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다다익선’ 재가동···미디어 아트 보존·복원의 새 이정표

도재기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가동 중단 4년·복원 작업 3년 만에 점등

국내 미디어 아트 보존·복원의 주요 전기 전망

백남준 예술세계 재조명, 기획전·국제학술대회 등 열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15일 ‘다다익선’을 점등하고 재가동했다. 이 작품은 1003대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활용돼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15일 ‘다다익선’을 점등하고 재가동했다. 이 작품은 1003대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활용돼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다. 박민규 선임기자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설치작 ‘다다익선’이 노후화 등으로 작동을 전면 중단한지 4년 만에 15일 오후 재가동을 시작했다. 사진 우종덕.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설치작 ‘다다익선’이 노후화 등으로 작동을 전면 중단한지 4년 만에 15일 오후 재가동을 시작했다. 사진 우종덕.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비디오 아트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의 최대 규모 작품으로 유명한 ‘다다익선’이 15일 오후 다시 켜졌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1988년 9월15일 설치됐다가 모니터 노후화 등으로 2018년 2월 작동을 전면 중단한 ‘다다익선’이 복원작업을 끝내고 4년 만에 재가동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날 재가동 기념 퍼포먼스와 함께 점등식을 열었다. 또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을 개막하고 앞으로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도 연다.

‘다다익선’ 재가동은 작품의 감상과 더불어 향후 미디어 아트 보존·복원의 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의미가 크다. 제작 당시 기술과 기자재에 기반하는 미디어 아트는 ‘다다익선’처럼 노후화나 소재의 단종 등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휘트니미술관, 영국 테이트미술관, 독일 ZKM 등 세계 주요 미술관들도 백남준 작품이나 다른 미디어 아트 보존·복원작업을 했거나 진행 중이다. 복원 기준 마련과 소재의 교체, 가동시간 단축 등 미디어 아트 보존·복원은 이미 국제 미술계의 주요 이슈다.

어디를 어떻게 복원했나

‘다다익선’은 과천관의 중심 공간인 코어램프(각 전시장을 연결하는 원형 공간)에 있는 비디오 아트 설치작품이다. 미술관 개관(1986년)을 앞두고 작품 의뢰를 받은 백남준이 2년여 작업 끝에 현 전시공간에 설치했다.

8개의 영상작품이 높이 18.5m의 탑처럼 쌓은 구조물(설계 건축가 김원) 위의 5~25인치 브라운관(CRT) 모니터 1003대(10월3일 개천절을 상징)를 통해 상영된다. 영상은 경복궁·부채춤·고려청자 등과 프랑스 개선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 각국의 문화적 상징물, 샬럿 무어맨의 연주 모습 등을 담고 있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인류가 예술과 과학기술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작품철학이 응축됐다.

작동이 전면 중단돼 1003대 모니터의 불이 꺼진 ‘다다익선’(2018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작동이 전면 중단돼 1003대 모니터의 불이 꺼진 ‘다다익선’(2018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보존·복원은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불가피한 경우 일부 대체 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한다’는 기준 아래 진행됐다. 정밀 진단 후 중고 모니터·부품을 구해 손상된 모니터 737대를 수리·교체했다. 사용이 어려운 6·10인치 모니터 266대는 외형은 유지하되 최신 평면디스플레이(LCD)로 교체했다. 냉각설비를 보완하고 보존환경도 개선했다. 8개 영상작품은 디지털로 변환·복원해 영구적 보존이 가능토록 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지난 6개월간 시험운전을 통해 가동 시간별 작품 노후화 정도 등을 점검해 가동시간 단축 등 보존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다익선’은 ‘주 4일(목~일요일), 1일 2시간’(잠정) 작동된다. 다만 재가동을 기념해 10월3일까지는 매주 6일간(화~일요일) 2시간(오후 2~4시) 가동한다.

지난 1월 보존과 복원 작업 중 시험가동되고 있는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난 1월 보존과 복원 작업 중 시험가동되고 있는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다다익선’의 재가동은 향후 백남준 작품은 물론 다른 미디어 아트 보존·복원에 주요 선례가 될 전망이다.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대표작·최대 규모 작품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지만 설치 때부터 기자재 노후화 등에 따른 보존문제를 안고 있었다.

