‘표준어’만을 문헌에 남기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대부분 기록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표준어에 눌렸던 비격식 문어들, 인터넷 세상으로 뛰쳐나오다

[책과 삶]‘ㅋ’과 ‘ㅋㅋㅋㅋㅋ’은 왜 다를까? 미묘한 말맛 살려낸 ‘인터넷 언어 혁신’

매컬러는 <인터넷 때문에>를 통해 인터넷 상용화와 함께 혁신적으로 변화한 우리의 언어생활에 주목한다. 과거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글을 쓰기보다 읽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평범한 사람들도 모바일 기기를 통해 문자메시지와 채팅·인터넷 게시물 등 글을 폭발적으로 쏟아낸다. 글이란 응당 공적인 출간을 염두에 둔 ‘격식 문어’로 쓰인다는 옛날의 합의는 깨졌다. 대신 편지·엽서·일기 등 사적인 매체에 꼭꼭 숨겨져 있던 ‘비격식 문어’들이 인터넷 세상으로 온통 뛰쳐나왔다.

인터넷에 모인 40억명의 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표기법 같은 게 아니었다. 이들은 글에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말하는 방식까지 담아내길 바랐다. 구어 특유의 미묘한 느낌을 문어에서도 표현하길 원했다. 무미건조한 활자에 생생한 목소리와 몸짓을 불어넣고자 했다. 오래도록 공기 중을 떠돌던 ‘넵’이 마침내 활자화된 배경에는 구어의 관습을 비격식 문어에 녹이고자 하는 언중의 욕망이 있었다.

<인터넷 때문에>는 ‘인터넷 언어가 국어를 파괴한다’는 익숙한 논리에 반기를 단호히 드는 책이다. 저자는 “ ‘표준어’와 ‘정확한’ 철자법은 영원한 진실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모든 언어와 방언은 한 종(種)으로서 인류가 타고난, 놀라운 인간 언어능력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표기와 문장 부호의 활용, ‘이모지(絵文字, emoji)’와 ‘밈(meme)’과 같은 이미지 사용 등 인터넷 언어의 변화에는 인간이 이룬 최신의 언어적 혁신이 담겨 있다. 더 가깝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언어 파괴’로 단정지을 순 없는 것이다.

‘lol’과 ‘ㅋ’에 수동 공격과 비웃음의 의미가 깃든 이유

저자는 인간 언어 능력의 ‘최신판’이라 볼 수 있는 비격식 문어의 폭발적 증가를 ‘인터넷 민족 연대기’를 통해 설명한다.

저자가 ‘오래된 인터넷 민족’이라 칭한 1990년대 중반 이전 1세대 인터넷 사용자들부터 돌아보자. 이들은 인터넷을 사회의 기존 규칙들이 꼭 적용되지 않아도 괜찮은 배타적 공간으로 여겼다. 이때 ‘lol(laughing out loud, 크게 웃음)’과 같은 새로운 약어가 다수 탄생했다. 1990년대 초반 한국 PC 통신 사용자들 역시 ‘고딩’ ‘번개’ ‘왕따’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화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상황은 달라졌다. 이 시기 처음으로 온라인에 접속한 ‘온전한 인터넷 민족’에게 인터넷은 배타적 공간이 아닌 “사회생활” 그 자체였다.

이들은 지역·학교·직장에서의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MSN 메신저 등의 인스턴트 메시지와 마이스페이스 같은 최초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을 사용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버디버디와 싸이월드 붐이 불었던 것을 떠올려보자.

이들은 앞 세대와 달리 “의사소통 방법을 발명하려는 게 아니었다”. 평소 친구·동료·연인과 나누던 대화를 온라인에서도 구현하고 싶어했을 뿐이다. 이들은 “인간사의 평범한 드라마들을 전달하기 위해 비격식 문어를 활용”했다. 저자는 이들 덕분에 “비격식 문어는 인간 감정의 모든 영역을 깊이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ㅋ의 개수에 따른 의미의 변화. tvN <코미디 빅리그> 캡처

