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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현부터 김용건까지…다양한 삶의 모습은 '남자라서' 긍정된다
MBC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와 이혼남. 조금은 의외인 두 키워드의 조합을 관통하는 흥미로운 두 장면이 단 일주일 사이에 교차했다. 지난 4월12일 <나혼산>에는 배우 안재현이 이혼한 지 약 4년 만에 ‘돌싱’의 자격으로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그리고 그 <나혼산> 초창기에 원조 ‘돌싱’으로서 출연자들에게 ‘대부님’으로 불리던 배우 김용건은 늦둥이 아빠의 자격으로 4월18일부터 방영하는 채널A 신규 예능 <아빠는 꽃중년>에 MC로 합류했다. 도식적으로 말해 <나혼산>에 새 이혼남이 등장하자, 과거에 떠났던 이혼남은 이혼남이 아닌 새로운 자격으로 새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단 6일 만에 벌어진 이 두 장면의 교차는 재밌는 우연이지만, 이 두 사례가 등장할 수 있는 공통의 맥락은 존재한다. 이혼남이든 늦둥이 아빠든, 남성은 비교적 쉽게 자신의 위치를 판돈 삼아 방송에 자신의 자리를 마... -
‘눈물의 여왕’, 박지은 작가의 자기 복제가 닿은 막다른 골목
박지은 작가의 tvN <눈물의 여왕>에는 두 세계가 있다. 홍해인(김지원)을 비롯한 대기업 퀸즈그룹 일가가 사는 퀸즈타운, 홍해인의 남편 백현우(김수현)가 나고 자란 시골마을 용두리. 회장 부인 제사 때문에 일가가 모이는 것만으로도 언론사들이 빗속을 뚫고 모여들 정도로 퀸즈타운이 세상의 중심이라면 용두리 청년 춘식(박정표)은 요즘 유행하는 MBTI에도 무지하다. 이질적이면서 물리적으로도 구분되는 공간으로서의 두 세계가 등장하고 서로 조우하며 서사를 만들어내는 건 박지은의 주요 모티브다.외계인과 지구인 스타의 로맨스를 그린 SBS <별에서 온 그대>에선 다른 별과 지구라는 두 세계가 등장하며, 역시 인어와 인간의 종을 뛰어넘는 만남을 그린 SBS <푸른 바다의 전설>에선 바다 세계와 육지가 만난다. 상상의 세계와 조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tvN <사랑의 불시착>은 주인공 윤세리(손예진)가 예기치 않게 북한에 떨어지며 벌어지는 다양... -
‘22번 타자 채은성’이라니…야구팬 농락하는 ‘시장 논리’
아, 원고 쓰기 싫다. 격주로 돌아오는 마감일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번엔 더더욱 의욕이 없다. 곧 프로야구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응원하는 팀인 KIA 타이거즈의 4번 타자이자 주장 나성범의 햄스트링 부상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칼럼 마감을 포함해 이번주 일정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주말에 맥주와 함께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개막전을 보자는 나의 계획엔 이미 메울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안다. 어떠한 변수도 없이 최상의 전력으로 이상적인 시즌을 보내는 것은 그저 개막 전 팬들의 머릿속에서만 잠시 벌어지는 춘몽이란 걸. 한 시즌 144경기인 프로야구를 수년 이상 경험해본 야구팬들은 야구가 결코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족속이다. 그러니 괜찮다. 이기든 지든, 생중계를 보고 다시 경기 하이라이트를 복기하며 열광하거나 욕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다음 경기가 또 기다리니까. 그런데 이젠 그조차 쉽지 않을지 모른다. 다들 자기 팀에 대한 일... -
땅에 묻힌 상흔의 역사 우직하게 파헤치는 맛에 ‘파묘든다’
