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난 왜 아프게 태어났어?”···삼성반도체 노동자 아이들의 물음에 답하다

이영경 기자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희정 글·반올림 기획·정택용 사진|오월의봄|1만8500원|376쪽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은 근무기간 유해물질에 노출된 결과 선천성 질환을 가진 자녀들을 낳았다. 이들은 2세 질환 직업병 인정을 위해 산재신청을 했다. 그림 조재석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은 근무기간 유해물질에 노출된 결과 선천성 질환을 가진 자녀들을 낳았다. 이들은 2세 질환 직업병 인정을 위해 산재신청을 했다. 그림 조재석

고 황유미씨 싸움으로 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인정
‘2세 질환 직업병’은 이야기조차 되지 못했다
선천성 식도폐쇄증·선천성 거대결정·콩팥무발생증···
‘태아 때부터 아픈’ 자녀 질환 문제 드러나기까지 오래 결려

임산부 잘못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시댁은 몰라야’ 했다
이슈화되지 않았던 생식독성···일터의 젠더격차·노동자 재생산권 등
‘문제’시 되지 않은 문제들
2020년 첫 태아산재 판결, 2021년 태아산재법 통과···이제 누군가 답해야 한다


이혜주씨(가명)는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디퓨전(확산) 공정에서 오퍼레이터로 12년을 일했다. 디퓨전 공정에선 열처리 작업을 주로 하기에 고온 기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후끈한 열기 속에서 런 박스(웨이퍼가 담긴 박스)를 하루에 200개씩 들고 날랐다. 클린룸에선 약품 냄새와 탄내가 났다. 4년이 넘어서자 단순 작업이 지겨워졌다. 과감히 퇴사했다. 20대 중반의 ‘어중간한’ 나이에 구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삼성반도체에서 재입사 사원을 뽑는다는 말에 원서를 냈다. 이제 세상물정을 조금 알았다. 다시 일한 지 4년째 되던 2007년 혜주씨는 임신을 했다. 예전에 임신 여성은 곧 퇴사해야 했지만, 혜주씨는 버텼다. 태아 검진에서 한쪽 신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아이는 모유를 삼키지 못하고 다 게워냈다. 신장 한쪽이 없다는 판정과 함께 선천성 식도폐쇄증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정미선씨(가명)는 임신 7주에 퇴사를 했다.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과 온양사업장에서 8년을 근무한 뒤였다. 패키지 칩을 까맣게 입히는 몰드 라인에서 일했다. 까만 먼지 속에서 분진용 마스크도 없이 일했다. 180도가 넘는 온도에서 에폭시 수지를 녹여서 칩을 몰딩하는 일이었다. 냄새와 열기가 심했다. 태아의 주요 장기가 형성되는 임신 초기에 유해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아들은 태어난 지 3일째 얼굴이 노래졌다. 변을 보지 못했다. 선천성 거대결장이었다. 장운동을 하지 못해 결장 끝부분이 거대해지는 병이다. 서울대병원에서 기능을 멈추고 시멘트처럼 굳은 장을 거의 들어냈다. 미선씨도 갑상선암, 류머티즘, 뇌전증 진단을 받았고 자궁경부 이형성증 절제 수술을 받았다.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일한 김수정씨(가명)는 임신 4개월차 산부인과 초음파검사에서 “태아의 신장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소변이 역류해 백일잔치보다 요관 수술을 먼저 했다. 콩팥무발생증과 방광요관역류증, IgA신증 진단을 받았다. IgA신증은 신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병으로 10만명 중 2명이 걸린다는 희귀질환이다. 수정씨는 클린룸에서 맡은 독한 냄새를 떠올렸다. 후끈거리는 열기, 늘상 달고 다니던 두통과 가려움증도 떠올랐다. 수정씨는 11년7개월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12년을 일한 이혜주씨(가명)의 아들 김지윤씨(가명)는 선천성 식도폐쇄증과 콩팥무발생증을 앓았다. 오월의봄 제공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12년을 일한 이혜주씨(가명)의 아들 김지윤씨(가명)는 선천성 식도폐쇄증과 콩팥무발생증을 앓았다. 오월의봄 제공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쓰였다. 아직 사회와 기업이 인정하지 않은 문제,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이 아픈 자녀를 둔 이유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묻기 위한 책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는 2007년 스물 셋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됐다. 2014년 황씨가 산재로 사망했다는 걸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2018년 삼성전자는 사과와 함께 보상을 약속했다. 전·현직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질환 보상제도가 마련됐고, 2022년 2월까지 87명이 직업병을 인정받았다.

