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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루만도의 거울, 그리고 응시의 욕망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단편 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민음사)에서 한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발견한 거울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적는다.“거울과 부성(아버지성)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을 사실인 양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백과사전에는 적혀 있으나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크바르’라는 지역의 한 이교도 창시자의 말이다. 거울은 대상을 반영하여, 부성은 닮은 생명체를 낳기에 닮은 무언가를 증식시킨다. 우리는 이교도 창시자가 말한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는” 장치에 하나를 더 추가해 백과사전에 첨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카메라의 눈이다. 오는 5월 19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되는 일본 작가 도쿄 루만도(Tokyo Rumando)의 전시는 바로 거울과 카메라라는 장치를 이용한 사진전이다. 서울은 후암동의 KP갤러리에서, 부산은 아트스페이스 이신에서 열... -
41.6%…고독한 혹은 고립된
숫자가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1인 가구가 그렇다. 지난해 12월에 집계된 1인 가구의 비율은 41.6%다. 과반은 못되지만, 셋 중 하나꼴이니 화두로 삼을 만한 숫자다.<41.6% 1인가구>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초상들을 보여주는 전시다. 강홍구, 김흥구, 최형락 등 9명의 사진작가가 참여했다. 같은 주제의 공모전에 당선된 7명의 사진가가 찍은 사진도 걸렸다.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기획했다. 오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보안여관(BOAN1942)에서 열린다.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41.6%에 해당하는 ‘1인 가구’라는 말이 합당한 표현일까? ‘가구(家口)’는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수’를 뜻한다. 그런데 함께 사는 사람이 없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가구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맞을까? ‘독거(獨居)’라는 말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단어의 쓰임새는 노인 계층과 반복되어 사용된 ... -
케나의 시간, 미스테리하고 영원한
“저는 늘 미스테리하고 분위기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시간의 흐름이 배어있는 녹이 슨 곳이나, 설명보다는 새로운 제안을 하거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장소들을요. 한국은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이 거주해 온 곳이기에 저에게 보물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한국과 좋은 친구가 된 것이 뿌듯했다는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 1953 - )가 4년 전 인천공항에서 쓴 작가의 노트는 <한국 - 제1부(KOREA - Part 1)> 서문에 실렸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그만큼의 상처도 받았을 터인데, 마이클 케나의 마음은 그의 사진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오랫동안 지켜보다 보면 사물의 껍데기는 사라지고 그것이 품고 있던 영혼이 사진에 담길 것이라는 그의 믿음처럼 말이다.서울 종로구 청와대 옆 공근혜갤러리에서 마이클 케나의 사진전이 다시 열리고 있다. 지난해 촬영한 한국과 70-80년대 모국인 영국의 풍경을 선보이는 <New Korea ... -
고래는 왜 서 있을까?
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 벌을 받는다는 성경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호와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마련해두셨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소설의 원조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는 큰 물고기를 상상의 바다 괴물인 ‘리바이어던’으로 적는다. “달아나자, 달아나자! 저건 그 위대한 예언자 모세가 인내심 강한 욥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묘사한 리바이어던이 분명하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도 마찬가지였다. “그 거대한 리바이어던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바다를 끓어오르는 냄비처럼 만들었다.”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수록된 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경을 비롯해 80개에 달하는 문서에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는 리바이어던. 실재하는 생명체이지만 거대한 크기에 당혹스러웠던 작가들은 고래를 상상의 바다 괴물로 종이에 적는다. 사진 프레임에 가두어도 고래의 웅장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카자흐스탄 출신 나탈리 카르푸센코, 미국 사진가 브라이언 오스... -
보물섬을 떠도는 유령들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침몰할 무렵, 프랑스에서 축문(祝文)이 울려 퍼졌다. “망령(revenant)은 올 것이다. 늦지 않게 올 것이다. 아무리 늦더라도 올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목소리였다. 학계는 술렁였다. 정치적인 사건에 말을 아꼈던 철학자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불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데리다의 입에서 ‘마르크스’니 ‘유령’이니 하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귀를 막으려 해도 들려오는 어떤 노래 때문이었다.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 울려퍼지는 자유주의의 승전가. 일본계 미국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부르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광시곡인데, 후렴구에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장송곡이 반복됐다.<마르크스의 유령들>(그린비)의 1막에서 데리다는 햄릿의 독백을 낭송한다. “시간이 이음새에서 어긋나 있다(The time is out of joint)”. 어긋난 시간의 장막 틈새에... -
