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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사과즙 그대로 담은 발랄한 술··· 충주 사과로 한국식 애플사이다 만드는 ‘댄싱사이더’
영국 런던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마트에서 처음 보는 맥주 몇 캔을 샀는데 하나가 맛이 이상했다. 시큼하면서 단맛이 도는 게 맥주 같지가 않았다. 알코올 도수도 적혀 있고 분명 술은 맞는 것 같은데 예상한 맛이 아니라 당황했다. 사이다(cider)라고 써 있는 걸 그제서야 봤다. 한국에서 탄산음료 대명사인 ‘사이다’가 외국에선 술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사이다는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발포주다. 애플사이다라고도 부른다. 서유럽에선 오래전부터 즐겼다. 특히 포도 재배가 힘든 추운 지방에서 와인 대신 빚어 마셨다. 프랑스에선 시드르(cidre), 스페인에선 시드라(sidra)라고 부른다.유럽에서 전통주에 속하는 사이다는 전 세계 수제맥주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최신 아이템이 됐다. 미국 수제맥주 시장은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하는 창의적인 문화로 유명하다. 쿠키, 캔디는 물론 치킨을 넣어 만든 맥주까지 있을 정도다. 사이다 역시 부재료 사용이 자유롭... -
강렬한 산미의 화려하고 세련된 막걸리··· 전통주 편견 깨는 ‘독학파’ 양조장 남양주 ‘봇뜰’
술에는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있다. 한 잔으로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떫은맛까지 두루 느낄 수 있다. 어느 한 가지 맛이 지나치게 튀면 좋은 술이라 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너무 달기만 한 술은 많이 마시기가 힘들다.중요한 건 균형이다. 특히 신맛은 술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적당한 산미는 술의 음용성도 높인다. 거푸 마실 수 있으니 주당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경기도 남양주의 작은 양조장 ‘봇뜰’에서는 산미가 도드라진 막걸리를 만든다. 감미료를 일절 넣지 않고 삼양주로 만드는 ‘봇뜰 막걸리’(10도)다. 잔을 들면 가벼운 열대과일 향이 코끝을 스친다. 입에 머금으면 아래턱이 뻑뻑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신맛이 꽉 찬다. 침샘이 폭발하면서 금세 입안이 흥건해진다.가벼운 보디감에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술을 마시고 나면 ‘막걸리가 이렇게 화려할 수가 있나’ 놀라게 된다. 시중에서 흔히 맛보는 막걸리와는 완전히 다른, 강렬하면서도 균형 잡힌 신맛... -
서울쌀로 만든 진짜 ‘서울 막걸리’ 드셔보셨나요?··· 30대 청년들이 빚는 한강주조 ‘나루 생막걸리’
서울의 막걸리라고 하면 십중팔구 초록색 페트병에 든 술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수입쌀에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로 맛을 낸 ‘싸구려’를 서울을 대표하는 막걸리로 꼽자니 조금 찜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아쉬움을 덜어줄 만한 술이 최근 나왔다. 서울 성수동에 자리 잡은 신생 양조장 한강주조의 ‘나루 생막걸리’다.나루 생막걸리는 서울에서 재배한 ‘경복궁쌀’로 만든다. 서울 땅에서도 논농사를 짓는다는 걸 이번에 취재하며 처음 알았다. 제주 감귤, 나주 배, 문경 오미자처럼 서울에도 특산물이 세 가지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김포평야에서 나는 경복궁쌀이다.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서구 오곡동·개화동의 너른 들에서 우렁이를 활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추청 단일 품종을 재배한다.가격도 비싼 편이다. 일반 양조용 쌀과 비교하면 두 배쯤 된다. 한강주조는 지난해 경복궁쌀 8t을 사들여 술을 담갔다. 올해 예상 수매량은 20t이다. 서울에서 기른 쌀로 서울의 양조장에서 ... -
맥주 같기도 와인 같기도 한 막걸리··· 20대 사장의 ‘전통주 혁신’ 선보이는 DOK브루어리
