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까지 살피고 따진다…마그리트·달리 ‘초현실주의 거장들’ 컨디션 체크의 날

김종목 기자

지난 16일 183점 예술의전당 도착

수장고에 이틀간 보관 ‘기후 적응’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 전문가들

모든 전시작 상태 꼼꼼하게 점검

이상 땐 국내 전문가가 임시 복원

‘초현실주의 거장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 작품 183점이 지난 16일 인천공항을 거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수장고에 도착했다. 이틀 동안 현지 기후 적응 시간을 가졌다. 최소 24시간을 수장고에 둬야 한다. 지난 18일 미술관 3층 제5전시실에서 크레이트(미술품 운반 전용 상자)에 든 르네 마그리트 회화와 살바도르 달리의 판화를 꺼내기 시작했다. ▶관련 기사 보기 : 20세기 예술혁명으로 탄생한 걸작들…‘원작’으로

“크레이트는 작품 크기에 딱 맞게 만들었어요. 비행기나 트럭으로 옮길 때 작품을 보호하죠.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올 때나 눈이 내릴 때나 안전합니다. 충격도 방지하고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의 해외전시 디렉터 산드라 타사키스가 말했다. 고가의 크레이트는 비행기 폭발 때도 견딘다고 한다. 펄프섬유나 유리섬유를 압축해 만든 널판지, 스티로폼, 골판지로 삼중 설계한다. 방수는 기본이다. 크레이트 내부는 전시실과 비슷한 온도인 20℃, 습도 55%를 맞춘다. 곰팡이나 균열을 방지하려 항온·항습기도 넣는다. 크레이트 하나에 수천만원, 대여료에 수백만원이라고 한다.

김주삼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양지연 연구원(가운데), 최윤정 인턴과 함께 살바도르 달리의 판화 상태를 점검한 뒤 앞서 작성된 컨디션 리포트와 대조·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김 소장 손에 들린 건 측광조사등이다. 김종목 기자

김주삼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양지연 연구원(가운데), 최윤정 인턴과 함께 살바도르 달리의 판화 상태를 점검한 뒤 앞서 작성된 컨디션 리포트와 대조·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김 소장 손에 들린 건 측광조사등이다. 김종목 기자

타사키스는 가로 세로 2~3m가량 되는 대형 크레이트 앞으로 안내했다. 앞서 ‘초현실주의 걸작전’을 개최한 뉴질랜드 웰링턴의 테 파파 통가레 박물관에서 한가람미술관까지 오기까지 과정을 설명했다. ‘쿠리에’라 불리는 작품 ‘호송인’이 동행한다. 공항과 미술관 사이 무진동 차량 운송 때도 따라간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크레이트 사진도 보여줬다. 다만 이날 제 5전시실에 놓인 크레이트도, 타사키스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크레이트 사진을 촬영하려는 건 막았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의 프로젝트 매니저 수잔나 코닉이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컨디션 리포트를 확인하고 있다. 벽에 걸린 작품은 마그리트의 ‘자유의 문턱에서’(1937). 김종목 기자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의 프로젝트 매니저 수잔나 코닉이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컨디션 리포트를 확인하고 있다. 벽에 걸린 작품은 마그리트의 ‘자유의 문턱에서’(1937). 김종목 기자

프로젝트 매니저 수잔나 코닉이 설명했다. “여러 추가 보안 조치를 한다. 크레이트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매우 조심할 뿐”이라고 했다. 크레이트엔 작가 이름이나 작품명 같은 정보가 전혀 적혀 있지 않다. 도난을 방지하려는 조치다. 크레이트 외관이 알려지면, 도둑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선 미술품 도난 사건이 거의 없지만, 해외에서는 종종 일어난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쿤스트할 미술관도 2012년 10월 피카소·모네·고갱 작품 7점을 도난 당했다. 크레이트는 수장고에서 전시실로 옮긴 뒤 양측 입회 하에 처음으로 열었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직원 4명이 컨디션 체크 등을 위해 방한했다.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려진 젊음’(1937) 앞에 포즈를 잡았다. 왼쪽부터 해외전시 디렉터 산드라 타사키스, 프로젝트 매니저 수잔나 코닉, 레지스터 롤리 질스트라, 큐레이터 엘스 호크. 김종목 기자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직원 4명이 컨디션 체크 등을 위해 방한했다.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려진 젊음’(1937) 앞에 포즈를 잡았다. 왼쪽부터 해외전시 디렉터 산드라 타사키스, 프로젝트 매니저 수잔나 코닉, 레지스터 롤리 질스트라, 큐레이터 엘스 호크. 김종목 기자

컬쳐앤아이리더스의 강미란 대표는 2008년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2013년 ‘알폰스 무하’, 2014년 ‘뭉크 영혼의 시’, 2020년 ‘모네에서 세잔까지’ 등 여러 기획 전시를 개최했다. 강 대표는 “뭉크 전을 할 때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서 경찰 경호를 요청한 적도 있다. 한국에서 전시를 개최한 여러 해외 미술관이 전시가 끝나고 나서야 ‘한국은 안전하네, 괜한 걱정을 했다’고 말하곤 한다”고 전했다.

