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홍과 함소원의 방송 하차는 ‘한국 관찰 예능’의 허구적 리얼리티를 어떻게 폭로하나

위근우 칼럼니스트

사적 개인의 진정성을 담는다며 진실은 회피하는 리얼리티쇼의 모순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E H 카의 유명한 잠언을 최근 방송계 이슈에 대입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박수홍이, TV조선 <아내의 맛>에서 함소원이 거의 동일한 시기에 개인적 논란과 함께 잠정 하차하는 것은 우연이지만, 사적 개인의 진정성과 솔직함을 핵심 가치로 삼는 한국 리얼리티쇼가 필연적으로 닿게 되는 수순이라고. <미운 우리 새끼> 원년 멤버인 박수홍은 최근 불거진 매니저인 친형의 출연료 횡령 논란에 대해 부분적으로 인정하며 지난 3일 방송에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잠정 하차를 결정했다.

TV조선 <아내의 맛>은 함소원이 하차를 결정한 이후 일부 에피소드의 과장된 연출을 인정하며 ‘시즌 종료’를 발표했다. <아내의 맛> 방송 화면 캡처

TV조선 <아내의 맛>은 함소원이 하차를 결정한 이후 일부 에피소드의 과장된 연출을 인정하며 ‘시즌 종료’를 발표했다. <아내의 맛> 방송 화면 캡처

함소원의 경우 <아내의 맛>에서 보여준 여러 장면들에 대한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남편과 함께 역시 잠정 하차했다. 하차라는 결과를 제외하면 두 사람이 겪은 일과 책임질 일은 전혀 다르다. 다만 관찰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사생활 일부를 공개했던 이들이 결국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 다른 실제적 모습을 드러내거나 혹은 들키면서 TV 속에서 상상적으로 구현되던 리얼리티에 눈에 띄는 균열이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은 흥미롭다.

관찰 예능이 그 어느 때보다 유행하는 요즘, TV는 연예인의 일상에 실재와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붙여 판다.

성인이지만 여전히 어머니 눈에는 철들지 않은 중년 남성의 모습, 서로의 갈등을 숨기지 않는 부부의 모습에 과연 어떤 유용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진짜라는 느낌을 줄 때 시청자들은 쉽게 이입하고 공감한다. 최근 예능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흐름을 보자. tvN <삼시세끼>의 성공 이후 나영석 PD가 만든 tvN <숲속의 작은 집> <여름방학>이 외부 자극을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했다면, 그 반대편에서 웹예능 <가짜사나이 2>는 연기가 불가능한 가학적 상황 안에 출연자를 몰아넣은 뒤의 반응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수많은 지상파 관찰 예능은 이 두 극단 사이 어디 즈음에 자리하며 각각의 방식으로 진정성을 어필한다.

여기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예능에서 작가의 각본 없이, 연출자의 개입 없이 재미를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는 일상의 매우 많은 부분에서도 이미 공적 자아를 어느 정도 ‘연기’한다는 것이다. 하여 리얼리티쇼는 출연자의 사적 영역을 향해 카메라를 비춘다. 혼자 사는 모습이나(MBC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부부 사이의 모습이나(<아내의 맛>, SBS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공적이지만 갑인 관계에서의 모습(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출연자의 ‘진짜’ 내면을 볼 수 있다는 미심쩍은 가정을 시청자와 공유하며.

과연 그 가정이 타당한지, 정말로 리얼리티쇼에서 비춰지는 연예인 출연자들의 모습이 그들의 본질인지 질문하는 건 별로 의미 없는 일이다.

