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사과즙 그대로 담은 발랄한 술··· 충주 사과로 한국식 애플사이다 만드는 ‘댄싱사이더’

글·사진 김형규 기자
2030 청년들이 창업한 젊은 양조장 ‘댄싱사이더’는 충주에서 재배한 사과로 다양한 사이다를 만든다.

2030 청년들이 창업한 젊은 양조장 ‘댄싱사이더’는 충주에서 재배한 사과로 다양한 사이다를 만든다.

영국 런던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마트에서 처음 보는 맥주 몇 캔을 샀는데 하나가 맛이 이상했다. 시큼하면서 단맛이 도는 게 맥주 같지가 않았다. 알코올 도수도 적혀 있고 분명 술은 맞는 것 같은데 예상한 맛이 아니라 당황했다. 사이다(cider)라고 써 있는 걸 그제서야 봤다. 한국에서 탄산음료 대명사인 ‘사이다’가 외국에선 술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이다는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발포주다. 애플사이다라고도 부른다. 서유럽에선 오래전부터 즐겼다. 특히 포도 재배가 힘든 추운 지방에서 와인 대신 빚어 마셨다. 프랑스에선 시드르(cidre), 스페인에선 시드라(sidra)라고 부른다.

유럽에서 전통주에 속하는 사이다는 전 세계 수제맥주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최신 아이템이 됐다. 미국 수제맥주 시장은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하는 창의적인 문화로 유명하다. 쿠키, 캔디는 물론 치킨을 넣어 만든 맥주까지 있을 정도다. 사이다 역시 부재료 사용이 자유롭고 실험적인 양조 기법 등 맥주와 공통점이 많아 미국 수제맥주 양조장 중엔 사이다를 함께 만드는 곳이 많다.

사이다에도 할라페뇨(멕시코 고추), 땅콩버터 등 기발한 재료가 종종 들어간다. 알코올 도수가 12~14도로 와인과 비슷한 것도 있다. 수제맥주 붐과 함께 사이다도 각광받으며 최근 10여년간 미국 사이다 시장은 10배 이상 커졌다. 사이다를 만드는 사이더리(Cidery)가 800여곳에 이르고, 다양한 사이다를 수십종씩 모아놓고 파는 전문 술집도 흔해졌다.

춤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댄싱사이더 로고

춤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댄싱사이더 로고

한국에도 최근 사이다를 만드는 양조장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충북 충주시에 자리 잡은 ‘댄싱사이더’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이대로 대표(32)와 구성모 이사(28)가 동업해 지난해 4월 문을 연 청년기업이다.

이 대표는 군 제대 후 찾은 미국에서 2013년 수제 사이다를 처음 마시고 매력에 빠졌다. 대학 동창이 미국 보스턴에서 설립한 사이더리 ‘다운이스트 사이더 하우스’가 급성장하는 걸 보며 한국에도 ‘진짜 사이다’ 문화가 통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종류가 다양하고 정해진 답 없이 자기만의 색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춤과 사이다라는 술의 공통점을 회사 이름에 담았다.

원료 수급과 원활한 유통망을 고려해 사과로 유명한 충주에 양조장을 차렸다. 다운이스트 사이더 하우스에서 직접 양조사를 데려다 기술 전수도 받았다. 개업 첫해인 지난해만 40t의 충주 사과를 매입해 술로 빚었다.

댄싱사이더는 현재까지 4종의 사이다를 출시했다.

댄싱사이더는 현재까지 4종의 사이다를 출시했다.

첫 제품인 ‘스윗마마’(5.5도)와 ‘댄싱파파’(7도)는 국내에서 가장 흔한 사과 품종인 부사로 만들었다. 사과즙을 발효시킬 땐 에일 맥주용 효모를 쓴다. 2주간 발효를 마친 술에 다시 신선한 사과즙을 섞는데 이때 비율을 잘 맞춰 재발효를 억제하고 원하는 맛을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스윗마마는 달고 상큼한 애플사이다 맛의 전형이다. 한 모금 삼키면 신선한 사과를 깨물었을 때 입안 가득 과즙이 차는 것처럼 청량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한 병에 사과 두 개 반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청사과로 만든 ‘더그린치’는 발효과정에 맥주 재료인 홉을 첨가하는데, 시트러스 향을 내는 홉과 청사과의 새콤한 맛이 어우러져 매력적이다. 알코올 도수가 4.5도로 낮고 가벼운 산미가 있어 식전주로 알맞다. 지난 2월 출시된 신제품 ‘요새로제’는 사과 말고도 라즈베리와 오미자를 넣어 열대과일 향에 산뜻한 맛을 냈다. 투명한 병에 든 다홍빛 술은 로제와인처럼 식사 자리에 잘 어울린다.

충북 충주에 자리 잡은 댄싱사이더. 막걸리 양조장을 개조해 사이더리로 꾸몄다.

충북 충주에 자리 잡은 댄싱사이더. 막걸리 양조장을 개조해 사이더리로 꾸몄다.

댄싱사이더의 술병 라벨은 호랑이, 오골계, 소나무, 해치 등을 담은 세련된 민화로 장식돼 있다. 복숭아가 나오는 올여름엔 충주산 복숭아를 넣은 사이다가 출시될 예정이다.

330㎖ 용량인 스윗마마·댄싱파파·더그린치의 가격은 5900원, 750㎖ 병에 든 요새로제는 1만8000원을 받는다. 홈페이지나 포털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양조장에 직접 방문하면 각각 5000원·1만5000원의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양조장에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한 댄싱사이더 직원들. 댄싱사이더 제공

양조장에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한 댄싱사이더 직원들. 댄싱사이더 제공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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