미술 작품 컨디션 점검 항목. 김종목 기자

미술 작품 컨디션 점검 항목. 김종목 기자

이날은 미술업계 말로 ‘컨디션 체크’를 하는 날이다. 타사키스는 점검 항목을 적은 문서를 보여줬다. 점검 표에 ‘찢김’ ‘접힘’ ‘파임’ ‘긁힘’ ‘마모’ ‘흔들림’ ‘뒤틀림’ ‘먼지’ ‘얼룩’ ‘지문’ ‘색 바램’ ‘벗겨짐’ 등 총 28가지 항목이 영어로 적혔다. 한 미술관에서 다른 미술관으로 이동할 때마다 점검한다. 한국과 네덜란드 전문가들이 뉴질랜드에서 작성된 컨디션 리포트를 두고 하나하나 작품 상태를 확인했다.

한국의 보존·복원 전문가인 김주삼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루페(확대경)’와 측광조사등으로 달리의 판화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 소장은 지난 4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의 컨디션 체크도 맡았다. 한국에선 손꼽히는 복원 전문가다. 만약 작품에 이상이 발견되면 김 소장이 네덜란드 측과 협의해 임시 복원 조치를 하게 된다. 그는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1대학 미술품 보존복원학과에서 공부했다. 1985년 호암미술관에 입사해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장 등을 지내다 2008년 퇴사해 이 회사를 차렸다.

“컨디션 체크는 손상된 부분이 나왔을 때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때도 필요합니다. 오늘 손상 여부를 확인하고 양측에서 컨디션 리포트를 점검하고,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한번 점검한 뒤 사인합니다. 전시 기간 중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개최된 웬만한 해외 기획 전시 컨디션 체크를 맡았다. 명작들을 먼저 보는 기분은 어떨까. “일이죠. 재밌긴 하죠. 제일 먼저 자세히 볼 기회는 많지 않잖아요. 일종의 특권 같다고도 할 수 있죠.”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진행한 컨디션 체크 뒤 바닥에 잠시 머물다 벽에 걸렸다. 김종목 기자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진행한 컨디션 체크 뒤 바닥에 잠시 머물다 벽에 걸렸다. 김종목 기자

양국 전문가의 교차 점검이 끝나면 작품을 벽에 건다. 작품을 걸기 전 전시 포스터에 들어간 그림인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이 벽면에 기댄 채 놓였다. 화보나 온라인 이미지에서 보던 것이다. 전시실 바닥 때문인지 대가의 걸작이 잠깐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미술품 운송 전문업체인 동부아트 직원들이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마그리트 작품에 은박 토이론을 싸고 있다. 김종목 기자

미술품 운송 전문업체인 동부아트 직원들이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마그리트 작품에 은박 토이론을 싸고 있다. 김종목 기자

작품을 벽에 건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김 소장은 “지금은 작품 상태 점검하느라 조도가 높다. 작품에 무반사 유리를 부착했는데도 조금 반사가 되는 건 강한 조명 때문이다. 전시할 때는 조도를 낮추고, 스팟 조명을 하게 된다. 그 전까지는 빛 영향을 줄이려고 은박 토이론(은박 발포지)으로 작품을 싸 보호한다”고 했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에선 4명이 컨디션 체크에 참여했다. 이들은 팀을 이뤄 전시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 개최국을 찾는다. 타사키스는 한국 방문이 세번째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 올 때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다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궁궐(경복궁) 옆에 있다는 게 가장 인상 깊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두고 “한국인들이 달리와 마그리트를 좋아한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더 기대가 크다”고 했다. 뉴질랜드는 전시는 코로나19 때문에 순조롭지 않았다고 한다. 방역 문제 때문에 전시를 멈춘 적도 있다.

코닉은 “2017년 네덜란드 전시 때 선보인 300점 중 183점을 골라왔다. 초현실주의 걸작으로 우리가 전하고픈 이야기를 이번 컬렉션에 담았다”고 말했다. 작가 52명의 작품 183점을 ‘초현실주의 혁명’ ‘다다와 초현실주의’ ‘꿈꾸는 사유’ ‘우연과 비합리성’ ‘욕망’ ‘기묘한 낯익음’ 6개 섹션에 나눠 구성했다. 경향신문사, 예술의전당, 컬쳐앤아이리더스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27일 개막한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외벽에 걸린 ‘초현실주의 거장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 대형 포스터. 김종목 기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외벽에 걸린 ‘초현실주의 거장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 대형 포스터.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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