문제는 일단락된 것일까? 아니다. 노동자가 죽고 아픈 일들이 인정되기 시작하자 아직 이야기조차 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드러났다. 뇌종양, 심장질환, 선천성 구순기형, 선천성 거대결장, 재생불량성 빈혈, 면역결핍증후군…. 20대 초반에 입사한 노동자들이 결혼하고 임신·출산을 하면서 자녀들이 심각한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았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2021년 5월 이혜주, 정미선씨, 김수정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급여 수급인은 모두 자녀들이었다.

“신청인은 생식독성물질 수십 종이 사용되는 클린룸에서 마스크 생산 업무를 담당하면서 업무 과정에서 해당 물질들에 노출되었고, 또 장시간 근무, 중량물 취급 및 이동 작업, 야간 교대근무, 직무 스트레스 등 생식 보건 건강 영향이 있는 여러 유해인자에 노출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닥친 신체 기관 손상과 장해는 반도체 업무에 기인한 건강손상이라고 인과관계를 추정해보기에 충분합니다.” 김수정씨의 재해발생경위서엔 이렇게 쓰였다.

정미선씨(가명)는 8년간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과 온양사업장에서 일하다 갑산성암, 류머티즘, 뇌전증, 자궁경부 이형성증 등의 진단을 받았따. 아들 박동진씨(가명)는 선천성거대결장증으로 대장 전체를 제거해야 했다. 사진은 미선씨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한 삼성반도체 클린룸에서 일하던 시절의 모습. 오월의봄 제공

정미선씨(가명)는 8년간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과 온양사업장에서 일하다 갑산성암, 류머티즘, 뇌전증, 자궁경부 이형성증 등의 진단을 받았따. 아들 박동진씨(가명)는 선천성거대결장증으로 대장 전체를 제거해야 했다. 사진은 미선씨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한 삼성반도체 클린룸에서 일하던 시절의 모습. 오월의봄 제공

국내에는 고용노동부가 정한 44개 생식독성물질이 있다. 톨루엔, 일산화탄소, 노말-핵산, 니트로벤젠, 이황산탄소 등이다. 유럽연합에서는 381종, 캐나다는 164종의 물질을 생식독성물질로 지정해 관리한다.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되면 유산·난임·선천성 질환을 지닌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 물질에 노출된 가임기 여성이 국내에 최소 10만여명이다. 그러나 생식독성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노동자는 20%에 불과하다.

생식독성물질에 대한 정보 부족, 아이의 선천성 질병이나 기형을 손쉽게 ‘임산부 잘못’으로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 말하기 힘들게 한다. 반올림에 자녀 질환 문제를 제보하면서 많은 이들이 했던 말이 “시댁은 모르게 해달라” “사람들이 이런 거 몰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반도체 노동자 2세 질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은 근무기간 유해물질에 노출된 결과 선천성 질환을 가진 자녀들을 낳았다. 이들은 2세 질환 직업병 인정을 위해 산재신청을 했다. 그림 조재석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은 근무기간 유해물질에 노출된 결과 선천성 질환을 가진 자녀들을 낳았다. 이들은 2세 질환 직업병 인정을 위해 산재신청을 했다. 그림 조재석

