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최우람의 ‘작은 방주’전

도재기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 전

키네틱 아트·영상·드로잉 등 53점 출품

이 시대 본질을 통찰하는 서사가 녹아든 기계 미학

한국의 대표적 움직이는 조각(키네틱 아트) 작가인 최우람의 ‘작은 방주’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작은 방주’와 ‘무한 반복’, 영상 ‘출구’ 등이 전시된 본전시장 전경 일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의 대표적 움직이는 조각(키네틱 아트) 작가인 최우람의 ‘작은 방주’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작은 방주’와 ‘무한 반복’, 영상 ‘출구’ 등이 전시된 본전시장 전경 일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대전환의 요구가 분출하는 시대다. 대전환이 필요할 만큼 위기의 시대란 의미다. 인류세라는 말이 힘을 얻을 정도로 기후변화는 재앙이 됐고, 전쟁과 정치권력을 향한 정쟁적 다툼은 여전하다. 불평등은 심화돼 갈등을 낳고, 배제와 차별·혐오가 확산된다. 각자도생의 다툼 속에 공생과 연대, 조화와 균형은 사그라든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대전환이 시급한 위기의 시대임을 각성시키고 있다. 온갖 위기 속에서 인류 역사가 그나마 이어져 온 것은 시대를 통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개선을 이끈 선구자들 덕분이다.

설치미술가 최우람(52)이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전을 펼쳐놓았다. 기계 미학을 내포한 움직이는 조각(키네틱 아트) ‘기계생명체(anima-machine)’를 통해 국제적 작가로 성장한 예술가답게 출품작들은 창의성이 돋보이는 미적 대상이다. 보고 느끼는 즐거움에 더해 이젠 중견작가의 세상을 보는 시선·철학이 녹아든 서사까지 어우러져 풍성한 전시다. 위기의 시대를 성찰하고, 그 본질을 드러내며, 미래의 개선 가능성을 함께 찾아보자는 작품들이자 전시 구성이다.

전시작은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최우람의 작업 상징인 기계생명체의 설치 및 조각 12점, 영상·드로잉 37점 등 53점으로 이 중 49점이 신작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최 작가는 “코로나19 속에 그동안 여러 여건상 시도하지 못한 작업들을 미술관과 현대차의 지원으로 진짜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작품들은 논문·책·법안 등과 달리 예술작품만이 할 수 있는 특성을 살려 보이지 않는 위기의 시대의 본질을 잘 내보인다.

기계에 생명의 움직임을 불어넣는 ‘기계생명체’ 작품으로 유명한 최우람의 ‘원탁’ ‘검은 새’ 설치 전경(왼쪽)과 ‘원탁’의 세부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기계에 생명의 움직임을 불어넣는 ‘기계생명체’ 작품으로 유명한 최우람의 ‘원탁’ ‘검은 새’ 설치 전경(왼쪽)과 ‘원탁’의 세부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 들머리 격인 미술관 내 서울박스에는 바닥에 작품 ‘원탁’, 그 위 높은 천장에는 원탁을 내려다보며 유유히 날고 있는 ‘검은 새’가 자리한다. ‘원탁’은 머리 없이 인조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같은 18개의 인간 형상이 둥근 상판 위에 있는 머리를 차지하려고 상판을 들어올리며 경쟁하는 움직임을 반복한다. 머리를 가지려고 할수록 머리는 더 멀리 굴러가는 역설적 상황이 이어진다.

알베르 카뮈가 인간이 처한 실존적 부조리를 상징한다고 꼽은 신화 시시포스의 노동을 떠올릴 수 있다. 거대한 시스템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해 경쟁 체제, 노동의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위에서 허수아비들의 경쟁·노동을 즐기듯 지켜보는 ‘검은 새’들, 상판 위 머리가 첨단 제어장치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그렇다. 어쩌면 허수아비들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상판의 움직임에 철저하게 종속된 몸부림일 수도 있다. 기획자인 김경란 학예사는 작품에서 ‘허수아비(스트로맨)의 오류’를 읽어낸다. ‘허수아비의 오류’는 의제를 왜곡해 본질을 가림으로써 엉뚱한 논쟁으로 그릇된 결론에 이르는 정치권의 대표적 논쟁술이다.

전시장 초입에서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흰 꽃 ‘하나’(왼쪽)는 코로나19 의료진의 방호복으로 만들었다. 전시장 막바지의 붉은 꽃 ‘빨강’은 힘찬 에너지를 내뿜는 듯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장 초입에서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흰 꽃 ‘하나’(왼쪽)는 코로나19 의료진의 방호복으로 만들었다. 전시장 막바지의 붉은 꽃 ‘빨강’은 힘찬 에너지를 내뿜는 듯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본전시장에 들어서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한 송이의 큰 흰 꽃인 ‘하나’를 만난다. 꽃잎은 코로나19 의료진의 방호복 재질인 타이벡으로 만들었다. 삶과 죽음의 반복을 은유하는 작품은 코로나19로 생과 사를 넘나든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작가의 헌화로 여겨진다.