평범한 플라스틱 막걸리통에 담긴 술 색깔은 짙은 핑크빛이었다. 간결한 선과 색으로 꾸민 라벨은 미니멀한 추상화 같았다. 술 이름은 ‘걍즐겨’. 분명 막걸리라고 했는데… 궁금해서 안 마시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마시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했다. 병 아래 가라앉은 탁한 섬유질을 섞지 말고 말갛게 뜬 윗물만 먼저 따라 마셔보라고 했다. 옅은 탄산에 매끄러운 목넘김이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듯했다. 아랫부분까지 잘 섞어 다시 한 번 들이켜니 이번엔 부드럽고 달달한 게 사이다 같기도 하고 맥주 같기도 했다. 분명 쌀로 만든 술인데, 늘 마시던 익숙한 막걸리의 향과 맛은 희미하게 가려져 있었다. 저만치 떨어진 나무 뒤에 숨어 몰래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개구쟁이처럼.히비스커스 꽃잎과 석류즙을 첨가해 개성을 살린 ‘걍즐겨’는 지난해 9월 서울 수유동에 문 연 신생 양조장 ‘DOK 브루어리’의 작품이다. 주세법상 탁주로 분류된 술을 만드는 막걸리 양조장이지만, “고정관념을 ... -
레몬·건포도·후추·생강·꿀 머금은 아주 특별한 ‘쌀술’··· 오묘한 맛으로 ‘술스타그램’ 달구는 마포 구름아양조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만 예약을 받고 완성되면 직접 양조장에 찾아가 받아야 하는 술이 있다.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해 한 번 술을 담그면 많아야 300여병이 나오는데, 지난달 예약 공지가 뜨자마자 이틀 만에 동이 났다고 한다.클릭 한 번이면 뭐든 문 앞까지 배달되는 세상에 누가 그렇게 술을 사먹을까 싶은데 술 찾으러 손님들이 귤이며 잣이며 선물까지 싸들고 온단다. 한 병에 2만7000원으로 가격도 비싼 편인데 인기가 대단하다. 어떤 술인지 너무 궁금해 서울 마포구 구름아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맛봤다.술 이름이 ‘만남의 장소’다.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술의 본질을 짚었다. 라벨에 새겨진 사람 얼굴은 반가사유상에서 따왔다는데,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둘 다인지 쉽게 가늠하기 힘든 표정이 꼭 술 마신 뒤 우리들 모습 같다.술맛은 더 오묘했다. 작은 잔에 따라 조금씩 홀짝이니 산뜻한 신맛에 톡 쏘는 느낌이 강렬했다. 쌀에서 우러나온 짜고 쌉쌀한 맛도 느... -
소맥부터 주스, 초콜릿까지 원하는 맛 찾아보세요··· 수제맥주 마니아들의 놀이터 일산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
‘배가 불러서 못 마시겠다’ ‘마셔도 안 취하니 술 마시는 재미가 없다’…. 맥주를 즐기지 않는 주당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개성 강한 수제맥주가 다양해진 요즘은 안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소맥’처럼 진하면서도 콸콸 넘어가는 맥주가 요즘은 많다. 경기 일산의 수제맥주 양조장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젠틀맨 라거’도 그런 맥주다.젠틀맨 라거는 애초부터 소맥을 겨냥하고 만든 술이다. “소주 반 잔에 맥주 반 잔을 섞은 소맥의 알코올 도수가 6.8도쯤 되는데 그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거잖아요. 저는 소맥 만들 때 소주잔을 꽉 채우니까 제 취향에 맞춰 알코올 도수를 7.6도까지 올렸어요.” 젠틀맨 라거를 만든 플레이그라운드 김재현 브루마스터(40)의 설명이다.보통 라거는 가볍고, 에일은 무겁다는 게 맥주 상식인데 젠틀맨 라거는 한 모금 넘기면 시원하고 묵직한 자극에 배 속까지 찌릿하다. 앉은 자리에서 여러 잔을 거푸 마실 수 있을 만큼 음용성도 ... -
쌀맥주부터 벚꽃라거·장미에일까지···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가 이끄는 바네하임
탁주·약주·소주 할 것 없이 전통주의 주재료는 쌀이다. 주식으로 술을 빚는 건 어느 문화권이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럼 맥주를 쌀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쌀 소비도 늘고 맥주 다양성에도 일조할 텐데.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세상은 늘 우리의 편견을 앞서간다. 서울 공릉동의 수제맥주 양조장 ‘바네하임’(Vaneheim)은 이미 작년부터 쌀맥주 ‘도담도담’을 만들어 팔고 있다.도담도담은 농촌진흥청이 다이어트용 가공식품을 만들기 위해 2014년 개발한 도담쌀을 넣어 만든다. 도담쌀은 지방 연소를 촉진하는 저항전분과 식이섬유가 많이 들었다. 연질미라 가공도 용이하다. 바네하임은 전북 익산에서 계약 재배한 도담쌀을 연간 5t 받아서 맥주를 만든다. 원래 맥주 재료인 몰트 70%에 도담쌀 30%를 섞는 방식이다. 쌀을 액화 가공하는 과정이 추가된 것만 빼면 일반 맥주 제조법과 다르지 않다.맛은 어떨까. 일단 보기부터 군침이 돈다. 색이 진하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은 흔적이다. 거... -
