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별표현’에 대한 오은영 의사의 발언이 우려스러운 이유

이혜민(고려대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보건학 박사)

2016년 3월9일 서울 명동의 한 교회에서 ‘전환치료는 폭력이다’라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약 6개월 전, 20대 트랜스젠더 A씨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밝혔고 가족들은 A씨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며 계속해서 전환치료를 강요했다. 결국 전환치료를 받게 된 A씨는 그 과정에서 가족과 종교 관계자에게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수 차례 당했고, 그 현장을 겨우 벗어나 인권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전환치료근절네트워크는 설문조사를 통해 성소수자 참여자 1072명 중 2.6%가 전환치료를 직접 경험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전환치료’는 한 개인의 특정한 성적 끌림이나 행동, 성별 정체성, 성별 표현을 바꿔 동성애자·양성애자는 이성애자로, 트랜스젠더는 비트랜스젠더로 살아가게 하려는 모든 유형의 개입 혹은 시도를 말한다. 이는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성별 표현을 가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해 이를 ‘교정’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관점을 기반으로 행해져 왔다. 지난 3월11일 채널A의 육아 예능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새끼>에서 출생 시 지정 성별이 남성인 어린이가 누나들을 언니라고 부르고 분홍색과 화장을 좋아하는 등 소위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성별 표현을 하는 모습이 집중적으로 방영됐다.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소아·청소년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오은영씨는 어린이의 ‘여성적’인 성별 표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이는 성역할 교육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이 어린이에게 ‘남성성’을 기를 수 있는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로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미국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 시기에 다양한 성별 표현을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것은 정체성 발달 과정에서 행해지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행위이다. 그런데도 이를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개입을 제안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일 뿐만 아니라, TV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전문가의 입으로 제기되어 더욱 우려스러웠다.

이미 학계에서는 ‘전환치료’가 비과학적이라고 오래 전에 결론내렸다. 그 효과성을 입증하는 학술적 근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병리적이지 않은 것을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해 ‘치료’를 시도하지만 그 ‘치료’를 통해 동성애자·양성애자가 이성애자로, 트랜스젠더가 비트랜스젠더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전환치료’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삶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측면에서 비윤리적이다. 필자가 속한 연구팀에서 최근에 출판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 트랜스젠더 참여자 566명 중 11.5%가 ‘전환치료’를 실제로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이들은 ‘전환치료’를 받은 적 없는 참여자에 비해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진단 받거나 치료 받을 가능성이 각각 1.34배, 2.52배 높았다. 자살 시도의 경우에도 1.7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인 ‘전환치료’를 금지하기 위해 여러 단위의 노력이 이어져 왔다. 국제연합과 세계의학협회, 미국의학협회, 미국정신의학협회, 미국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등 여러 전문가 단체에서 ‘전환치료’를 금지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독일, 브라질, 대만 등에서는 ‘전환치료’를 국가 단위에서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 등의 나라에서도 ‘전환치료’를 금지하는 법이 주 단위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더 이상 전문가 개인의 이름으로 ‘전환치료’에 해당하는 개입을 제안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우고, ‘전환치료’를 금지하기 위한 전문가 단체의 집단적 노력과 법·정책적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기고]‘성별표현’에 대한 오은영 의사의 발언이 우려스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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