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도 가능하다’던 신념에 답합니다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김창길 기자
ⓒ Alberto Korda, 1960

ⓒ Alberto Korda, 1960

영원한 게릴라·총을 든 의사…
당신을 설명하는 말은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 사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릅니다

미국은 당신을 제거해야 했고
시신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시신이 발견되자
당신을 추모하는 물결이 일었죠


동지에게.

서늘한 바람이 불면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 펜을 들었습니다. 50여년 전 가을, 적군에게 생포된 당신은 재판 한번 받지 못하고 총살당했습니다. 1967년 10월9일 볼리비아의 작은 마을 라이게라였죠. 동지의 존재가 그만큼 두려웠던 겁니다. 방아쇠를 당겼던 하사관 마리오 테란은 6개월 뒤 자신의 집에서 투신했습니다. 그곳에서 하사관을 다시 만났나요? 동지는 분명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을 겁니다. 방아쇠를 당기며 두려움에 떨었던 그 손을요.

동지는 입만 열면 ‘체(che)’라고 하는 말버릇이 있었다죠? 친구를 부를 때 말하는 아르헨티나어 감탄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동료들은 당신을 ‘체 게바라’라고 불렀죠.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이름을 전부 다 발음하기 어렵네요. 역시, ‘체 게바라’가 좋습니다. 멕시코에서 혁명동지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을 즈음부터 그런 애칭이 따라다녔죠. 한국말로 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요? “어이, 게바라 동지!”

게바라 동지를 설명하는 말들이 다양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 1960년 동지를 만났던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당신을 그렇게 말했다죠. 헛소리를 할 양반은 아닙니다. 사르트르는 당시 <변증법>이란 책을 통해 역사의 주체로서 인간을 피력했습니다. ‘융화 집단’이라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사고는 동지의 철학과 뜻을 같이합니다. 동지는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며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습니다. 약한 자들의 ‘대항 폭력’을 용인했다는 점도 서로 비슷합니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실천하고 있는 인간을 대서양 건너 남미 대륙에서 발견했던 것이겠죠.

동지 사후에는 더 많은 말들이 당신을 설명했습니다. 영원한 게릴라, 라틴아메리카의 돈키호테, 유토피아를 꿈꾼 사령관, 총을 든 의사,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리스도…. 맞습니다! 나는 동지의 사진을 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당신의 모습을 본 볼리비아 농민들과 간호사, 수녀들도 그렇게 느꼈답니다.

볼리비아 지역신문 기자 프레디 알보르타가 바예그란데의 병원 세탁장 위에 놓인 당신의 시신을 사진 찍었습니다. 알보르타는 죽은 당신의 모습에서 신성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럴 만했겠죠. 동지, 당신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평전을 쓴 작가 장 코르미에는 갈색이던 당신의 눈빛이 푸른빛으로 변했다더군요. 아쉬웠던 것인가요? 민중을 위한 라틴아메리카를 만들겠다는 못다 이룬 당신의 원대한 계획 말입니다. 쿠바 사회주의 혁명은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첫 단추에 해당했을 겁니다. 동지는 명실상부한 국제주의자였습니다. 쿠바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 영감님 소리 듣는 자리에서 뛰쳐나와 볼리비아의 정글로 잠입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은 살해됐습니다. 동지를 살려뒀다가는 전 세계에서 구명운동이 펼쳐졌을 겁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그 점을 우려했습니다.

“그는 미국에 대항한 전투에서 전 세계의 급진적인 군대를 지휘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이제 그는 죽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그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기자가 전했던 동지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죽음을 전하는 방식은 말보다는 사진이 명확했습니다. 당신의 뜬 눈을 감기지 않은 이유도 동지의 얼굴을 인증하는 사진을 찍기 위했던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세탁장 위 들것에 놓인 당신의 육신은 렘브란트의 그림을 닮았습니다. 톨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모습입니다. 화폭 중앙에 놓인 시신은 죽음의 본보기입니다. 프레디 알보르타가 찍은 당신의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신을 에워싼 학생들이 군인과 기자들로 바뀌었을 뿐이지 구성은 동일합니다. 렘브란트가 인생의 부질없음을 그렸다면 프레디 알보르타는 혁명의 어리석음을 선전하려 찍었던 것이죠.

