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송의 아니 근데

“회사가 부르면 어디든 가야 해~♪” K직장인 애환에 대공감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방송연예대상> 출연을 앞둔 아나운서 김대호가 분장을 받고 있다. MBC 유튜브 갈무리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방송연예대상> 출연을 앞둔 아나운서 김대호가 분장을 받고 있다. MBC 유튜브 갈무리

MBC 아나운서 김대호는 가장 뜨거운 예능계 유망주이다. 2023년 초 MBC 유튜브 채널인 ‘뉴스안하니’에서 공개한 일상이 화제가 되면서 <나 혼자 산다>(MBC, 이하 나혼산)에 진출한 김대호는 자유분방한 생활양식과 기상천외한 캐릭터로 ‘아나운서계 신인류’라는 평을 받았다.

김대호는 과도한 PPL, 대중이 위화감을 느끼는 연예인의 화려한 삶, ‘짜고 치는’ 방송용 연출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진 <나혼산>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구원투수이다. 번거로움을 무릅쓰는 취미생활이나 날것의 생활습관뿐만 아니라, 김대호의 인기를 견인하는 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일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K직장인의 애환’이다.

김대호는 TV에 나오지만 연예인은 아닌, 방송국이 회사인 직장인이다. 그래서 <나혼산>에서 일상을 공개해도, 추가업무로 분류되어 4만원만 받는다는 사실이 언급된 바 있다. 2023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은 김대호는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를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파격적인 무대로 축하공연을 했다.

“24시간이 모자라 MBC가 부르면 어디든지 가야 해 48시간도 모자라 여기 가서 일하고 저기 가서 일하면”이라는 가사가 심금을 울린 가운데, 공허한 눈빛과 영혼 없는 몸짓, 그러나 연습량을 알 수 있는 정확한 춤사위가 인상적이었던 김대호의 무대는 그 자체로 K직장인의 삶이었다.

1월 첫째 주 <나혼산>에서는 김대호가 축하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공개되었다. 시상식 날 아침, 유력한 신인상 후보인 김대호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시출근을 한다. 그리고 축하공연에서 노래한다. “칼퇴근할 때는 날아가 출근을 할 때는 발이 안 가 떨어지질 않아 (직장인 직장인).”

K직장인이 누구인가. 어떤 상황에서도 출근을 한다는 책임감과 투지로 유명한 K직장인의 역사를 미디어에서 짚어보자. 유튜브에서 ‘K직장인’을 검색하면 ‘K직장인이 누구야~ 폭우에도 출근하는 사람들이지’라는 영상이 뜬다. 여기에는 1990년 9월 기록적인 폭우로 물이 가슴 높이까지 찼는데도 박스나 대야를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담겼다. 비 때문에 통신이 끊어져 회사에 연락할 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무단결근이라는 결말을 피하고자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이렇게 ‘물속을 걸어 출근하는 사람들’은 2020년대에도 폭우가 올 때마다 어딘가에서 목격된다. 2022년 3월 <SNL 코리아 시즌2>(쿠팡플레이)는 <지금 우리 학교는>(넷플릭스)을 패러디한 ‘지금 우리 회사는’을 선보였다. 이 세계관에서 직장인들은 좀비가 창궐해도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고, 3일간 야근한 과장은 좀비와 구별이 불가능한 모습이다. 좀비 떼를 뚫고 출근한 인턴은 “저 정규직 전환해야죠”라며 의지를 불태운다.

K직장인은 좀비가 ‘나타나도’ 출근을 하는 것을 넘어서, 좀비가 ‘되어도’ 출근을 한다! 좀비가 되었지만 착실하게 회사에 출근해서 QR 코드 체크와 손 소독을 잊지 않고, 좀비에 물리는 것보다 주식에 ‘물리는’ 걸 더 두려워하는 설정에 웃다 보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압축 성장의 신화에 가려진 과로 문화,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경직성, 마치 기계처럼 변수 없는 근면함과 생산성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 K직장인의 광기 어린 성실함을 만든다. 장애인 활동가의 지하철 이용을 가로막는 경찰 때문에 지하철이 지연될 때처럼, 사소한 지연에도 쉽사리 짜증을 내고 약자를 적대시하게 하는 환경 또한 이런 맥락에서 형성된다.

김대호는 <방송연예대상>에서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를 개사한 노래로 바쁜 직장인의 삶을 전했다. MBC 유튜브 갈무리

김대호는 <방송연예대상>에서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를 개사한 노래로 바쁜 직장인의 삶을 전했다. MBC 유튜브 갈무리

김대호의 주문 같은 노래 가사를 따라가보자. “(일하고 있으면) 모든 걸 다 잊어버려 내 출연료 4만원.” 김대호는 <나혼산>에서 축하공연을 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일이니까’ 하겠다며 수락한다. 이러한 태도는 여러 방송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직장인으로서 매우 성실하고 바람직한 품행이자, 결국 김대호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이 변화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조직이 이유를 묻는 신입사원을 ‘이상한 나라의 MZ’ 취급할 만큼 ‘까라면 까는’ 분위기에서 굴러간다. 김대호가 처음 자신의 집을 공개한 것은 MBC 유튜브 채널에 올릴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상사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리고 집에 사람을 잘 초대하지 않고, “서양 선진국 스타일의 개인주의”라는 성향의 김대호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회사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상을 공개했다.