산머루로 만드는 '한국의 아마로네’ 와인··· 복서의 우직함 담긴 김천 수도산 와이너리 ’크라테’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머루랑 다래를 우리 선조들이 그냥 먹었을까. 한바탕 노래 부른 것을 보면 아마도 술을 담가먹은 것이지 싶다. 토종 산머루로 담근 술은 지금도 맛볼 수 있다. 놀랍게도 유럽 본토 와인의 향미가 느껴지는 술이다. 주인공은 경북 김천 수도산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크라테’ 와인.크라테는 포도를 말려 술을 담그는 아마로네(Amarone) 와인과 제조법이 비슷하다. 아마로네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Veneto) 지방을 대표하는 고급와인이다. 수확한 포도송이를 대나무발 위에서 3~4개월 말려 수분을 줄이고 당도를 높인 뒤 술을 담근다. 이런 제조법을 ‘아파시멘토’라고 하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고 색이 진하며 강렬한 맛을 내는 와인을 만들어낸다.산머루를 쓰는 크라테도 포도알이 건포도처럼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말리는 방식은 아마로네와 같다. 다만 수확하지 않고 나무에 달... -
‘촌놈’ 노무현이 사랑했던 그 막걸리··· 4대째 100년 이어온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
“야, 기분 좋다!” 대통령 퇴임식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간 날,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시원하게 내뱉은 그 장면에 공감한 것은 분명 그의 지지자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거운 짐 내려놓고 비로소 마음 쉴 곳에 도착한 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감탄사를 터뜨리지 않을까. 그럴 때 마시는 술은 얼마나 달고 시원할까. 그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주민들과 나눠 마신 술은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에서 만든 대강막걸리다.자타공인 ‘촌놈’인 노 전 대통령은 막걸리를 좋아했다. 그가 대강막걸리를 처음 맛본 건 2005년 봄이다. 농촌체험마을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마을을 방문했다가 식사자리에서 대강막걸리를 거푸 여섯 잔이나 마셨다.조재구 대강양조장 대표(55)는 “이장이 찾아와서 ‘옆마을에 높은 분이 오시니 술을 잘 만들어달라’ 해서 군수나 도지사가 오는 줄 알았는데 저녁 뉴스에 대통령이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그날 노 전 대통령은 떡메를 치고... -
연말 모임 분위기 띄울 ‘대통대잎술’··· 고려시대 사찰 ‘곡차’ 복원한 전남 담양 추성고을
연말연시 모임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맛 좋은 술 한 병은 순식간에 좌중의 분위기를 바꾼다. 꼭 비싼 술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재밌는 얘깃거리를 품은 술이 있다면 여럿이 모인 술자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대통대잎술은 그런 목적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다.등장부터 남다르다. 대통대잎술은 유리병이 아니라 커다란 대나무통에 담겼다. 당연히 병뚜껑도 없다. 술을 사면 주는 나무 꼬챙이로 대나무통 윗부분에 직접 구멍을 뚫어야 마실 수 있다. 두 손으로 술병을 조심스럽게 기울이면 졸졸졸 소리를 내며 맑은 약주가 흘러나온다. 술을 개봉해 잔에 따르는 과정 자체가 떠들썩한 놀이고 이벤트가 된다. 대나무 속에서 시간을 보낸 술은 옅은 꽃향을 풍긴다. 곡물로 빚은 술 특유의 녹진한 단맛도 느껴진다. 알코올 도수 15도로 시판 소주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부드러운 목넘김은 비할 수 없이 좋다.대통대잎술은 만드는 법이 까다로운 편이다. 담양산 멥쌀과 찹쌀을 7 대 3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