작품의 핵심인 CRT 모니터 등 부품은 제작 당시엔 첨단이었지만 기술 발전 등에 따라 구시대 소재가 돼 단종이 불가피했다. 노후화도 가속화돼 화재, 누전 사고도 일어났다. 2003년엔 단종된 모니터를 어렵게 구해 대대적 교체를 했지만 수리가 반복됐고 결국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미술관은 국내외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2019년 보존·복원 3개년 계획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복원을 어디까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일어났다. 세계적 가치와 의미가 있는 만큼 ‘복원해야 한다’부터 ‘최신 기술을 적용해 업그레이드하자’ ‘아예 해체·철거하자’는 견해까지 나오면서 미술계 안팎의 논란이 뜨거웠다.

결국 복원에 힘이 실리자 이번에는 어느 범위·수준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CRT 모니터의 특별 주문제작, 최신 기자재로 전면 교체, 모니터 틀은 유지한 채 내부 브라운관만 교체 등의 방안이 쏟아졌다. 일부에선 브라운관 특유의 볼록한 화면을 평면 화면으로 바꿀 경우 작품의 원형이 훼손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결국 복원은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불가피한 경우 일부 대체 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 도입’이라는 기준이 마련됐다.

미디어 아트 보존과 복원의 새 전기

최근 큰 주목을 받으며 선보이는 미디어 아트들도 역시 ‘다다익선’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첨단 소재지만 몇 십년 후엔 구시대 유물로 단종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복원이 국내 미디어 아트의 보존·복원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 미디어 아트 복원은 세계 미술계의 과제이기도 하다. 실제 휘트니미술관은 ‘유지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시 개조 허용’이란 기준 아래 백남준의 ‘세기말II’(1989)의 모니터를 교체해 LCD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다. 구겐하임미술관은 백남준의 ‘TV Garden’(1974) 모니터를 교체했고, MoMA는 가동시간을 제한 중이다. 영국 테이트미술관은 ‘원본 자재 최대한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시 동종 사양으로 교체’라는 원칙을 세웠지만 동일 사용제품 수급이 어려운 경우 모니터를 교체하고 있다. 미술관 관계자는 “대부분 상설전시보다 작품 상태에 따라 제한적 전시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다익선’은 상설전시여서 보다 엄격한 수명·보존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1988년 9월 제막 당시의 ‘다다익선’. 많은 관람객들이 아래에서 위로 오르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88년 9월 제막 당시의 ‘다다익선’. 많은 관람객들이 아래에서 위로 오르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내의 경우 대전시립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의 백남준 작품은 1990~2000년대 제작돼 가동시간만 제한하고 있다. 한 중견 작가는 “‘다다익선’을 둘러싼 많은 논의와 보존·복원 원칙 등은 중요한 선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술관은 ‘다다익선’ 보존·복원 과정을 담은 백서를 내년에 발간해 관련 연구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백남준의 예술 업적 재조명 전시, 국제학술대회 등도 열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날 대규모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을 과천관에서 개막했다. ‘다다익선’ 관련 아카이브 200여점과 관계자들의 인터뷰 등으로 구성된 전시다. 백남준이 1984년 방한해 선친 묘소를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영상 ‘한국으로의 여행’과 ‘다다익선’의 제막부터 복원 과정을 담은 기록 영상, 백남준의 활동과 아카이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장영규·이미지·조영주·우종덕·이은주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도 있다. ‘다다익선’의 이해와 감상을 위한 어린이·청소년 대상 게임형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다시, 다다익선’도 나왔다.

백남준과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과의 영향 관계를 조망하는 기획전 ‘백남준 효과’도 11월 개막된다. 백남준이 한국 동시대 미술사에 남긴 발자취를 짚어보는 전시로 30여명 작가의 작품 120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하고 생애와 예술업적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 ‘나의 백남준’도 11월 열린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백남준 작가의 대표작이자 과천관의 상징인 ‘다다익선’ 재가동이 백남준 작품과 미디어 아트 보존·복원의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다양한 기획전과 국제학술대회 등은 그의 업적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환기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작품 설치 4년 뒤인 1992년 ‘다다익선’ 앞의 백남준. 경향신문 자료사진

작품 설치 4년 뒤인 1992년 ‘다다익선’ 앞의 백남준.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다익선’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상 작품의 장면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다다익선’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상 작품의 장면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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