ㅋ의 개수에 따른 의미의 변화. tvN <코미디 빅리그> 캡처

예컨대 앞서 단순히 ‘크게 웃음’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lol은 ‘온전한 인터넷 민족’을 거치면서 의미가 다양하게 변화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lol’을 웃음을 동반하지 않는 보통의 즐거움이나 반어적 의미를 담은 가짜 즐거움, 심지어 수동적 공격성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 생활에서도 웃음은 그렇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현실 대화에서도 “웃음의 10~20%만이 실제 유머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분위기를 맞추거나 비꼬기 위해서도 우리는 웃는다. 최근의 한국 인터넷 사용자들이 ‘ㅋ’을 비웃음으로, ‘ㅋㅋ’은 대화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로, ‘ㅋㅋㅋㅋㅋㅋㅋㅋ’는 폭소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웃음에 담긴 복잡미묘한 차이들까지 글에 담고 싶어한다.

저자는 이를 “활자로 표현된 어조”라 규정한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표기 변형, 문장 부호 활용을 통해 직관적이면서도 빠르게 활자에 어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이로 인해 때때로 “언어 기준이 오프라인 세상에 맞춰져 있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 사이의 갈등 혹은 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휴먼아재체’에는 왜 마침표와 쉼표가 많을까?

저자는 뒤늦게 온라인 세상에 뛰어든 사람들을 ‘인터넷 이전 민족’이라 부른다. 주로 노년층으로 구성된 이들 역시 비격식 문어에 구어의 특징을 반영하고 싶어하는데, 일례로 ‘발화와 다음 발화의 구분’ 즉 말과 말 사이의 쉼을 표현하고자 한다. ‘온전한 인터넷 민족’ 이후 세대들에게 이것은 ‘행갈이’로 구현된다. 그러나 엽서와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비격식 문어를 사용했던 ‘인터넷 이전 민족’들에겐 행갈이가 아닌 ‘점을 잇달아 쓰는 방법’이 익숙하다.

인터넷에서 유행한 ‘휴먼아재체’의 표본.

인터넷에서 유행한 ‘휴먼아재체’의 표본.

“옛날에... 부잣집은... 전부 다 쌀하고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거든...” 한국에서도 단어 사이마다 마침표 혹은 쉼표를 연달아 찍는 이 같은 표기를 ‘휴먼아재체’라고 칭할 정도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발화 사이는 행갈이로 충분히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 이들의 ‘과잉된 점’은 의미 불명으로 다가온다. 교수가 아무 생각 없이 보낸 “오늘... 시간 있니...?” 같은 문자메시지에서 학생은 숨겨진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공포에 떨 수도 있는 것이다.

활자에 부호·이모지·밈을 더하면 생생한 목소리와 몸짓이 된다

의사 소통에서 내용과 어조의 전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신체다. 우리는 울고 웃고 화내고, 고개와 손과 발을 젓거나 움직이며 이야기한다. 애초에 “글은 언어에서 몸을 제거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 비격식 문어는, 글에 빼앗긴 신체를 돌려준다. 바로 ‘이모지’란 가상의 몸을 통해서다.

일본어 에(絵, 그림)와 모지(文字, 문자)의 합성어인 이모지는 일본 문자메시지에서 시작돼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그림 문자를 말한다. 이모지는 비격식 의사소통에서 너무도 중요한, 몸짓의 기능을 수행한다. 평화의 브이(V)나, 엄지척, 눈알 굴리기, 윙크와 같은 ‘엠블럼(emblem, 상징물) 몸짓’뿐만 아니라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와 꽃다발 등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설명적 몸짓’까지 표현할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모지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모지들

메신저 등에서 우리는 흔히 ‘♥♥♥♥’처럼 이모지를 연달아 사용하는데, 저자는 여기서 비격식 문어에 신체를 돌려주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본다. 일상에서 우리는 손을 여러 번 흔들고, 고개를 여러 번 젓는다. 말과 달리 동작은 쉽게 반복된다. 이모지가 반복 사용되는 이유는 이모지가 언어가 아닌 신체를 담고자 하기 때문이다. 메신저에서 대화를 끝내고 싶을 때 글 대신 이모지 혹은 이모티콘을 보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여기에서 당신 말을 듣고 이해했다’라고 신체의 공간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글이란 지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를 더 잘 듣는 방식”이다. 인터넷 시대, 우리는 이제 글에 목소리와 신체를 실어 보낸다. 나의 정체성을 담고, 너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터넷에 혐오의 언어만 팽배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는 인터넷 언어를 통해 “권력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 글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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