랄프 깁슨, 추상의 붉은 커튼을 열어 젖힌다
왼쪽 사진은 붉은 커튼 두 개가 보이는 컬러 사진이다. 오른쪽은 얼굴 표정이 다른 두 개의 얼굴 조각상이 찍힌 흑백 사진이다. 그리 유사한 점이 없다고 느껴지는 사진.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두 개의 피사체와 ‘ㄴ’자 구도의 검은 그림자가 두 사진에 존재한다는 점. 이렇게 상이한 사진들을 둘로 조합하는 형식을 ‘딥틱’이라 한다.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역사가 깊다. 중세의 종교화에 쓰였으며,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발견되는 형식으로 지금의 노트북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그림으로 제작됐다. 최근에는 얼굴없는 화가 뱅크시의 ‘풍선을 들고 있는 소녀’에도 사용된 방식이다. 사진작가 중에서는 랄프 깁슨이 주목했던 형식이다. 두 개의 이미지 사이를 메우는 것은 관람객들의 상상력이다.랄프 깁슨의 사진전 <Political Abstraction>이 내년 4월까지 부산 해운대구의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지난 2022년 10월 1일 개관한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의... -
천 년의 올리브 나무 아래
요르단강 서쪽 너머 팔레스타인 마을 살피트(Salfit)에는 우람한 올리브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 살피트에서는 웃음소리와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10월 말은 올리브 수확철이기 때문이다. 황금빛을 머금은 이곳 올리브가 세계 최고라고 칭찬하는 이도 있다. 15년 전 이맘때쯤, 올리브 숲을 지나던 한 이방인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숲의 노동이 그를 깨우친다. 올리브 수확은 오직 돈벌이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이방인은 가슴 주머니 속의 수첩을 꺼내 적는다. “올리브 숲의 노동”이란 “여기 태어나 지상의 한 인간으로, 역사의 전승자로, 하늘과 땅 사이 온 생명 공동체의 주체로, 나와 우리가 만나서 서로의 존재를 빛내는 일이다.”광야에서 지칠 때면 이방인은 절룩거리며 올리브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리브 숲은 그의 비밀한 수도원. 이방인은 이곳에서 “천년의 사랑”을 느낀다.“올리브나무가 천 년을 살아도 이토록 / 키가 크지 않는 건 사... -
나무로 만든 밝은 방에 걸린 액자
녹음이 짙어질 무렵이었다. 침대를 보러 가기로 한 주말 오후, 외출 준비를 마친 나는 거실을 둘러보다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여보, 여기 사진들 또 치웠어?” 아내에 대한 항의였다. “지저분하잖아. 사진을 놓고 싶으면 액자에 넣으란 말이야!” 생각이 짧았다. 매번 이런 식의 역공이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선제공격한 것이다. 그래도 반격은 해봐야지. “괜찮은 액자를 구할 수가 없다니까!” 이기기 위한 억지는 아니다. 엽서만 한 크기 사진을 액자에 넣는다는 것이 촌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액자의 플라스틱 투명 커버는 사진의 촉감을 무참히 짓이겨버린다.목수의 공방은 경기 파주 들녘에 있었다. ‘우’씨 성을 가진 목수의 공방이다. 손님을 맞이하러 나온 우 목수는 예수처럼 곱슬곱슬한 다소 긴 머리였고 체구는 옹골차게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저래서 침대를 제대로 만들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문뜩 예수님도 한때 목수였다는 사실... -
검은 하늘과 하얀 땅, 이카로스가 바라본 풍경
피터 브뤼겔의 그림 ‘아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1558)을 본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날개의 밀랍을 녹여 버린 태양 아래 땀 흘리며/ 앞바다에선 사소하게 일이 하나 있었으니/ 아무도 몰랐던 어떤 풍덩 이것은 익사하는 이카로스였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밭을 가는 농부와 양을 치는 목동, 그리고 바닷가 낚시꾼에게 날개 달린 인간의 추락은 안중에 없다. 화가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시인의 노래처럼 신화가 아니라 평민들의 삶이다. 브뤼겔이 살았던 유럽 플랑드르 지역에는 “사람이 죽어도 쟁기질은 멈출 수 없다”는 속담이 전해진다. 먹고사는 일이 녹록지 않았던 시절의 풍경을 그린 것일 터. 중세의 가을이 지난 15세기 무렵부터 플랑드르 화가들은 종교화의 속박에서 벗어나며 인간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카로스에게 날개를 달아준 다이달로스의 경고처럼, 아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위치에서 바라본 풍속화다.사진미술관 ‘뮤지엄한미’가 올... -
도시 산책자의 아우라
대통령의 해외순방 취재를 떠나기 하루 전,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화가 왔다.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독일국제교류처가 기획한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작가 이름은 울리히 뷔스트. e메일로 보내온 보도자료 파일을 열었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수립된 1949년 동독의 도시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남. 바이마르 건축토목 공대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함. 23세에 동베를린으로 이주해 도시계획가와 사진 에디터로 활동함. 그는 서른 중반에는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울리히 뷔스트는 냉전 시대를 몸소 겪은 인물이었다. 파일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동독 출신 작가의 사진전을 봐야 할 이유는 뭘까? 우리는 아직도 분단이라는 이유로 독일을 참고해야만 하는 처지일까?다음날 공군 1호기에 올라 순방 국가인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대한 참고자료집을 훑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항해 소련을 중심으로 동유럽 공동방위 조약이 체결됐던 도시 바르샤바가 수도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