삼성반도체 공장에도 유해물질 관련 정보가 있었지만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됐다. 1990년대 후반 삼성반도체 공장에선 50여종의 물질을 적은 이른바 ‘환경수첩’을 엔지니어에게 배포했다. 발암물질 6종, 자극성 위험물질 40여종이 있었다. 오퍼레이터 수만명은 환경수첩의 존재조차 몰랐다. 말단 생산직 오퍼레이터는 주로 고졸 여성, 설비를 다루는 엔지니어는 주로 초대졸·고졸 남성이다. 오퍼레이터들도 화학물질을 직접 다뤘다. 황유미씨는 불산이 담긴 통에 반도체 칩을 담갔다 빼는 ‘퐁당퐁당’ 작업을 하다 백혈병에 걸렸다. 누출된 유해물질을 닦아 뒤처리하는 사람도 오퍼레이터다. 하지만 “위험물질에 대한 위계적인 정보 제공”이 이뤄졌다.

2세 질환을 처음 직업병으로 인정한 것은 제주의료원 사건이다. 2020년 대법원이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의 2세 질환이 직업병이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2009년 즈음 제주의료원 간호사 중 4명이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고, 5명은 유산했다. 이들은 만성적 인력부족으로 한 달에 10~15일 야근을 했고, 항암제 같은 독한 약품을 하루에 200정씩 가루로 빻는 일을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신부에게 사용을 금지한 약 50여종이 포함돼 있었다. 대법원은 “태아에게 일어난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를 계기로 2세 질환 직업병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일명 ‘태아산재법’이라 불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적용 대상을 ‘임신한 근로자’로 한정해 남성 노동자를 배제했다는 한계점을 안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삼성전자의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책과 삶] “난 왜 아프게 태어났어?”···삼성반도체 노동자 아이들의 물음에 답하다

남성 노동자의 아이도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최현철씨(가명)는 삼성전자 LCD사업부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동료들은 화학약품을 다루며 ‘고자’된다는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현철씨의 아들은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발달이 느렸다. 태아 발달기에 발생한 기형이 여러 장기에서 나타나는 ‘차지증후군’이었다. “제가 어머니였다면, 회사를 더 일찍 의심했겠죠.” 현철씨는 국내 최초로 남성 노동자에 대한 자녀 질환 직업병 문제를 제기하고 산재 신청을 했다.

과학적으로는 정자가 난자보다 더 외부요인에 의한 영향을 받을 위험이 크다. 여성은 평생 쓸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고, 세포분열도 다 된 상태지만, 정자는 정소에서 막 만들어지기 시작해 성숙한 정자가 되는 데 3개월이 걸린다. 세포분열이 시작되는 시기 화학물질에 노출된다면, 세포 변화가 올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산재는 중공업 같은 위험한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됐다. 2017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여성의 산재 인정률은 36.5%로 남성 46.8%에 비해 낮았다. 산재인정 과정에서 성별격차가 드러난 것이다. 정부는 임신노동자가 13개 분야 업무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업주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독일 등 외국에선 임신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사업주에게 통보해야 한다. 이제 여성 노동자와 태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담당자는 사업주가 된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싸움은 산재의 새로운 서사를 써냈다. 20대 여성 노동자가 무결한 ‘클린룸’에서 병에 걸린 이야기는 여성 노동자의 직업병을 가시화했다.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노동자의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로 확장된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 임신이나 출산 등 자신의 생애주기에 적합한 노동을 할 권리, 출생률과 생산력을 위한 도구로 쓰이지 않을 권리 등이다. 여성 노동자의 임신과 출산, 건강권 문제가 가시화되는 계기가 됐다. 조승규 반올림 노무사는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는 여성 노동의 문제, 재생산권의 문제, 질환과 장애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기록노동자’ 희정은 개인적이면서도 복잡하고 구조적인 이야기를 당사자들과 전문가들, 해외 사례 등을 두루 살피며 섬세하게 짚어간다. 당사자들을 그저 ‘불행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고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지닌 입체적 존재로 드러낸다. 2세 질환 직업병 문제가 한국 사회의 성차별적인 노동구조,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로 확산되어 나갈 때, 이 문제의 중요성이 서서히 부각된다. ‘문제’는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사람이 있기에 드러난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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