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다완, 도공·다인·세월이 합작", 김종훈 찻사발 전

도재기 선임기자

·학고재 ‘춘추 Ⅳ. 황중통리(黃中通理)-김종훈 도자’ 전

·‘정호다완’ 등 80여 점…조선시대 도자도 함께 전시

도예가 김종훈이 학고재갤러리에서 ‘정호다완’ 중심의 찻사발 전 ‘황중통리-김종훈 도자’를 열고 있다. 김종훈의 ‘대정호’( 사질카오린·물토재유·장작가마 소성, 15.4×15.6×9.1㎝, 굽너비 5.5㎝, 무게 347g). 학고재 제공.

도예가 김종훈이 학고재갤러리에서 ‘정호다완’ 중심의 찻사발 전 ‘황중통리-김종훈 도자’를 열고 있다. 김종훈의 ‘대정호’( 사질카오린·물토재유·장작가마 소성, 15.4×15.6×9.1㎝, 굽너비 5.5㎝, 무게 347g). 학고재 제공.

김종훈의 ‘대정호’ 굽 주변. 학고재 제공.

김종훈의 ‘대정호’ 굽 주변. 학고재 제공.

차(茶), 특히 말차를 즐기는 이들은 찻사발(다완)을 소중하게 여긴다. 취향에 맞고, 심미적 아름다움과 기능적 효용성이 공존하는 빼어난 다완을 찾기위해 애쓴다. 국내외 전시장, 도예가들의 가마를 찾는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찻사발을 구하면 차모임을 열기도 한다.

한때 일본에서는 찻사발이 권력과 부·명예의 상징이었다. 임진왜란(1592) 전후가 특히 그랬다. 명품 찻사발을 구하기위한 세도가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조선 도공의 미감이 녹아든 찻사발, ‘이도다완’(井戶茶碗)이 첫 손에 꼽혔다. 중국, 조선에 비해 도자 수준이 턱없이 낮았던 일본은 임진왜란 때 수많은 조선 도공을 끌고 갔고, 이후 도자기술은 급성장한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다.

김종훈의 ‘대정호’(16.2×15.6×9.5㎝, 굽너비 5.7㎝, 무게 400g). 학고재 제공.

김종훈의 ‘대정호’(16.2×15.6×9.5㎝, 굽너비 5.7㎝, 무게 400g). 학고재 제공.

현재 ‘기자에몬 이도다완’ 등 20여 점이 일본의 국보·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민간 소장품도 300여점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맥이 끊긴 한국에는 거의 없다. 최근 ‘정호다완’이라고도 부르는 이도다완이 조선에서 유래됐지만 사실 당시의 용도는 명확하지 않다. 제기라는 견해부터 찻사발, 막사발, 발우까지 다양하다. 한때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 등에 의해 막사발이란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막사발은 임진왜란 이후 서민들이 사용한 도자기를 총칭하고, 정호다완은 조선초부터 임진왜란 이전까지 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김종훈의 ‘청정호’(14.5×14.6×7㎝, 굽너비 5㎝, 무게 264g). 학고재 제공.

김종훈의 ‘청정호’(14.5×14.6×7㎝, 굽너비 5㎝, 무게 264g). 학고재 제공.

정호다완은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당당하고 기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굽 주변의 다양한 유약 뭉침의 형태적 아름다움을 예전부터 ‘매화피’라 부르며 지금도 중요하게 여긴다. 땅을 닮은 황토색, 물레질의 자연스러운 흔적, 굽도 주요 요소다. 두 손으로 잡을 때의 편안함과 촉감, 찻물이 고이지 않는 기능성 등도 중요하다. 정호다완이 주목받으면서 현대 도예가들은 이를 재현, 재해석하는 찻사발을 빚고 있다.

학고재갤러리의 기획전 ‘춘추 Ⅳ. 황중통리(黃中通理)-김종훈 도자’는 정호다완 중심의 전시로 관심을 끈다. “다완이 처음 작업이자 마지막 작업이었으면 한다”는 신념으로 정호다완 연구·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도예가 김종훈(48)의 작품전이다.

김종훈의 ‘소정호’(14.2×14×7.5㎝, 굽너비 4.7㎝, 무게 263g). 학고재 제공.

김종훈의 ‘소정호’(14.2×14×7.5㎝, 굽너비 4.7㎝, 무게 263g). 학고재 제공.

정호다완 75점을 비롯해 분청다완(분인다완)·백자 큰 항아리(달항아리) 등 80여 점이 전시장을 채운다. 또 ‘학고창신’(옛 것을 배워 새 것을 창조한다) 정신을 새기는 기획전 의미를 살려 조선시대 다완 3점, 달항아리 1점도 출품돼 현대와 조선 후기 도자를 비교·감상할 수 있다.

김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찻사발, 특히 정호다완에 관심을 기울였고 첫 전시도 찻사발 중심으로 했다. 지난 20년간 일본을 수십차례 오가며 정호다완을 찾아 연구하고, 찻사발을 중요시한 일본 차문화도 공부했다. 좋은 흙을 찾아 전국을 다녔고, 수백번의 실험을 거듭하며 유약을 만들었다. 외형을 넘어 찻사발을 만들던 도공의 마음까지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래서 여주에 장작가마를 짓고 작업 중이다.

전시장 전경 일부. 학고재 제공.

전시장 전경 일부. 학고재 제공.

한·중·일을 오가며 작품전을 해온 그는 “옛 찻그릇의 복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제 모든 공부, 옛 도공의 마음, 현대 다인(茶人)들의 차생활과 그 속의 사유까지도 담아내고자 한다”고 말한다. “제 찻사발은 도화지, 캔버스죠. 찻사발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다인들이 차를 즐기는 오랜 시간과 그 속의 사유가 찻사발에 응축될 때 드러난다고 봅니다. 도화지에 다인의 차심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이죠.” 자신의 찻사발은 차를 즐기는 다인들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이다. 실제 작가는 신작과 더불어 몇년 사용돼 차심이 든 찻사발도 전시에 내놓았다.

김종훈의 ‘대호’(사질카오린·물토재유·장작가마 소성, 50×50×49㎝). 학고재 제공.

김종훈의 ‘대호’(사질카오린·물토재유·장작가마 소성, 50×50×49㎝). 학고재 제공.

찻사발과 함께 선보이는 백자 항아리도 여느 항아리와 달리 ‘김종훈의 항아리’라는 생각이 든다. 인공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새하얀 항아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색감, 장작가마의 우연성, 당당하면서도 온화함이 두드러진다. 찻사발을 빚으면서 얻은 안목과 마음, 기법이 항아리에도 담겼다.

그의 찻사발과 항아리는 조선시대 옛 찻사발, 항아리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팔도 다완’(17세기)에는 ‘경기도’ 등 팔도 지명이 쓰여있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 후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학고재 측은 “특히 젊은 층이 많이 찾아 놀라고 있다”며 “관람객이 요청할 경우 다완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게 전시를 꾸렸다”고 밝혔다. 전시는 27일까지.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