위기의 시대의 구원을 상징하며 성서 속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작은 방주’는 기계장치로 구성된 길이 12m, 높이 2m의 거대한 궤짝 모양의 배다. 35쌍의 노와 ‘등대’, ‘두 선장’, 우주의 심연을 탐사하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최첨단 망원경을 차용한 ‘제임스 웹’, ‘닻’, 뱃머리에 세워지는 선수상인 ‘천사’, 영상작품 ‘출구’, 이중거울 구조로 무한히 증폭되는 시공간을 보여주는 ‘무한공간’ 등 조각설치물이 곳곳에 배치됐다. 뮤지션 이이언이 만든 사운드와 함께 항해가 시작되면 등대는 빛을 뿜고, 70개의 노들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군무를 펼친다. 택배상자를 뜯어 색을 입힌 노들의 춤은 흑백의 물결로 일렁인다. 전시장은 구원으로 가는 항해를 담은 장엄한 무대같다.

그런데 구원을 향한 성공적 항해라기에는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게 많다. 방주 책임자로 인도해야 할 ‘두 선장’은 서로 등을 맞대고 반대 방향으로 앉아 있고, ‘닻’은 전시장 벽에 덩그러니 걸려 있으며, 황금빛의 ‘천사’는 힘 없이 축 처져 공중에 내걸렸다. ‘제임스 웹’도 안전한 항해를 위한 장치가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미래를 보장하는 ‘출구’는 하나의 문이 열리면 다시 닫힌 문이 나오기를 무한반복하고, ‘무한공간’도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특히 희망의 불빛인 ‘등대’는 두 눈으로 변해 전시장·관람객을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감시자로 작동한다.

‘작은 방주’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모른 채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재앙을 초래하는 끝없는 욕망들로 공존과 공생이 사라지고, 균형과 조화가 깨져버린 이 시대의 현실, 인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닫힌 문을 열고 출구를 찾기는 할까? 물음이 꼬리를 문다. 기계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감동적인 미적 경험만큼이나 우리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되새기게 한다. ‘작은 방주’가 곧 지구 아니냐고 작가가 관람객에게 묻는 듯하다.

한바탕 부조리한 항해의 전시장을 지나면 기계생명체들의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한 ‘설계 드로잉’ 36점이 나온다. 눈으로 보는 작품들과 달리 쉽게 볼 수 없는 설계도면은 ‘원탁’과 ‘검은 새’ 구조에서 보듯 더 중요한 것,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수많은 구심점들이 조화와 균형으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맑고 밝은 기운을 전하는 ‘샤크라 램프’(왼쪽)와 기계생명체 ‘알라 아우레우스 나티비타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수많은 구심점들이 조화와 균형으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맑고 밝은 기운을 전하는 ‘샤크라 램프’(왼쪽)와 기계생명체 ‘알라 아우레우스 나티비타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장 막바지에는 수많은 구심점들이 각자 움직이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통해 충돌하지 않고 맑고 밝은 빛을 뿜어내 마치 신선한 에너지를 퍼뜨리는 듯한 ‘샤크라 램프’, 생명을 잉태한 꽃봉오리 모양의 기계생명체 ‘알라 아우레우스 나티비타스’, ‘하나’ 같은 꽃이지만 분위기가 다르게 환한 빛과 함께 피고 지는 붉은 꽃 ‘빨강’이 있다. 전시실 출구 벽에는 두 팔을 할짝 벌리고 우리를 맞이하는 픽토그램 네온사인 작품 ‘사인’이 있다. 온갖 위기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생명의 순환, 끈질긴 생명력, 조화와 균형 등을 통해 개선의 의지를 은유하는 작품들이다. 특히 ‘사인’은 미래는 결국 어떤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 각자들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시장 밖 복도에는 자동차 연구과정에서 버려진 전조등·후미등을 모아 새 생명을 불어넣은 원형의 조각인 ‘URC-1’ ‘URC-2’가 별처럼 빛을 내고 있다.

‘작은 방주’전은 크리스티안 폴(큐레이터)의 평론글처럼 해답을 제공하기보다 열린 질문을 던짐으로써 관객들 스스로 자문하게 만든다. 이미 구원이 약속된 노아의 방주와 달리 ‘작은 방주’인 지구는 위기의 시대를 대면해 성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작가는 “이번 전시도 작업실 동료들, 제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청계천 기계상가 사장님 등 많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가능했다”며 “끝없는 욕망의 질주와 충돌 속에서 너나없이 공생과 공존, 균형과 조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2월26일까지.

작은 방주인 지구의 미래, 구원은 결국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몫임을 드러내는 픽토그램 네온사인 작품 ‘사인’.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작은 방주인 지구의 미래, 구원은 결국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몫임을 드러내는 픽토그램 네온사인 작품 ‘사인’.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자동차 연구과정에서 폐기된 전조등과 후미등을 모아 새 생명을 불어 넣어 환하게 빛을 내고 있는 ‘URC-1’ ‘URC-2’의 설치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자동차 연구과정에서 폐기된 전조등과 후미등을 모아 새 생명을 불어 넣어 환하게 빛을 내고 있는 ‘URC-1’ ‘URC-2’의 설치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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