*영화 <파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풍수학과 항공우주공학, 어쩌면 오컬트 영화 <파묘>의 세계관은 전혀 달라보이는 이 둘 사이의 교집합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2월22일 개봉해 10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지난 3일 기준)하며 고속 흥행 중인 <파묘>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은 의뢰인에게 자신의 딸이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으며 자기 일도 그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땅이란 과거 우리의 선조부터 자신, 미래 세대가 죽고 흙으로 돌아가 쌓이는, 말하자면 모든 인과가 누적되는 공간이다. 음양오행의 법칙을 비롯한 풍수지리의 비법은 이 보이지 않는 인과의 흐름을 읽어내 길흉화복에 개입하는 일이다. 항공우주공학이 공기의 흐름과 중력 등 존재하지만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변수를 계산해 하늘과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처럼. 오컬트 장르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해한 ... -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 원작의 미덕은 어떻게 흔한 핏빛 K드라마로 변질됐는가
웹툰 <살인자ㅇ난감>이 넷플릭스를 통해 영상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려했던 건 두 가지다. 첫째, 원작이 너무나 만화적이라는 것. 살인과 불법촬영, 강간 등 온갖 흉악한 범죄와 악의가 넘쳐나는 작품 속 세계에서 꼬마비 작가 특유의 이등신 캐릭터와 네 컷 만화 형식을 이용한 간결한 연출은 이야기의 심각성과 문제의식을 유지하되 반사적 혐오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의도치 않게 죽인 이들이 알고 보니 법망을 피해온 인간말종이더라는 주인공 이탕의 능력을 비롯해 <살인자ㅇ난감>의 설정과 반전 상당수는 일종의 사고 실험에 가까우며 이러한 만화적 형식을 통해 범죄의 잔혹성에 매몰되지 않고 그 잔혹함의 죗값을 판단할 도덕적 전제나 믿음, 상식에 대한 질문을 더 효과적으로 던질 수 있었다. 과연 영상화 과정에서 피와 폭력의 이미지로부터 얼마나 전략적이고 윤리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었다. 둘째, <살인자ㅇ난감>... -
설 연휴 특집…‘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가사로 되짚어보는 윤석열 정부 잔혹사
다행히도, 이 칼럼은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진의 대국민 합창 무대를 아직 보지 못한 상태에서 쓰고 있다(마감일 기준). 만약 그 꼴을 직접 봤더라면 높은 확률로 그 미적 참담함에 훨씬 심술궂은 심정이 됐을 것 같다. 설 연휴 새해 인사로 대통령 스스로 “노래 가사에 내가 국가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이 다 담겨 있다”고 감탄했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를 부른다는 건데, 지난 4일 합창과 율동에 윤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담아 녹화했고 설 연휴에 방영될 예정이다.신년 기자간담회를 대신해 KBS와의 단독 신년 대담을 사전 녹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해 이미 국민과의 소통이 아닌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라는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누구도 딱히 원하지 않을 합창 무대까지 신년 인사로 전한다 하니, 역시 수요 없는 공급은 불통에서 시작된다.물론 아직 보지 못한 무대의 만듦새에 대해 미리 평가할 수는 없다. 봐도 예상을 크게 벗어날 것 같진 않지만. 그보단... -
‘길위에 김대중’,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통행은 왜 정치인의 길이 아닌가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을 보며 든 첫 생각은 이거다. 윤석열은 정말 편하게 대통령이 되었구나. 영화에서 나오듯, 김대중은 정치인이 된 후 죽을 고비,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다. 관권의 노골적인 개입이 있던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를 상대로 선전했으나 낙선한 이후, 그는 박정희의 유신 독재정권에선 암살 목적으로 납치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전두환 정권 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구금, 고문, 강제 망명 등 그의 정치적 상징성을 죽이기 위한 시도는 훨씬 더 많았다. 독재정권 시절에만 핍박받았던 건 아니다. 직선제를 받아들이면 대선 출마를 하지 않겠다던 김대중의 협상 제안은 전두환 정권의 거부로 결렬되고 무효화되었음에도 이후 그를 비롯한 시민들의 투쟁으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자 그의 대선 도전에 대해 김영삼을 비롯한 야당 세력은 약속 번복이라 비난했다. 과거 정권에서 씌운 지역감정 조장이라는 ... -
