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아토포스’낸 진은영 시인 “고통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문학의 정치’ 필요”

김여란 기자

용산참사·4대강·한진중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겪은 미학에의 성찰

시는, 예술은 어떻게 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잔혹한 세계에 시의 미약한 목소리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6년간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의 시와 삶으로 탐구하며 답을 찾으려 애써왔던 시인 진은영(44)의 섬세하고 끈질긴 기록이 책 <문학의 아토포스>(그린비)로 발간됐다.

2008년 우리 문단에 문학과 정치, 우리 사회에서 문학의 자리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진씨가 계간 ‘창비’에 랑시에르의 미학 이론을 다룬 글 ‘감각적인 것의 분배’를 기고하면서부터였다. 2000년 등단하고서도 그때까지 다른 시인들과 교류 없이 지내던 수줍은 진씨가 밖으로 나올 만큼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용산참사와 4대강, 한진중공업 현장을 목도하며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진씨는 “우리 사회는 고통을 말하는 목소리가 더욱 들리지 않고 부당함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더욱 보이지 않는 장소로 돼가고 있다”며 “기존 정치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가시화함으로써 불일치를 창조하는 문학의 정치가 더 요청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문학의 아토포스’낸 진은영 시인 “고통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문학의 정치’ 필요”

10편의 글이 실린 <문학의 아토포스>는 참여문학 대 순수문학 같은 전형적인 구도를 깬다. 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첨예하게 미학적인 문학에 대한 작가들의 갈구에 대해, 미학적 성취와 정치적 의미 사이의 긴장에 대해, 어떻게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둘 사이의 이음매를 찾으며 문학의 아토포스와 가능성을 넓혀왔던 작가들의 고민을 담았다.

진씨는 “이 책은 확신에 찬 미학적 주장을 피력하고 그 주장의 동조자들을 많이 만드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라며 “동료 작가들과 함께했던 작업, 그리고 그들이 내게 어렴풋이 전하던 여러 생각들을 서기로서 적었다. 미래의 예술가들이 우리의 지난 6년간의 활동에서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얻어서 우리보다 덜 헤매고 더 새롭게 시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토포스(atopos)’는 장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토포스’에서 유래한 말로 ‘비장소성’ 정도로 번역된다. 진씨가 말하는 문학의 아토포스는 “문학적이라고 한번도 규정되지 않은 공간에 흘러들어 그곳을 문학적 공간으로 바꿔 버리는 일”이다. 진씨와 같은 고민과 지향을 가진 작가들에게 문학의 아토포스를 실현하는 곳은 수개월간 시인, 작가, 가수 등이 ‘불킨 낭독회’를 열었던 홍대 두리반, 콜트콜텍 노동자를 위한 수요문화제가 열리던 클럽 ‘빵’,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대한문이었다. 그 같은 공간에 침투하면서 문학과 정치라는 논쟁은 탁상공론을 넘어서 작가들의 실제 미학이자 실천이 됐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후 모든 게 그랬듯이 문학도, 미학도, 작가의 참여도 이 세상 앞에서 힘을 잃은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세월호 관련 집담회에서 한 학생이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거기에는 문학이 없던 것 아니냐’고 물었어요. 이원 시인의 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학은 죽음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하는 것이다. 우리는 곧 그 사건에 대해 잊겠지만 사랑하는 아이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내내 고통받는다. 그 부모들처럼, 그 가족들처럼, 사회가 잊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 손쉬운 애도를 최후까지 지연시키는 일이 문학의 할 일이다.’” 진씨는 이달 말 안산 지역에서 세월호 피해자들의 심리 회복을 돕고 있는 정혜신 박사를 만나 인터뷰하기로 했다. 서울예대가 있는 안산 지역의 작가, 학생과 함께 문학을 매개로 유가족들의 슬픔을 나누는 활동을 해보자는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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