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에미상 감독상·남우주연상 쾌거···비영어권 작품 최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인 ‘에미상’ 6관왕이라는 기록을 썼다.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비영어권 드라마로는 처음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는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각각 선정됐다.

먼저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돼 무대에 오른 황 감독은 “미국 텔레비전 예술과학 아카데미에 감사하다. 넷플릭스에게는 더 크게 감사하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나는 내 스스로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문을 열어줬고, 우리가 모두 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이것이 비영어권 작품이 받는 마지막 에미상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즌 2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인사도 남겼다.

황 감독과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오른 경쟁자들로는 벤 스틸러(세브란스: 단절), 마크 미로드(석세션), 캐시 얀(석세션), 로렌 스카파리아(석세션), 캐린 쿠사마(옐로우재킷), 제이슨 베이트먼(오자크)가 있다.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가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 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연합뉴스

주인공 ‘성기훈’으로 열연한 배우 이정재는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정재는 제레미 스트롱(석세션)과 브라이언 콕스(석세션), 아담 스콧(세브란스 : 단절), 제이슨 베이트먼(오자크), 밥 오든커크(베터 콜 사울)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쳤다.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손에 쥔 이정재는 영어로 “TV 아카데미, 넷플릭스, 황 감독께 감사하다”며 “황 감독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탄탄한 극본과 멋진 연출로 스크린에 창의적으로 옮겨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어로 “대한민국에서 보고 계시는 국민 여러분과 친구, 가족, 소중한 팬들과 기쁨을 나누겠다”고 말했다.

비영어권 작품으로 최초로 후보에 올라 기대를 모았던 작품상과 각본상은 HBO 드라마 <석세션>에게 돌아갔다. 미디어 산업 재벌가의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다룬 <석세션>은 작품상까지 총 25개 후보에 오른 최다 노미네이트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날 총 8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출연진과 황동혁 감독, 김지연 사이렌 픽쳐스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연합뉴스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이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 무대에서 버라이어티 시리즈 부문 시상자로 나서고 있다. 무대 한켠에는 드라마 속 ‘술래 인형’이 함께 등장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오일남’ 역의 오영수, ‘조상우’ 역의 박해수의 수상이 기대됐던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은 <석세션>의 매튜 맥패디언에게 돌아갔다. ‘강새벽’을 연기한 정호연이 후보로 오른 여우조연상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자크>의 줄리아 가너가 차지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이정재와 정호연이 버라이어티 시리즈 부문 시상에 나서기도 했다. 이때 무대 한 켠에는 드라마 속 술래 인형인 ‘영희’가 함께 등장했다. 두 배우는 인형 앞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2개 상을 받으면서 <오징어 게임>은 에미상에서 총 6개 부문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난 4일 기술진과 스태프를 대상으로 하는 ‘크리에이티브 아츠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여우단역상, 프로덕션디자인상, 시각효과상, 스턴트퍼포먼스상 등 4개의 상을 가져갔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7월 작품상을 비롯해 총 13개 분야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비영어권 드라마로서는 최다 부문 후보 지명의 기록이었다. 영어권 콘텐츠가 아니면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에미상의 공고한 벽을 <오징어 게임>이 넘어선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과는 그동안 축적된 K-콘텐츠의 역량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유통망과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다. 팬데믹 이후 전세계 시청자들이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이용하면서 콘텐츠의 폭발력이 커졌다.

OTT 서비스의 대중화로 이른바 ‘1인치의 장벽’이 무너진 것도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 기여했다. 1인치의 장벽이란 자막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 시청자들이 해외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2019년 영화 <기생충>의 성공 이후 시청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콘텐츠를 소비했다. 실제 넷플릭스 공식 집계를 보면 <오징어 게임>의 공개 이후 28일간 시청 시간 16억5045만 시간 중 95% 이상이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본 것이었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세계 각국에서는 <오징어 게임> 속 참가자들의 초록색 트레이닝복과 진행 요원들이 입는 핑크색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렸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달고나 뽑기, 딱지치기 등 게임이 유행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오징어 게임의 날’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LA시의회는 지난 9일 9월17일을 ‘오징어 게임의 날’로 선포했다. 이날은 <오징어 게임>이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처음 공개된 날이다. 넷플릭스 측은 이 드라마가 미국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력을 기리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공개돼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오징어 게임>은 상금 456억원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