KBS2 ‘고려거란전쟁’ 양규의 최후는 왜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는가
세 걸음, 단 세 걸음이 부족했다. 지난 7일 방영한 KBS2 <고려거란전쟁> 16화에서 도순검사 양규(지승현)는 거란군의 수장 야율융서(김혁)를 활로 맞힐 수 있는 사정거리로부터 단 열 걸음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 군사의 화살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한 걸음씩 좁혀갔다. 몸에 꽂히는 화살 하나하나가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상을 입히지만, 피칠갑 된 양규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카메라는 그 각각의 화살이 아닌 그동안 또한 여전히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과 피로의 무게와 싸우는 모습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세 걸음, 단 세 걸음을 남기고 그는 멈춰 선다. 비로소 수십 개의 화살이 온몸에 꽂혀 선 채로 죽음을 맞이한 그의 전신이 비치지만, 그를 멈춰 세운 건 각각의 화살이 아니라 차라리 거란의 고려 2차 침공과 맞서 싸운 내내 누적된 혹사의 여파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양규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흥화진 전투를 그린 <고려거란전쟁> 6화에서 수일 밤낮을 자지 않고 성... -
서열·커플놀음 없이 가능한 웃음의 ‘난장’…물려받을 자 누구인가
주우재의 눈물샘이 또 터졌다. 지난 24일 방송된 <KBS 연예대상>에서 KBS <홍김동전>으로 쇼·버라이어티 부문 우수상을 받은 주우재는 <홍김동전> 멤버들과 스태프들을 호명하고 감사를 전하며 감격의 눈물을 터뜨렸다. 여타 예능에서 반쯤 시크하고 반쯤 깐족대는 캐릭터를 보여주던 그의 눈물이 누군가에겐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홍김동전> 시청자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3월 그가 아버지의 손편지를 받고 울었던 에피소드는 대놓고 당사자와 시청자들의 눈물을 뽑아낼 작정으로 만든 기획이라 치자. 5월 이화여자대학교에서의 토크 버스킹에선 자신의 첫인상에 대해 “빛났다”고 말해주는 김숙의 말에 바로 눈물을 글썽였고, 최근 방영분에선 프로그램 팬들이 보내온 팬레터 중 초등학생 저학년 시청자의 첫 예능이었다는 내용에 본인 조카의 첫 예능을 상상하며 눈물이 고였다. 주우재는 유독 <홍김동전>에서 무방비 상태다. 그리고 아마... -
좋은 코미디를 고민한다는 ‘코미디로얄’의 의도가 공허한 이유
모두가 사랑하는 코미디는 없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코미디는 있을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작 <코미디 로얄>의 2번째 에피소드 제목 ‘모두가 사랑하는 코미디는 없다’를 보며 든 생각이다. 총 3라운드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된 <코미디 로얄>에선 TV와 유튜브를 통틀어 현재 코미디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영건’ 15명과 5명의 마스터가 팀을 짜 라운드마다 각기 다른 과제로 코미디 대결을 벌여 탈락 팀을 정하는데, 해당 회차에서 1라운드 탈락 팀이 나왔다. 현재 뉴미디어 코미디를 대표하는 메타코미디 클럽 멤버들과 대표 정영준으로 구성된 정영준 팀이었다. 물론 첫 라운드 과제가 콩트인 만큼 공개 코미디 경력이 오래된 황제성, 이상준, 김두영 등이 포진한 문세윤 팀, 탁재훈 팀이 유리했던 건 사실이다. 심지어 문세윤 팀은 첫 콩트 반응이 저조하자 tvN <코미디 빅리그> 최고참이던 문세윤이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니 정영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