김대호는 잘 풀려서 <나혼산>에도 진출하고 신인상을 받았지만… 아니 근데… 너무하는 거 아니오?! 최근에는 다양한 업체나 기관이 홍보 채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주력하면서, 회사원들의 추가업무가 늘어나는 실정이다. 자신이 직접 출연해야 한다면 초상권이나 사생활까지 포기해야 한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또 있다. 충주시 홍보 유튜브 담당자, 일명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 50만 구독자를 기록한 충주시 유튜브 채널에서 홍보맨의 브이로그 제목은 ‘시장님이 시켰어요!!! 충주 공무원 VLOG’이다. 영상 초반에 시장으로부터 유튜브를 하라는 지시를 받은 홍보맨은 “내가 유튜브를 어떻게 해, 지금 하는 일도 바쁜데”라고 투덜거린다. 이 장면은 재미로 소비되고, 또 채널 성과가 워낙 좋아서 초고속 승진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실에서 개인에게 지워지는 추가업무의 성격과 양, 보상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48시간도 모자라) 너튜브도 찍는 거 보고 있나 사장님”이라고 노래한 김대호 역시 추가업무와 보상에 관해 직접 회사와 이야기해보기도 했다고 밝혔다.

회사서 ‘시켜서 공개’한 평범한 일상 모습…초절정 인기 대박
성실한 정시 출근에 “출연료 4만원” 푸념 등 솔직·친근 매력
“워라밸 원해” 프리 거부…성과 걸맞은 보상 없는 현실은 씁쓸

김대호는 노래한다. “하지만 나는 직장인 MBC가 있어주면 난 두렵지 않아 계속 가고 싶어.” 이 부분에서는 직장에 대한 애증이 드러난다. 고정 프로그램만 7개에 달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기에, 그가 다른 아나테이너가 그랬듯 프리를 선언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런데 김대호는 성공과 욕망에 대한 지향에서 이전의 아나테이너 캐릭터와 차별화되며, 한발 더 K직장인에게 밀착한다.

상사의 허락을 받아 타 방송사 예능인 <유 퀴즈 온 더 블럭>(tvN, 이하 유퀴즈)에 출연한 김대호는 “저는 최대한 일을 적게 하고 싶은 스타일” “내가 회사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해내고, 직장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워라밸만 있다면 만족”한다고 밝힌다. 14년 동안 아나운서를 계속하게 한 동력으로 “월급”을 꼽은 김대호는 더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더 일을 많이 하거나 더 알려지고 싶다는 욕망보다 “회사는 회사, 나는 나”로 구별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을 우선시한다. 많은 이가 꿈꾸는 ‘일과 나’의 관계이다.

<나혼산>에서 김대호는 일은 일대로 성실하게 하면서, 이외 시간은 타인 눈치를 보지 않고 즐기는 모습으로 대중의 호감을 샀다. 정형화된 아나운서라는 이미지와 상반되는 자유로운 영혼이 매력으로 꼽힌 것이다. ‘요즘 것들’이 회사에 자아를 바치지 않아 불만인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김대호를 보라. 입사했을 때부터 회식 자리 같은 곳은 요령껏 피하며 자신과 회사 사이 선을 그은 김대호는 14년 차 아나운서국 차장이다.

김대호는 <유퀴즈>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저는 왜 1인분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0.2의 인간일 수도 있거든요. 1.8 하는 사람이 분명 있거든요.” 지금 MBC에서 7인분 정도를 하고 있는 아나운서가 할 말인가 싶으면서도, ‘나의 그릇을 이해하고 타인의 성과를 보면서 나를 억지로 맞추지 마라, 자책하거나 과하게 채찍질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수긍이 간다. 김대호가 자신이 사직서를 내거나 실수했을 때 배려해주고 감싸준 동료와 제작진을 언급한 맥락에 비춰보면, 이 발언은 내가 좀 덜 일해도 누군가가 ‘땜빵’을 해준다는 무책임함이 아니라 협업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순 없다. 생존은 응당 그러하고, 일도 마찬가지다. 다 하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거나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떨 때는 내가 성과가 좀 떨어져도 누군가가 도와주고, 또 어떤 분야에서는 내가 누군가를 커버해주는 상호작용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경력직 신입’을 원하는 회사가 한 명에게서 몇인분을 뽑아내려는 현실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파토스(pathos)’는 그리스어로 청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열정이나 감정, 공감, 동정, 연민을 뜻한다. 24시간이 모자란 김대호에게는 이런 K직장인의 파토스가 서려 있다. 그 얼굴은 유쾌하면서도 성실하고, 동시에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남기는 K직장인의 초상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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