존 버거는 알보르타의 사진을 안드레야 만테냐가 그린 ‘죽은 그리스도’ 그림과도 비교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만테냐의 그림에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늙은 여인이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겠죠. 비탄에 잠긴 모습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바예그란데 마을의 농민들은 당신이 세상을 떠난 10월8일 밤 촛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은 손사래를 치며 나를 감히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지 말라고 핀잔을 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 얘기를 좀 더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동지의 죽음이 사진을 통해 인증된 이후 당신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볼리비아 군인들이 시신을 불태워버렸다, CIA가 아마존 정글에 내던졌다는 등 소문만 무성했습니다. 2000여년 전, 총독 빌라도 역시 예수의 시신이 사라질까 두려웠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 공개 처형한 것도 모자라 빌라도는 예수의 주검을 동굴 무덤에 넣어 바위로 봉인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죠. 3일 만에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당신의 이미지는 상업화합니다
베레모를 쓴 동지의 사진은
쿠바의 사진기자 작품입니다

그는 당신을 본 순간 강한
에너지를 느꼈다고 했고
그 에너지는
당신의 이미지로 각인됐습니다

동지는 30년 만인 1997년 부활했습니다. 당신은 멀리 있지 않았더군요. 바예그란데 비행장 인근에 당신 시신을 묻은 볼리비아 인부들이 실종됐기 때문에 동지의 무덤을 찾기 힘들었던 것이죠. 동지의 유골은 아르헨티나가 아닌 제2의 조국인 쿠바 산타클라라로 돌아갔습니다. 때마침 전 세계에서 당신을 추모하는 팬덤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영어로 된 자서전만 1997년 한 해에 3권이 출간됐고, 동지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와 머그컵, 술병들이 출시됐습니다. 당신이 꿈꿨던 공산주의가 몰락하자 거칠 것 없는 자본주의는 당신의 이미지를 날름 집어삼켰습니다.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움켜쥘 수 있도록 살균되고 박제된 형태의 상품으로 둔갑한 것이죠. 동지와 함께 볼리비아 정글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프랑스 지식인 레지스 드브레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글항아리)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미지는 무덤에서 밖으로 걸어 나온다고 할 만하다.”

당신의 이미지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별이 박힌 베레모를 쓰고 또 다른 세계를 쳐다보는 듯한 눈빛의 사령관을 찍은 사람은 알베르토 코르다입니다. 코르다 아시죠? 당신의 혁명동지 카스트로의 전속 사진사이자 쿠바 신문 ‘혁명’의 사진기자. 원래 그는 아름다운 여성들을 찍는 패션 사진작가였다죠. 하지만 코르다도 동지처럼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 대열에 참여하기 위해 스튜디오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난의 풍경은 사진가 코르다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인형이 없어 나무토막을 품에 안고 노는 어린아이였습니다. 그가 남겨놓은 사진 중에 2번째로 유명한 사진이 됐죠.

[김창길의 사진공책]‘다른 세상도 가능하다’던 신념에 답합니다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혁명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한 동지의 초상 사진을 찍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코르다는 기억하더군요. 1960년 3월, 벨기에제 무기와 화약을 싫은 화물선 쿠브르호가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했습니다.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의 배후가 CIA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미국은 부인했습니다. 희생자 추모집회가 열렸죠. 코르다는 연단에 오른 카스트로를 사진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순간 당신의 모습이 카메라 렌즈에 들어왔답니다. 동지를 본 순간 코르다는 움칫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동시에 셔터를 눌렀고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에너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강렬했던 동지의 에너지는 당신 사후에 빛을 보게 됩니다. 미국은 당신의 죽음을 인증하려 볼리비아 기자가 찍은 사진을 배포했지만, 혁명 세력들은 7년 전 당신이 쿠바에서 위풍당당하게 찍힌 코르다의 사진을 찾아냈습니다. 이탈리아 출판업자 지안지아코모 펠트리넬리가 알베르토 코르다를 찾아갔습니다. 동지의 기록 <볼리비아 일기>(1967) 표지에 쓸 만한 초상 사진을 찾기 위해서였죠. 원본은 가로 사진이었습니다. 롤필름 전체를 보니 그날의 추모집회에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참석했더군요.

