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엔 참여문학 없는데”…“서로 상상력 교환”

한윤정 기자

리베라시옹 기자, 송경동·심보선·진은영 등 참여시인 인터뷰

프랑스의 진보신문 리베라시옹이 우리 시단의 사회참여를 이끈 송경동, 심보선, 진은영 시인을 18일 인터뷰했다. 한국문학번역원 초청으로 한국에 온 리베라시옹 아시아 담당기자인 아노 볼르랭은 “프랑스에는 더 이상 참여문학이 없다. 시가 어떤 방식으로 진보운동에 기여하는지 궁금하다”면서 이들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리베라시옹은 1968년 일어난 ‘68혁명’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활동가들이 1973년에 창간한 진보 매체다.

부산 한진중공업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크레인 농성 당시 희망버스 운동을 제안하고 주도했던 송경동 시인은 “제국주의 침략과 일제 지배를 받으면서 시작된 한국 근대문학은 처음부터 참여적 성격이 강했다. 그후 분단과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민족·민중·노동문학이 등장했고, 최근 신자유주의가 심화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참여문학이 활발해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비정규직 900만명을 만들었다”면서 “시인을 떠나서 시민 입장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운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인 송경동, 심보선, 진은영씨(오른쪽부터)가 프랑스 리베라시옹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시인 송경동, 심보선, 진은영씨(오른쪽부터)가 프랑스 리베라시옹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심보선 시인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유연화가 어떤 식으로 삶을 파괴하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마음에 분노를 심으며 삶을 생계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공감과 연대, 나아가 가장 중요한 상상력이 파괴된다”면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서, 사람 사이의 공감을 끌어내고 사회와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복원하기 위해서 시적인 것이 자연스럽게 요청된다”고 말했다.

진은영 시인은 자신이 노동시, 참여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털어놓았다. “대학에 들어가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를 읽으면서 하루 몇천원의 임금을 받고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는 고통을 감내하는 노동자들의 세계를 알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캠퍼스에서 전투적 학생운동이 약화됐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젊은 시인들이 광범위하게 모이고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심보선 시인과 자신은 “(노동자 시인) 송경동의 수족”(웃음)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작가나 지식인이 노동자를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영향력 아래서 상상력을 교환하고 우정과 연대가 강화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 시인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작가나 지식인들이 느낀 건 한국사회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었다”며 “노무현이라는 영웅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용산 철거민 6명의 죽음에는 왜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용산사태 이후로도 신촌 두리반, 명동 마리 등 기존 영세상가의 철거 반대 투쟁이 이어졌는데 이때는 도심 재개발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기였다”고 밝혔다. 그는 “신자유주의 저항운동의 핵심은 잃어버린 것,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상상력이다. 개인이 희망버스를 타거나 시위현장에 갈 때도 상상력이 필요하다”면서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시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진보운동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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