SBS <미운 우리 새끼>의 원년멤버인 박수홍이 개인적 논란으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잠정 하차를 선언했다.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SBS <미운 우리 새끼>의 원년멤버인 박수홍이 개인적 논란으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잠정 하차를 선언했다.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미운 우리 새끼>에서 매번 집에서 솜사탕, 메밀면 반죽, 태양열로 라면 끓이기 등을 시도하던 김건모의 모습이 그의 실제 일상이자 자연스러운 에피소드라고 믿을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그들이 카메라가 돌지 않아도 그런 행동을 할 것이냐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마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사적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는 것이다. 성공한 지상파 관찰 예능 중 하나인 <나 혼자 산다>의 최대 수혜자가 웹툰 작가 기안84인 건 우연이 아니다.

방송에 익숙한 연예인의 연기나 자기 연출은 물론 가끔 공적인 예의조차 벗어나는 그의 기행은 솔직함이라는 가치를 과도할 정도로 높게 평가하는 한국 리얼리티쇼의 이상향처럼 보인다.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는 방송 안에서의 놀림은 사실 리얼리티 예능 시대의 찬사다. 그러니 다들 미숙한 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면을 통해 그토록 모호한 개념인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박수홍은 놀기 좋아하는 중년 클러버 캐릭터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고, 함소원은 남편 및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불화로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이끌었다.

두 사람의 방송 속 모습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알 수 없음이 리얼리티쇼 연출의 핵심 요소다. 가령 나영석의 미니멀리즘 예능의 자장에 속하는 tvN <윤스테이>에서 최우식이 손님의 채식 지향 유무를 확인하는 모습은 공적인 철저함인가 사적인 상냥함인가. 전자가 후자보다 결코 못한 게 아니며 실은 둘을 분리하기도 어렵지만, 알 수 없다면 시청자는 이를 인성으로 소비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일종의 모순이 발생한다. 사적 개인만이 진실한 것처럼 소비되는 리얼리티의 시대에 관찰 예능은 외부 요소로부터 온전히 분리된 사적 자아라는 허구적 개념을 가상적으로 연출하게 된다. 이 허구를 매끈하게 완성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출연자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면모들을 임의로 다듬어야 한다. 한시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계속 강조했듯 개인의 진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품이 되면서 연예인들은 TV 바깥에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동영상 채널을 통해 사적 개인의 입장으로 대중과 관계 맺는다. 함소원은 <아내의 맛>에서 남편과 심하게 다퉜지만 연예 기사를 통해 이혼설이 불거지자 SNS에서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부인했고, 이후 방송에서 극적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순적이진 않지만 결별설에 대한 부인이 먼저인지 극적 화해의 연출이 먼저인지는 모호하다.

방송에선 알 수 없던 박수홍 형의 횡령 의혹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이 박수홍과 반려묘의 일상을 다룬 유튜브 채널인 ‘검은 고양이 다홍’에서의 댓글인 건 우연이 아니며 박수홍에 대한 지지 여론이 그의 명백한 공적 피해 사실보다는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사적 미담에 근거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오직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만이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리얼리티 예능은 부흥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한 줌 진실의 무게가 더해질 때 그 세계는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아이가 열이 날 때 두부를 으깬 파스로 약을 대신하는 함소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마음 놓고 비난하던 이들에게 두려운 건, 그의 고집이 아이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고집이 연출됐을 가능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최근 박수홍이 가족의 반대 때문에 5년 정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어야 했다고 고백한 <미운 우리 새끼>의 과거 방영분이 다시보기 서비스에서 삭제된 건 상징적이다. 해당 장면은 그의 형과 형수가 본인들의 이득을 위해 박수홍의 결혼을 반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다시금 회자되었다. 거짓이라 지워진 게 아니다. 어머니의 걱정을 사는 철없는 클러버 박수홍의 캐릭터 안에서 가볍게 소비될 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것이 정작 진실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부담스러운 실재의 무게감을 드러내자 방송에서 지워버린 것에 가깝다.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서 진실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회피하는 리얼리티쇼의 모순은,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미 이 세계에 근본적으로 깔린 문제다. 그리고 모든 근본적 문제는 언젠가 드러난다.

그것이 필연이다. 우연의 옷을 입고 도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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