<볼리비아 일기> 이후로 동지의 초상은 수천장씩 인쇄됐습니다. 알고 있었나요? 볼리비아 정글에서 동지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무렵 대서양 건너편 유럽 젊은이들이 당신의 신념을 추종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른 세상도 가능하다’는 당신의 신념 말입니다. 1968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의 대학생과 노동자들은 가히 혁명이라 불릴 만큼 큰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이어갔습니다. 기존 체제를 전복하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전쟁, 여성차별, 인종차별, 권위주의 등 타파해야 할 대상들은 많았습니다. 1968년 서베를린의 베트남전 반대 집회를 기록한 영상을 유튜브로 보았습니다. 영어를 잘 못해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구호가 반복됩니다.

체제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은
구호보다 이 사진을 앞세웁니다
당신의 신념을 따르기에…

당신도 사진찍기를 즐겼다죠
그 사진들을 통해
인간 게바라 동지를 봤습니다

“호, 호, 호찌민! 체, 체, 체 게바라!”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보도블록 아래 해변이 있다! 획기적인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만큼 눈에 띄는 시위 도구는 혁명 동지들의 초상 사진들이었습니다. 코르다가 찍은 당신의 초상 사진이 인쇄된 피켓은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호찌민의 초상들과 함께 시위대 머리 위에서 1968년의 몸부림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제2, 제3의 베트남을 만들자는 동지의 목소리에 공감했던 것입니다. 비록 당신은 이론 따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당신을 따르는 젊은이들은 동지의 게릴라 전술을 이론화했습니다. 독일사회주의학생동맹을 이끈 루디 두치케는 거점을 확보해 해방구로 만드는 동지의 전략 전술을 ‘포코이론’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일부 화끈한 젊은이들은 도시 게릴라전도 펼쳤습니다. 독일에서는 ‘적군파’, 이탈리아에서는 ‘붉은 여단’이라 불리는 도시 게릴라들이었죠.

다른 세상을 꿈꾸었던 1968년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당신 부대의 게릴라였던 레지스 드브레도 미테랑 정부의 자문위원이 됐습니다. 드브레만이 아니었습니다. 군인들 총신에 꽃을 심던 ‘히피’들도 사라졌습니다. 자본주의는 혁명의 잔재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켰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록 스타 짐 모리슨의 눈빛처럼 저항의 이미지를 담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저항은 실천이 아닌 문화상품으로 팔려나갔죠. 동지의 초상을 찍은 코르다는 당신이 꿈꾸던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사진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본은 도가 지나쳤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당신의 초상을 보드카 술병에 붙여 버렸거든요. 분개한 사진작가 코르다와 당신의 가족들은 소송을 걸었죠. 배상금 5만달러는 쿠바 복지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됐습니다.

이미지만이 아닙니다. 동지의 일기도 상품이 됐습니다. 게릴라가 되기 전 청년의 당신이 썼던 일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입니다.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영화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2일간 종주 투어. 6950달러’. 이른바 라틴아메리카판 산티아고 순례길이 여행 상품으로도 팔린다더군요.

며칠 전, 문제의 일기를 읽었습니다만, 제목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였지 중요한 곳은 죄다 히치하이킹을 했더군요. 그리고 동지가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것도 알게 됐습니다. 꽤 많은 사진들이 수록돼 있더군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칠레 나환자촌 산파블로에서 찍은 것입니다. ‘맘보 탱고’라는 명패가 붙은 뗏목 위에서 노를 잡고 있는 동지의 앳된 모습입니다. 힘센 녀석 ‘포데로사’ 오토바이는 온데간데없고 뗏목 유랑민으로 전락한 젊은이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보입니다. 뗏목은 봉사활동을 했던 나환자촌 사람들이 만들어준 선물이었다죠.

그렇습니다. 동지는 한센병을 고친 예수 그리스도는 아니었습니다. 병자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남은 여정을 떠날 수 있는 똑같은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동지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행동했다는 것이겠죠. 1968년 전 세계 청년들이 당신에 열광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청년들은 외쳤습니다.

상상력에 권력을!

동지 대신 내가 대답해보겠습니다.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를 위한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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